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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에는

조선 승지의 어느 하루와 워라밸

‘일’과 ‘가정’ 중 우선순위를 두라면 무엇을 먼저 고를까? 통계청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보다 ‘가정’에 우선순위를 둔다는 응답이 많아지기 시작한 것은 2019년부터다. 이러한 추세는 ‘일’과 ‘가정’이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이루는 ‘워라밸Work-Life Balance’을 중요시하는 사회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주위를 돌아보면 여전히 ‘번아웃Burnout’될 정도로 과로에 시달리는 직장인들을 볼 수 있다. ‘번아웃’ 될 정도로 과로에 시달렸던 이들이 현대 사회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에도 ‘과로사’에 시달릴 정도로 분주하게 하루를 보냈던 관원들이 있었다. 그러한 관원들 중에 오늘날 청와대 비서관이라고 할 수 있는 승지의 하루 일과를 간략하게 살펴봄으로써 우리 사회 화두 중의 하나인 ‘워라밸’에 대해 생각해 보자.

출근과 업무회의
고용노동부의 일과 생활의 균형과 관련한 캠페인 자료에 따르면, 8개 기업의 대리급 사원 45명의 일과를 분석한 결과 평균 근무시간은 10시간 58분, 일주일 평균 야근 시간은 2.3일이라고 한다. 하루 10시간을 상회하는 근무를 하고, 일주일에 절반 가까이 야근을 한다고 하니, 아무래도 ‘워라밸’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조선의 승지들은 어떠했을까? 승정원에서 국정과 관련된 내용을 일기 형태로 기록한 책인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속 ‘평범(?)’한 6월의 어느 하루를 따라가며 살펴보자.

1728년(영조4) 6월 16일 승정원 관원의 현황 1)

승정원에는 오늘날 대통령 비서실장격인 도승지를 비롯하여 좌승지, 우승지, 좌부승지, 우부승지, 동부승지까지 여섯 명의 승지와 그 아래 실무를 맡아 보았던 정7품 관원 주서 3명을 두었다. 1728년영조4 6월 16일 하루치 기사를 보면, 도승지 이세근李世瑾은 임금의 명을 받고 신료를 데리러 나갔고, 우승지 유수柳綏는 병이 나서 나오지 않았고, 좌부승지 이유李瑜는 아직 숙배肅拜하지 않았다. 우부승지 김집金潗을 포함하여 3명의 승지가 출근하였고, 좌승지 이인복李仁復과 동부승지 홍경보洪景輔가 이날 숙직을 섰다. 주서는 2명 모두 아직 차임되지 않아 가주서 이징하李徵夏와 윤종하尹宗夏가 출근하였고, 윤종하만 숙직을 섰으며, 사변가주서 민계閔堦가 출근하였다.

현대 직장인들이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듯이 조선의 관원들도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승정원의 업무규정집인 『은대조례銀臺條例』에 따르면 승정원 관원들은 매일 출근하고 매일 업무회의를 열도록 하였다. 해가 짧을 때에는 예외를 두었지만 조선시대 관원들은 보통 묘시卯時 오전 5시~7시에 출근하고 유시酉時 오후 5시~7시에 퇴근하였다. 대략 10~12시간을 궁궐에서 보냈다고 볼 수 있겠다. 『승정원일기』에 임금이 각 관사 관원의 출퇴근을 엄중히 관리하라는 명을 내린 것을 보면 정해진 규정이 엄격히 지켜지지 못했던 경우도 있었던 듯하다. 출근하지 않은 승지들에 대해서는 모두 궐 안으로 불러들이도록 하였고 승정원 관원의 출퇴근 여부는 매일 기록하여 임금에게 보고하도록 하였다.

직장인들이 출근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을 꼽는다면 E-Mail을 확인한다거나 회의 자료를 준비하는 일 등이 있겠는데, 승지들의 업무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승지는 6방으로 나누어 업무를 수행하였으며, 업무 처리는 승지들이 참석하는 업무 회의인 ‘청좌廳坐’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청좌는 매일 여는 것이 원칙이었으며, 6명의 승지들은 이른 아침 출근해서 그날 임금에게 보고할 사안들을 정리하였다. 이 자리에서 임금에게 보고할 상소나 각 관사의 보고 사안 등이 논의되었다. 일반적으로 문서 규식의 준수 여부나 거동이나 재계齋戒 등을 고려하여 보고 여부를 결정하였다. 그 후 임금께 들일 수 없는 문서는 승정원에 보류하여 두거나, 문서를 올린 신료에게 돌려주었다.

