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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서는 #1

베트남민족학박물관 한국실 개관

아름다운 인연1
왕조가 제위를 찬탈당하자 베트남 리 왕조1009~1226의 왕자인 Lý Long Tường이용상李龍祥은 고려로 망명했다. 7대 왕인 리롱깐李龍幹이 일찍 사망하자 나이 어린 리삼李旵이 왕위에 올랐으나, 당시 지방 호족으로 막강한 권력을 가졌던 쩐씨 가문에 의해 리 왕조는 멸망하고 쩐 왕조인 대월국이 들어섰다. 이때 이용상은 목숨에 위협을 느껴 자신의 가족과 따르는 자들을 데리고 탈출하여 송나라를 거쳐 고려에 닿았다. 고려 백성과 왕은 그들을 환대했다. 고종은 안남국의 왕족인 이용상에게 식읍을 하사했고, 그가 정착한 화산황해도 옹진군 지명을 따서 화산 이씨의 시조가 됐다. 그 후손들이 오늘날까지 한국에서 ‘화산 이씨’라는 문중을 이뤄 명맥을 잇고 있다. 리 왕조의 일가는 11~13세기 몰살돼 정작 베트남 현지에는 후손이 남아 있지 않다. 이용상은 망명할 때 리 왕조의 계보를 챙겼고, 『화산이씨세보』에 기록돼 전해졌는데 쩐 왕조가 기록한 리 왕조의 계보와 일치해 베트남 정부에서도 화산 이씨를 리 왕조의 후예로 공식 인정했다. 화산 이씨 후손들은 베트남 거주 시 여타 외국인과 달리 베트남인과 동일한 혜택을 받는다.

아름다운 인연2
335년 전 베트남에 표착해 귀환한 최초의 조선인들이 있었다. 죽음을 눈앞에 둔 극한 공포 속에서 표류하다가 머나먼 이국땅에 닿은 조선인들. 두려움에 떨었으나, 베트남인들이 베푼 호의 덕분에 무사히 귀환할 수 있었다. 역사적 사실이 한 편의 드라마와 같은 감동을 주는 이야기다. 24명의 조선인은 31일간 표류하다가 안남국베트남에 표착해 4개월간 머물며 베트남의 농경, 가축, 옷차림, 기후, 과일, 사람들의 후한 인심을 경험한다. 가는 곳마다 주민들이 쌀, 젓갈, 동전 등을 풍족히 내줬다. 안남국왕의 호의와 안남인들 도움으로 중국 상인에게 인계돼 광주, 천주, 영파 등을 거쳐 표류 16개월 만에 제주도 서귀포로 귀환했다. 교류가 없던 미지의 땅에서 극적으로 생환할 수 있었던 이면에는 안남국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있었다. 이 이야기는 제주목사 이익태가 지은 『지영록』에 ‘김대황표해일록’이 수록돼 있다. 또한 정동유의 ‘주영편’, 정운경의 ‘탐라문견록’과 ‘숙종실록’에 안남국에 표류했던 고상영 증언이 수록돼 있다. 고상영은 김대황과 함께 표류했던 일행이다. 동일한 표류 사건이 두 사람 표류기로 따로 전하는 매우 희귀한 사례다. 이를 통해서 안남국 표착 전말과 생환 경과를 상세히 알 수 있다. 때문에 ‘김대황표해일록’은 이익, 박지원 등 당대 실학자들에게 주목받았다. 머나먼 안남국에 표류해 어떤 경로를 거쳐 귀환했는지를 알 수 있는 자료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조선에 표류한 중국인 송환 선례로 삼았다고 할 정도로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다. 이처럼 양국은 상호 교류가 없던 시기에도 따뜻한 인연을 맺어 왔다.

 

새로운 시작
1956년 5월에 베트남과 한국은 정식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1975년 4월에 베트남 주재 한국대사관이 철수함으로써 양국 국교 수립1992년 12월 22일 전까지 왕래가 단절되는 아픔이 있었다. 올해는 한국과 베트남 수교 30주년이 되는 해다. 1992년 수교 이후 30년 만에 한-베 무역량이 140배 증가해 한국은 베트남 최대 외국인 투자국이 됐다. 한국의 세 번째 수출국이자 다섯 번째 수입국이며 6만5000여 쌍 한-베 다문화 가정이 탄생했다. 1993년 베트남 국립하노이대학교에 처음으로 한국학 강좌가 개설된 이래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이 차츰 증가해 현재 한국어 열풍은 하늘을 치솟고 있다. 한 세대 만에 양국은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성장해 핵심 파트너 국가가 됐다. 2018년 10월, 문화체육관광부와 베트남사회과학연구원은 한류를 지속하기 위한 깊이 있는 문화교류와 양국 우호관계를 지속시키기 위한 베트남민족학박물관 한국실 신설에 합의하였다. 장소는 하노이에 있는 베트남민족학박물관 신관까인지에우관 3층으로 결정됐다. 전시실 규모는 900m2으로 국립민속박물관이 해외에 개설한 한국실 중 최대 면적을 자랑한다. 전시 내용은 한국의 전통 가옥인 한옥과 현대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아파트라는 공간을 통해서 한국의 전통문화와 현대의 생활 모습을 조명한다. 목가구, 병풍은 물론이고 김치냉장고, TV 등 전통과 현대를 아우른 전시품 400여 점을 선보인다.

1부는 손님을 맞이하고 자녀를 교육하는 공간인 사랑방, 여성의 공간이자 부부의 방인 안방, 조상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 대청, 부엌 등 한옥을 통해서 전통적인 한국인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1부에서 2부로 넘어가기 전에 전통과 현대를 잇는 영상을 만들었다. 전반부는 한국의 사계절과 어우러진 건축물, 민화 등 전통 이미지를, 후반부는 현대 한국을 상징하는 도시 이미지를 통해서 첨단기술과 역동적인 모습을 구현했다. 2부는 아파트에서 부부의 방, 자녀의 방, 부엌, 거실을 통해서 한국인의 주거 형태와 생활상을 보여준다. 자녀의 방에는 한국 교육열을 상징하는 수학능력시험 자료와 다양한 한류 상품 등을 집중적으로 전시한다. 더불어 한복 입어 보기, 한글 낱말 만들기 등 한국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코너가 있고, 프롤로그 영상, 에필로그 영상 외에도 전시장 곳곳에 영상물을 설치하여 한국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베트남민족학박물관 한국실은 2022년 12월 17일 개관 예정이며, 향후 10년간 운영될 예정이다. 베트남민족학박물관 한국실이 한국문화 홍보는 물론 양국 문화교류의 가교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글 | 김창일_전시운영과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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