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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지신

면신례, 조선시대 신참 길들이기

새 시작의 마음
새해 시작은 1월이지만, 3월 봄이 와야 비로소 체감되는 듯하다. 코로나 혹한을 뚫고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신입사원들이 있다. 기업들도 사회초년생의 여린 마음을 달랜다. 조직 적응을 위한 환영식, 웰컴키트, 멘토링 등의 온보딩Onboarding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소군원昭君怨」이라는 한시의 구절이다. 봄은 왔지만 봄 같지 않다는 말이다. 과거급제는 기쁜 일이건만 조선시대 신입 관원은 ‘입사’ 초입부터 혹독한 신고식을 겪었다.

술과 음식을 바쳐라
국립민속박물관에 아래와 같은 문서 한 통이 있다.

새로 들어온 귀신 신양정臣暘鄭에게.
너는 불량한 재주로 주제넘게 높은 관직에 올랐으니 우선 쫓아내어 자리를 청소한다. (중략)… 예로부터 전하는 오래된 풍속을 지금 폐지할 수 없으니, 아황鵝黃과 죽엽竹葉, 용두龍頭와 봉미鳳尾를 즉시 바치도록 하라. 선배가.

조선 영조 때 무관 정양신에게 발급한 면신례 문서다. 면신례는 신입 관원의 통과의례다. 신참례라고도 한다. 형식은 공문서지만 내용은 장난기가 가득하다. 우선 정양신을 ‘새로 들어온 귀신’이라고 했다. 신입 관원은 선배들과의 첫 대면에서 얼굴에 먹칠을 하고 누더기를 입어야 하는데, 그 모습이 귀신 같아서다. 정양신의 이름도 ‘신양정’으로 뒤집어 썼다. 아직은 구성원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인정을 받으려면 선배들을 대접하는 잔치, ‘면신연’을 열어야 한다. 좋은 술아황, 죽엽과 진귀한 음식용두, 봉미으로 한 턱 내라는 말이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면신례 문서는 조선시대 면신례의 실상을 증언한다.

 

면신례의 기원과 실태
면신례의 기원은 고려시대 홍분방紅粉榜이다. ‘홍분’은 분홍, ‘방’은 과거시험 합격자 명단이다. 1385년우왕11 치러진 과거시험에 권문세가의 젊은 자제들이 대거 합격했다. 그중에는 젊다 못해 어린아이들도 끼어 있었다. 홍분방은 이들을 조롱하는 말이다. 분홍옷 입은 어린아이들을 채워넣은 합격자 명단이라는 뜻이다. 이들이 관직에 진출하자 선배들은 분개한 여론을 등에 업고 혹독한 신고식을 강요했다. 불공정한 방법으로 새로 집단에 들어온 사람을 어떻게든 쫓아내고 싶은 심정도 이해할 만하다. 혹독한 신고식은 나름대로 불공정에 저항하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불공정에 저항한다는 본래의 취지는 자취를 감추고, 면신례는 가학적 유희와 경제적 착취로 변질되었다. 면신례는 과거 합격 직후부터 시작된다. 성균관 내 정록소正錄所에서 합격자들을 가둬놓고 온갖 모욕을 준다. 얼굴에 진흙 칠하기, 옷에 물뿌리기, 벌거벗기기, 연못에 빠뜨리기, 담장 위로 올라가기 따위다. 또한 합격자들은 대궐에 모여 임금에게 감사를 표하는 의식을 거행해야 한다. 이때도 신참 괴롭히기가 난무했다. 합격자들은 만신창이가 된 채로 임금을 만난다. 혹독한 신고식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임금이 모를 리 없건만 못 본 체 한다. 합격자가 관청에 배속되면 본격적인 면신례가 시작된다. 일반적으로 문과 급제자의 집안이 좋으면 승문원, 보통이면 성균관, 보통 이하면 교서관으로 보낸다. 그래서인지 승문원의 면신례가 가장 혹독했다. 특권 집단일수록 구성원을 까다롭게 가려받는 법이다.

면신례의 폐단
면신례의 핵심은 ‘귀복광행鬼服狂行’, 귀신 복장에 미친 행동이다. 신참들은 얼굴에 먹칠을 하고 누더기 옷을 입은 채 한밤중에 무리지어 선배들 집을 찾아가 명함을 돌렸다. 한 바퀴 돌고 나면 선배들을 모셔다가 성대한 잔치를 벌인다. 이때 갖가지 가혹 행위가 벌어진다. 얼굴과 몸에 오물을 칠하고, 갓을 부수고 옷을 찢는다. 억지로 술을 먹이고, 연못에 빠뜨리거나 담장 위에 올라가게 한다. 손찌검과 몽둥이 찜질도 서슴지 않는다. 죽거나 다치는 사람이 속출했다. 선배들을 대접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하는 자도 있었다. 가장 심한 곳은 무관의 요직, 내삼청이었다. 17세기 내삼청의 면신례 비용은 쌀 100가마에 달했다. 내삼청 면신례의 악명이 어찌나 높았던지 무사들이 내삼청 배속을 기피할 정도였다. 돈이 없으면 빚을 내는 수밖에 없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백성에게 전가되었다. 내삼청 출신 무관들은 지방 수령으로 발령되면 백성을 수탈해 빚을 갚았다. 면신례는 부정부패의 원흉이었다. 일반 백성까지도 면신례의 피해자였다. 윤번으로 의무복무하는 군병까지 번번이 면신례를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일개 군병이 면신례를 위해 소 몇 마리를 잡아야 했다. 이밖에 면신례 비용을 감당하지 못한 무예별감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군병의 아내가 목을 매는 등 면신례의 폐단은 심각했다.

