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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서는 #1

〈한국인의 일생〉에 담긴 디자인 이야기

2021년 12월 28일. 드디어 상설전시관3 <한국인의 일생>이 새로운 얼굴을 드러냈다. 2006년 이후 15년 만에 새 단장을 마친 전시관 곳곳에 담긴 디자인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상설전시관은 박물관에 오면 언제든지 볼 수 있는 전시관이다. 말 그대로 상시 열려있는 전시관. 박물관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대표 콘텐츠와 스토리를 담은 곳으로 박물관의 중심이라 할 수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의 상설전시관은 총 3개로 구성되어 있는데, 2018년에 상설전시관1 <한국인의 하루>의 개편을 시작으로 2021년 3월에 상설전시관2 <한국인의 일 년>, 2021년 12월에 마지막 주자로 상설전시관3 <한국인의 일생>이 새롭게 관람객을 맞이하였다. ‘우리 관을 대표하는 상설전시로서 <한국인의 일생>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기존 전시와는 어떤 차별성이 있어야 할까?’ 등 전시 준비를 시작한 2021년 5월부터 디자이너로서의 끊임없는 고민이 시작되었다.

탄생에서 죽음까지, 일생一生의 시간을 담아낸 ‘포용적包容的 공간’
〈한국인의 일생〉은 한국인이 태어나 성장하여 가정을 이루고, 늙어서 죽을 때까지의 일생 속의 주요 사건과 과정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총체적으로 소개한다. 출생·교육·성년식·관직과 직업·혼례와 가족·놀이·수연례·상례·제례 등 10개의 소주제와 프롤로그prologue·에필로그epilogue 공간을 포함해 총 12개의 코너로 구성되었다. 전시공간을 계획할 때, 첫 번째로 고려한 것은 이처럼 방대하고 광범위한 콘텐츠를 담아내는 그릇으로써 ‘포용적包容的인 공간’이 되는 것이었다. 전시관의 전체적인 무드mood는 한국인의 단아한 이미지를 연상할 수 있는 미색을 주조색으로, 곡선보다는 직선과 수직선의 간결한 구조를 통해 단정하고 중성적인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또, 한번 만들어지면 오랫동안 바뀌지 않는 상설전시의 특성을 고려하여 7~8년 후에 보아도 촌스럽지 않을, 시류時流를 타지 않는 공간으로 기획하였다. 전시그래픽과 영상 등에서 장식적인 요소를 최대한 배제한 이유이다.

일생一生의 시작과 끝을 이어주는 창과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티저teaser1) 영상
전시관의 첫 번째 공간인 ‘출생’ 코너와 죽음의 공간인 ‘상례’ 코너는 전시내용의 흐름상 정반대의 공간에 위치한다. 닿을 수 없는 별도의 공간인데 그 사이에 의도적으로 창을 두어 시선을 통하게 하였다. 이는 출생에서 죽음까지 일생 속 모든 과정의 연결성을 상징하며, 죽음이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임을 은유한다. 각 부가 시작되는 공간에는 해당 소주제에 대한 설명글과 함께 티저 영상을 하나의 세트로 구성하였다. 기산箕山 김준근金俊根, 생몰년 미상의 풍속화를 모티브로 하여 소주제의 내용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짧은 영상으로, 관람객의 호기심을 유발하고 관람 후에도 이미지가 잔상으로 남도록 유도하였다. 또, 다음 코너로 안내하는 이정표로써 다소 많은 10개의 소주제를 쉽고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유물과 매체, 관람객과의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으로 더욱 생동감 넘치는 일생의 장면들
아이의 첫 번째 생일을 기념하는 돌잔치, 결혼식, 회갑 잔치 등 일생의 주요 장면들을 공간으로 재현하고 영상, 사운드, 그래픽, 체험 등 공감각적인 장치를 통해 생동감을 더하였다. 서당에서는 관람객이 학생이 되어 훈장님 앞에서 공부하고, 신랑·신부의 혼례가 열리는 초례청에서는 구경꾼이 되어 기념사진을 찍기도 한다. 민속 유물을 단순히 오브제object로서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유물이 원래 놓여 있던 ‘그때의 상황’과 ‘사람들의 모습’까지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여기에 증강 현실AR, Augmented Reality, 동작 인식 등 첨단 영상 기법이 더해져 더욱 다양하고 흥미로운 볼거리와 놀거리를 제공한다. 병풍만 펼쳐져 있는 빈방을 태블릿으로 비추면, 신랑과 신부가 부모님께 절을 올리고 부모님이 덕담과 함께 밤·대추를 던지는 모습이 태블릿 속에서 영상으로 구현된다. 실제 장소와 영상 속의 인물과 상황이 오버랩되어 하나의 장면으로 연출되는 증강 현실 기법을 통해서다. 이처럼, 때로는 유물과 매체의 조합, 때로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결합, 때로는 관람객의 참여로 풍성하고 생동감 넘치는 일생의 장면들이 완성되었다.

관람객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는 ‘관람자 중심’의 친절한 전시
이번 전시에서는 남녀노소, 장애인과 비장애인 구분 없이 ‘누구에게나’ 보다 나은 관람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다. 각 부별 주요 연출 코너에 디지털 레이블을 배치하여 일반 레이블 크기의 한계로 담을 수 없었던 전시물에 대한 보다 상세한 설명을 더하였다. 또, 직접 볼 수 없는 전시물의 뒷면이나 내부 모습 사진 등 설명 자료를 추가하여 다양한 정보제공이 가능하도록 계획하였다. 부 패널은 기존 4개 국어 설명에 점자와 촉지도점자 배치도를 더하고, 시력이 약한 노년층이나 저시력자를 위해 빅레이블2)을 함께 마련하였다. 또, ‘애기구덕’, ‘초헌’ 등 소주제별 대표 전시물을 3D 프린팅 기법으로 축소 제작한 촉각 전시물을 곳곳에 배치하여 직접 손으로 만지고 느낄 수 있다.

유의미한 한순간으로 기억되는 전시관이길
전시는 기획과 디자인을 비롯해 제작, 연출 등 복잡한 과정 속 끊임없는 고민의 결과이다. 디자이너로서의 수많은 고민이 담긴 전시를 준비하고 선보이는 과정은 무척이나 설레는 순간이다. 또, 그 과정에서 한 걸음 성장했으리라 믿는다. 앞으로도 관람객의 반응을 토대로 지속적인 변화와 시도를 이어갈 것이다. 필자에게 전시를 준비하는 8개월의 시간이 설레는 순간이듯, 관람객들에게 이 전시가 저마다의 유의미한 한순간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끝으로 전시관 맨 마지막에 새겨진 글귀로 본고의 마무리를 대신한다.

젊을 때는 내일이 많았는데 少時多明日
늙어갈수록 어제가 많아지네. 老去多昨日
내일이 모두 다 어제가 되니 明日摠成昨
오늘은 바로 한순간이네. 今日卽瞚一

-지난날을 아까워하다
한장석(韓章錫,1832~1894), 『미산집 (眉山集)』

1) 흔히, 방송이나 신문 기사 등에서 다음에 이어질 내용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하기 위해 사용하는 장면이나 광고를 말한다. 필자는 전시공간에서 소주제의 내용을 함축적·상징적으로 소개하여 흥미를 유발하기 위한 장치로 재해석하였다.
2) 큰 글자로 된 전시물 설명 책자


글 | 이보라_전시운영과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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