숙직과 야대夜對
유시가 되면 관원들은 궁궐에서 물러났다. 승지들도 이때가 되면 궁궐에서 물러나는데, 승지 2명과 주서 1명은 규정상 숙직을 해야 했다. 요즘으로 치자면 야근에 숙직까지 하는 경우에 해당되니, 이만저만한 격무가 아니었을 듯하다. 승지의 경우 세조 이전에는 1명만 숙직하였는데, 세조 때 승지 이교연李皎然이 술을 마시고 임금의 하문에 제대로 응대하지 못한 일이 있고부터 2명이 숙직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날은 영조가 2경二更 밤 9시~11시에 희정당熙政堂에서 야대를 행하였다. 왕과 신료가 마주하여 매일 세 차례 경서經書나 선유先儒가 저술한 책을 강독하고 토론하는 것을 법강法講이라고 하는데, 궐문이 닫힌 뒤에 신하들을 불러 공부하고 토론하는 야대까지 열리는 경우도 많았다. 승지는 경연 참찬관參贊官을 겸직하고 있기 때문에 야대에 참석해야 했다. 이날 숙직을 서게 된 동부승지 홍경보가 참석하여 《주자봉사朱子封事》를 진강進講하고, 국청鞫廳의 죄수를 참작하여 처리하는 일, 주금酒禁과 관련한 소동 등에 대해 밤늦은 시간까지 논의하였다.

지금의 창덕궁 돈화문과 진선문 사이에 설치된 돌다리 2)

『승정원일기』에 날짜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승지는 국왕이 참석하는 거의 모든 행사에 배석하였고, 오늘날 정부에서 내는 관보 성격을 띠는 조보朝報를 발행하는 업무도 관장했다. 이밖에도 임금의 명을 받고 지방에 거처하는 신하를 만나러 간다든지 각종 시험에 시관으로 차출되어 나간다든지 승정원 관원으로서 해야 할 일은 셀 수 없이 많았다. 앞서 살핀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이어진 승지의 하루 일과를 보면 일에 치여 한숨을 쉬었을 승지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입직한 지 열흘이 된 어느 승지가 “승정원의 공사公事는 육방 승지六房承旨가 각각 나누어 맡아서 처리하는데, 문서가 아주 많이 쌓여 있어서 밤새도록 출납出納한다”고 한 언급은 이러한 상황을 잘 보여준다. 조선의 승지에 대해 순암順菴 안정복安鼎福은 자신의 문집에서 사람들이 승지를 신선처럼 우러러 보았으며, 세속에서는 ‘은대학사銀臺學士’라고 일컬을 정도로 우러러보는 관직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신경준申景濬, 1712~1781이 주당酒黨인 승지 임희간任希簡, 1729~?에게 술을 지나치게 마시면 술병이 나서 죽을 수도 있다고 경계하자, 승지직을 수행하면서 ‘과로사’하기보다는 술병이 나서 죽는 것이 더 좋겠다고 되받아 쳤던 일화가 우연히 전해진 것만은 아닐 듯하다.

조선의 승지들은 쏟아지는 업무 처리로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도 분주하게 보냈다. 조선시대 관원의 하루 일과와 현대인의 일을 바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예나 지금이나 과도한 업무에 시달렸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워라밸’이 쉽지 않은 것도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고 말이다. 하지만 조선의 관원들이 일과를 마치고 퇴근한 후에 문밖출입을 하지 않고 조용히 책을 보았다든가 찾아오는 손님을 접대하였다든가 친척을 방문하였다든가 동료 관원들과 만나 술잔을 기울였다는 등의 언급을 보면, 요즘 현대인들이 추구하는 ‘워라밸’을 위한 노력이 없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현대 직장인의 출근길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묵묵히 주어진 업무를 수행했을 승지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수개월간 코로나19 현황을 점검하던 질병관리본부 담당자들이나 의료 현장에서 쉴 틈 없이 환자들을 돌보던 의료인들의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모습을 떠올려 본다. ‘생활 속 거리두기’의 실천과 함께 바쁜 일상 속에서도 우리 자신의 ‘일’과 ‘삶’ 모두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찾아보면 좋겠다.

1) 『승정원일기』 |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출근을 한 경우 ‘좌(坐)’와 ‘사(仕)’로, 숙직한 경우 ‘좌직(坐直)’과 ‘사직(仕直)’ 으로 기록하였고, ‘봉명해래(奉命偕來 명을 받아 데리러 나감)’, ‘미숙배 (未肅拜 아직 숙배하지 않음)’, ‘병(病)’, ‘2원 미차(二員未差 2원은 아직 차임하지 않음)’ 등의 사유를 남겼다.
2)새로 관원으로 임명된 사람이 해당 관사에서 규정에 따라 연속으로 입직하는 것을 ‘주도(做度)’라고 하는데, 이 다리를 넘어서면 궁궐 밖으로 나가는 것으로 간주하여 다시 ‘주도’를 채워야 했으며 그동안에 입직한 날이 무효로 처리되었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 『은대조례』
· 승정원일기번역팀, 2013, 『喉舌-승정원일기 역사의 현장을 기록하다』, 한국고전번역원.
· 남윤덕, 2019, <『瑣編』에 나타난 술[酒]에 대한 인식과 조선 중·후기 양반들의 飮酒文化>, 『藏書閣』 41집.
· 고용노동부 일생활균형 누리집(http://moel.freehost.kr)
· 통계청 누리집(2019년 사회조사 결과, http://kosis.kr)


글 | 강성득_한국고전번역원 역사문헌번역실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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