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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지신

하루의 시작, 한 계절의 전망

매일 아침 일어나 오늘은 비가 오는지, 이번 주말 날씨는 어떠한지, 스마트폰으로 확인하면서 하루를, 한 주를, 한 계절을 시작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부터 누구나 일기예보를 일상적으로 공유하게 된 것일까?

조선 이전, 하늘의 변화가 곧 땅과 인간 세상의 변화로 이어진다는 천명사상天命思想에 입각해, 하늘의 움직임은 전통사회에서 매우 중요하게 받아들여졌다. 농경사회인 전통사회에서 하늘의 변화에 따라 땅이 변하고 인간 세상 또한 달라진다고 믿어, 기상관측을 정례화하고 그 내용을 기록했다. 특히 우리 역사의 시작은 단군신화로 하늘로부터 환웅이 비, 바람, 구름을 관장하는 세 신을 거느리고 함께 내려왔다는 기술로 시작된다.1) 그만큼 농사와 관련된 기상기후 조건들이 중요했음을 시사한다. 삼국시대에 눈과 비, 가뭄과 홍수 등을 기록한 날씨 기사를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 400여 건 이상 확인할 수 있다. 기근, 폭설 등의 기상 현상으로 인한 전염병 발생과 인명 피해 등을 서술한 것으로, 이는 전체 기사의 약 28%를 차지한다. 『고려사高麗史』에는 「천문지天文志」와 「오행지五行志」에 기상 현상과 관련된 내용이 다수 기록되었다. 『천동상위고天東象緯考』 역시 『고려사』의 기상관측기록을 편찬한 것이다. 이들 문헌에는 이상 고온, 이상 저온과 같은 특이한 기상 현상들이 수록되어 있고, 특히 「천문지」에는 유성, 일·월식, 달무리, 구름의 기운 등 8,000여 개의 천문 기상 현상이, 「오행지」에는 벼락, 가뭄, 오로라, 안개, 지진, 큰물, 황사 등 1,500여 개에 달하는 자연현상이 기록되어 있다.

일기도 | 1905 | 국가기록원 |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근대식 일기도다.1905년 11월 1일의 6시, 14시, 22시 날씨를 한 장에 기록했다.

조선 건국 이후에는 통치권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천명사상이 보다 체계화되고 강화되었다. 천명사상은 ‘민심民心이 곧 천심天心’이라는 것으로, 하늘이 자연현상에 민심을 반영하여 통치를 반성케 한다는 조선의 지배 이념이었다. 농업 중심의 전통사회에서 하늘의 상태는 국가의 기초와 국민들의 생업을 좌우하는 주요 요소였기 때문이다. 특히 농본지국農本之國 조선사회에서 농사는 백성들의 안녕뿐 아니라 국가 운영을 위한 조세 징수에도 매우 중요했다. ‘천수답天水畓’ 즉, 빗물에 의존하여 벼를 재배할 수 있었던 당시에는 기상조건에 따라 풍흉의 차이가 컸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조선 초 비옥도에 따라 토지를 등급으로 매겼고, 여기에 풍흉에 맞는 과세 제도를 만들었다. 비의 양과 내리는 시기는 풍흉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소였던 것이다. 비의 양을 가늠하는 것은 직접적인 농사일에는 물론 조세의 준거와 관련하여 국가 운영의 근간이 되었다. 전통사회에서 하늘의 자연현상은 국왕의 통치력과 나라의 운명으로 받아들여졌다. 조선 역시 하늘의 비정상적인 변화인 천변재이를 나라의 운명을 예고하는 것이라 여겼다. 천변재이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하늘의 정상적 움직임을 알아야 했기에 꾸준한 관측과 기록이 필요했다. 이 과정에서 관측 도구들을 개량하고 운용해 나갔다. 이러한 조선의 천문과 기상 관측 등을 관장하는 기관이 서운관書雲觀이다. 서운관에서 물시계, 천문관측기인 간의簡儀와 혼천의渾天儀, 해시계에 해당하는 앙부일구仰釜日晷 등의 다양한 관측 기기들이 제작되었다. 또한 비의 양을 재는 측우기測雨器와 하천의 깊이를 알아볼 수 있는 수표水標도 제작·설치됐다. 강우 측정의 기준이 없고 재는 방법도 제각각이며, 보고 방식 또한 달랐기 때문에 측우기의 발명은 풍흉을 판단하고 가늠하는 혁신적인 사건이었다.