악습을 근절하지 못한 이유
면신례가 근절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관습이기 때문이다. 면신례의 기원을 살펴보면 수긍할 만한 측면도 있다. 불공정한 인사에 대한 항의가 기원이었기 때문이다. 둘째는 구조적 문제다. 내삼청은 한때 면신례를 금지하는 대신 예산을 지급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예산이 끊기자 면신례는 부활했다. 면신례가 구조적 폐단의 산물이라는 증거다. 셋째는 인간의 본성이다. 서열 확인과 권력 행사의 욕구, 그리고 타인을 괴롭힘으로써 쾌감을 얻는 가학적 욕구 탓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면신례와 유사한 관습이 만연했던 이유다. 면신례를 단순한 가혹행위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는 또 있다. 심지어 국왕도 면신례를 즐겼다. 영조는 면신례에 호의적이었다. 면신례 상납금이 지나치게 많으니 규정으로 정하자는 제안이 나오자 영조는 거부했다.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없다”는 이유였다. 정조도 마찬가지였다. 면신례를 하지 않고 넘어가면 문제삼았다. “과거합격자를 불러 장난치는 풍습을 내팽개친 사람들이 많으니 이는 작은 문제가 아니다. 사람은 마음이 넓어야 태평성대를 만들 수 있다.” 정조에게 면신례는 태평성대에 벌어지는 일종의 이벤트였다. 국왕이 면신례를 유희로 삼으면 아래에서 따라할 것은 자명한 이치다. 문관이 하니 무관도 따라하고, 관원이 하니 아전과 하인도 따라하고 군병도 따라했다. 면신례가 사회 전반에 만연했던 이유다.

사라지는 면신례
면신례는 신입 관원의 필수 통과의례였지만 신참이 인사 발령에 불만을 품고 면신례를 거부한 사례도 있고, 반대로 선배들이 부적격 신참의 면신례를 거부한 사례도 있다. 면신례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했다. 가장 오래된 것은 원시 부족의 성인식이다. 성인식은 부족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을 시험하는 행사였다. 서구에도 ‘헤이징hazing’이라는 신참 괴롭히기 관습이 있다. 때리거나 강제로 술을 먹이거나 놀림거리로 만드는 등 방법은 비슷하다. 학교, 군대, 스포츠팀, 감옥, 갱단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죽거나 다치는 사람이 속출해도 좀처럼 근절되지 않는 악습이다. 새로운 구성원의 적응을 돕고 결속을 도모한다는 핑계로 사회 전반에 만연했던 신참 길들이기는 차츰 자취를 감추고 있다. 오히려 새로운 구성원의 적응과 정착을 돕는 것이 관건이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조직에 들어온 신입의 조기 이탈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유의 안정성으로 선망받는 공무원도 예외가 아니다. 5년 미만 공무원의 퇴직률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직무가 적성에 맞지 않거나 경직된 조직 문화에 불만을 품어서다. 대기업도 신입사원의 이탈 때문에 고민이다. 채용과 교육 과정에서 소모된 비용은 둘째치고, 남은 구성원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친다. 기업 입장에서는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신입의 조직 이탈이 증가하는 이유는 첫째, 선택의 폭이 넓어져서다. 평생 직장 시대는 지났다. 능력만 있으면 조건이 좋은 곳으로 옮길 수 있다. 불만과 부조리를 참을 필요가 없다. 둘째는 직업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서다. 청년 세대는 어디든 월급만 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직업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고자 한다. 지극히 타당하고 합리적인 이유다. 조직 입장에서도 경청하고 수용할 만하다. 방법은 소통 뿐이다. “들어는 주지만 어쩔 수 없다.”라는 태도의 ‘답정너’식 대화로는 불가능하다. 조직의 규범과 관습을 원점에서부터 검토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기업은 우수한 인재를 붙잡기 위해 여러 가지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멘토링, 직무교육, 단합대회, 가족챙기기 따위다. 기존의 규범과 관습을 버리지 못하고 신입에게 ‘적응’을 요구하는 조직은 도태된다. 새로운 세대의 요구에 발맞추어 변화하고, 그들의 의지와 역량을 이끌어내는 조직이 살아남는다.


글 | 장유승_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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