측우기를 중심으로 관측기구와 관측 방법이 마련되어, 측우기를 전국에 설치하고 전국 관측망을 통해 강우량과 강우 유형을 파악하여 국가 기간산업인 농업의 안정을 꾀하였다. 국가 주도의 측우 제도로 연중 각 지역별 계측이 가능해졌고, 축적된 결과는 농업 생산에 적극적으로 활용됐다. 조선은 하늘을 기반으로 국가 통치와 운영의 토대를 만들어 명분만이 아닌 이념이 실현되는 구체적인 제도들을 만들어 냈다. 과학적인 접근에 기초한 판단으로 재이災異와 자연현상을 구별하여 더 나아가 공평한 과세의 기준을 만들었다. 측우기는 백성의 안녕을 기원하는 유교 군주의 인덕仁德과 애민정신 그리고 합리적 국가 경영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삼는다. 농사는 의식衣食의 근원이며 왕정王政에 앞서는 일이다.” 세종은 「권농교서勸農敎書1444 서두에 백성을 위해 정치가 해야 할 바를 이같이 명시했고, 그 뜻을 담아 『농사직설農事直說1429을 펴내었다. 이 책에 따르면 농사를 잘 짓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기후 조건이 중요했는데, 『농사직설』의 영향을 받아 민간에서도 농서가 발행되었다. 민간에서 발행된 농서에는 지역마다 다른 기후적 특성이 드러나 있고, 이에 따라 농사의 때와 기후를 예측하는 방법, 지방의 기후와 풍토에 따른 농법, 알맞은 상업 작물 등에 관한 정보들이 수록됐다. 농서의 기본 자료였던 강우 측정은 측우기의 관측 경험이 반영된 것이다. 발행된 농서에는 조선의 기후 조건을 중심으로 농업 생산량을 증대시키기 위한 다양한 방법과 농작물 정보가 담겨 있다. 조선의 측우 제도는 근대 기상관측 활동과도 연결된다. 측우기는 현대에도 사용하는 원통형의 강우량계와 모양뿐만 아니라 측정과 기록 방식 또한 유사한데, 이는 기상 자료에 있어 통일성과 지속성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측우 제도를 운용하고 공식 사료에 기록을 축적한 사례는 세계사에 유례가 드문 조선의 독자적인 면모다. 조선 후기 지방에서 중앙 관서로 올린 강우량 측정은 『각사등록各司謄錄』에 정리되어 있다. 그리고 중요한 강우 기록은 『승정원일기』와 『조선왕조실록』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개항 이후 조선과는 다른 방식으로 날씨 현상을 설명하는 서양의 기상학 서적들이 조선에 들어왔다. 서양의 기상학 서적이 유입되면서 조선은 기상 현상을 설명하는 새로운 관점과 방법을 접할 수 있었고, 전과 다르게 하늘을 이해하게 되었다.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조선은 미국을 시작으로 러시아·영국·독일·프랑스 등 서양 여러 나라와 국제 조약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항구가 개방됐고, 인천·부산·원산 등 개항장에 세관이 설치됐다. 근대화된 관측법과 도구, 기록 방식의 전환과 1904년 이래 증가한 44개 관측 시설의 전국 네트워크 자료가 축적됐다. 온도, 풍향풍속, 기압 등 기상요소들을 규칙적으로 측정하여 수치로 기록하였다. 기상 현상의 발생 원리를 서양 기상학을 통해 이해하는 한편, 기상관측 기록들을 활용하는 일기도천기도를 접하면서 날씨 예보의 세계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관측된 자료는 신문 및 라디오 방송뿐 아니라 전화를 통해서도 전달되었다. 그러나 이는 소수의 특권층에 한정되었으며, 일기도 역시 구입자에 한해 유통·보급됐다.

전통사회에서 측후測候 활동은 천명을 아는 통로였다. 이와 달리 서양 기상학에서 누적된 측우測雨 정보는 한 지역의 기후를 파악하는 예보 이론의 기반으로, 그 기상학적 가치와 영향이 다르게 이해되었다. 기상대 및 측후소에서 자료를 정리하고 분석하여 일기도를 작성됐다. 이러한 일기도는 전시戰時에 자유판매 및 외부유출이 금지되기도 하였는데, 이는 군사상 중요문서로 취급되었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는 미군정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거치며, 일제 관제에서 벗어나 국민을 대상으로 일기예보가 가능해졌다. 책자나 신문 구입을 통해 한정적으로 전달되었던 것에 비해, 일반인 누구나 통화녹음된 내용으로 일기예보를 전달받을 수 있게 되었다.

자동일기예보기 | 대한뉴스 제396호 KTV 국민방송 1962. 12. 22. 지정 전화번호 730-0060에 전화하면 중앙관상대에서 녹음한 일기예보를 들을 수 있었다.
천리안 2A호 | 2018

지금 우리는 국민 누구나 언제든 생업과 일상에 자유롭게 일기예보를 활용한다. 일기예보는 기상위성의 개발 이후 그 정확도가 한층 증가되었으며, 이러한 위성을 우주 궤도에 올리기 위해서는 로켓의 개발이 필요하다. 수일 전 누리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되는 장면을 많은 국민들이 지켜본 바 있다. 언론에서는 세계 우주 강국 7위에 진입하였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도 자력으로 인공위성을 우주 궤도에 올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인공위성 개발은 지상·해양 고해상도 관측이나, 방송·통신, 국방뿐만 아니라 기상관측에서도 중요 분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기상위성으로는 현재 천리안위성 2A호2)가 있으며, 24시간 쉼 없이 한반도의 하늘 상태를 감시하고 있다. 하늘을 알고 이해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국가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기상관측을 주체하는 것은 국민의 생활을 안정되고 국가를 편안하게 하는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공주충청감영측우기1837와 대구경상감영측우대1770 애민정신과 국정의 합리성 등에서 비롯된 측우는 근대 기상관측 데이터가 축적되고 이제 과학기술 강국으로 해양, 지상, 대기 등의 실시간 감시로 지속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예보됐던 장마철 세찬 빗소리를 들으며 걸을 수 있고 공원에서 하늘을 보며 여유롭게 산책할 수 있다. 그러나 또 어떤가 예측하지 못했던 갑작스런 소나기 기상은 지구의 탄생 이래 하루도 같았던 적이 없다. 그래서 예보할 수 있으나 단언할 수 없다. 예상할 수 없는 그 설레임, 그것이 우리가 사는 하루하루의 매력인 것을… 기상 관측망의 확충, 기상업무 전산화, 자동화 프로그램 개발, 슈퍼컴퓨터 도입, 수치예보 기술 개발 등 기상 관측 기술이 나날이 발전을 거듭하면서 일기예보 또한 더욱 신속 정확하게 제공되고 있다. 이처럼 기상 관측 기술이 발전하고 기상예보 시스템이 확립되면서 이제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하늘의 변화를 손쉽게 파악할 수 있게 됐다.

1) 是謂桓雄天王也. 將風伯, 雨師, 雲師, 而主穀, 主命, 主病, 主刑, 主善惡 환웅이라 불린 천왕은 풍백(바람), 우사(비), 운사(구름)를 거느리고 곡식, 생명, 질병, 형벌, 선악을 주관하였다. -『삼국유사三國遺事』권1, 기이2, 고조선, 13세기 말.
2) 2018년 12월에 발사한 천리안위성 2A호는 한반도와 주변을 2분마다 관측하여 태풍, 집중호우, 황사, 안개 등의 위험 기상을 신속하게 탐지하고, 태양 폭발, 지자기 폭풍 등 우주 기상도 실시간으로 감시한다. 기상청은 2019년 7월부터 천리안위성 2A호 위성자료 서비스를 시작했다. 국내는 물론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사용자에게 고품질의 위성 영상과 75종의 기상산출물, 우주기상산출물 등을 제공하고 있다.


글 | 김재영_국립기상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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