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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쪽 문화사 | 연하장

연하장으로 본 새해 인사의 변화

한 해가 가고 새해가 밝았다. 새해가 밝아오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 시인의 마음으로 새해 인사를 드린다. 지금은 주로 문자 메시지로 새해 인사를 전하지만, 일제강점기 이후 오랫동안 연하장年賀狀을 보내는 풍습이 있었다. 연하장은 새해를 맞이해 감사하는 마음과 덕담을 건네는 인사 편지나 엽서이다. 편지를 쓰지 않는 사람들도 연하장은 보낼 정도로, 연하장은 연말연시에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메신저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동안 연하장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역사적 흐름을 살펴보자.

프랑스의 프리랜서 번역가인 피에르 제르마Pierre Germa는 저서 <세계를 바꾼 최초들>2006에서, 중국에서는 10세기 무렵부터 연하장을 보내기 시작했다며 연하장의 기원을 소개하였다. 당시 중국에서는 받는 이의 지위가 높을수록 연하장이 화려했는데, 길이가 6미터나 되는 큰 연하장은 하인 6명이 운반해야 할 정도로 무거웠다고 한다. 서양에서는 15세기 독일에서 아기 예수의 그림과 신년축하 글을 동판銅版으로 인쇄한 것이 연하장의 시초라고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의 세함歲銜은 우리나라 연하장의 기원이라 할 수 있다. 세함은 새해를 맞이해 군영의 병사들이 상관의 집에 보낸 인사장이다. 밖으로 자유롭게 나다니지 못하던 여성들은 문안비問安婢라는 여종을 시켜 새해 인사를 적은 서찰을 보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새해 인사를 전하는 서찰이 연하장 기능을 대신했던 셈이다. 서찰을 인편으로 전하던 풍속은 구한말 이후에 우편 제도가 시작되면서부터 사라지게 되었다.

1900년 5월 10일, 국내 최초로 1전 값의 우편엽서가 발행됐는데 처음에는 ‘우체엽서’라 불렀다. 이 무렵에 연하장 우편엽서가 발행됐다는 기록은 없지만, 엽서가 연하장의 기능을 했을 수는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새해가 오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근하신년謹賀新年’이라고 쓴 연하장을 보내기 시작하였다. 새해를 축하한다는 ‘근하신년’이나 ‘하정賀正’이란 문구를 넣어 연하장을 보내는 것은 원래 일본의 세시풍속이었다. 1910년대의 신문을 보면 ‘근하신년’이나 ‘하정’이란 문구를 넣은 광고가 많이 등장하는데, 권력자를 비롯한 영향력 있는 사람에게 공개적으로 새해 축하 인사를 건넨 셈이다. 일본 관리에게 보내는 연하장 광고도 있었으니, 슬픈 역사의 한 단면이었다. 일제강점기로부터 해방을 맞이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1950년대에도 연하장을 보내는 풍습이 계속되었다. 이 무렵까지도 ‘근하신년’이나 ‘하정’ 같은 문구가 새해를 축하하는 연하장에 계속 쓰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1957년 12월에 우체국우정사업본부의 전신에서 연하우편을 발행하기 시작하면서부터 한국형 연하장의 시대가 열렸다. 연하우편은 연하장을 우체국에서 연말에 받아두었다가 이듬해 1월 1일자의 소인을 찍어 그날 첫 번째로 배달하는 제도였다. 처음에는 주로 엽서형 연하장이 많았는데 크리스마스카드를 겸해서 보냈다. 나중에는 점차 카드형 연하장으로 바뀌면서 연하장과 크리스마스카드가 저절로 다른 용도로 구별되었다. 1960년대 후반부터는 크리스마스카드로 송년 인사를 보내고, 연하장으로 새해 인사를 전하는 풍습이 대체로 정착되었다. 당시의 연하장에는 복과 장수를 상징하는 해, 학, 소나무 그림이 자주 등장했고, 겨울 풍경과 한국의 전통 풍속이 배경 그림으로 쓰이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지만 ‘근하신년’이란 표현은 여전히 존재하였다. ‘근하신년’ 글자를 금박으로 인쇄하고 각자 하고 싶은 인사말을 몇 줄 쓸 수 있도록 여백을 남긴 연하장이었다. 1970년대는 송년과 새해 인사를 겸해 연하장을 보내는 풍습이 대대적으로 확산되었다.

 

1980-90년대에도 연하장을 보내는 풍습이 계속 이어졌다. 우체국 연하장은 시중에서 파는 연하장보다 값이 저렴했기에, 서민들은 우체국 연하장을 주로 이용하였다. 봉투에 우편요금 표시가 돼 있어 우표를 붙이지 않고도 연하장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우체국 연하장은 봉투 입구의 접착력이 좋지 않아 침만 발라서는 잘 붙지 않았다. 행여 봉투가 열릴까 싶어 풀칠을 해야 했다고 전하는 당시의 신문기사도 있다. 그 무렵 체신부옛 우정사업본부에서 발행하던 연하엽서에는 정선, 김홍도, 신윤복의 그림이 자주 등장하였다. 기업체 대표나 사회 저명인사들은 아예 자기 이름까지 인쇄해 다량으로 발송하는 사례가 많아, 언론 보도에서는 연하장 일괄 발송이 무성의의 극치라며 꼬집기도 하였다. “희망찬 새해를 맞이해 온 가정에 만복이 깃들기를 빕니다.” 대체로 이런 문구라 감동을 느낄 수 없는 무미건조한 내용이었다. 2000년대부터는 연하장을 보내는 풍습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연하장 받아볼 일이 점점 뜸해질 정도로 서서히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우정사업본부의 연하장 감소에 대한 통계 자료를 보면, 2006년에 1,039만 장이던 발행량이 2008년엔 915만 장, 2009년엔 742만 장까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시기의 일반 연하장에는 이전의 사군자나 전통문양 대신 유행어가 덕담으로 들어가는 경우도 있었고, 금박, 은박, 메탈 같은 소재로 연하장을 만들기도 하였다.

2000년대 후반부터는 휴대전화나 인터넷으로 새해 인사를 전할 수 있게 돼 굳이 우편 연하장을 보내야 할 필요가 없어졌다. 몇 번 클릭만 해서 보내는 인터넷 연하장도 한동안 인기였다. 2006년에는 음성 녹음 연하장이, 2007년엔 시 낭송 연하장이 발매되기도 하였다. 새로운 아이디어 상품이었지만 필사적으로 생존하려는 연하장의 마지막 몸부림일 수도 있었다. 인터넷과 휴대폰 문화는 연하장을 보내는 풍습도 바꿨는데, 그 도도한 흐름을 막을 수는 없었다. 심지어 “새해 인사는 e-카드가 제격”이라는 광고 카피까지 등장했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을 비롯한 사회 지도층 인사들은 자신만의 연하장을 별도로 인쇄해 새해 인사를 각별하게 전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신문기사가 있다. “끝내 부치지 못한 YS김영삼 전 대통령 연하장 4800장. 연말마다 정성… 한때 1만 명에 발송, 제작 업체 초안 만들고 인쇄 취소.”2015년 11월 24일자 동아일보. 주인이 세상을 떠나자 연하장은 끝내 인쇄되지 못했고, 4800여 명에게 전달될 예정이던 연하장은 업체 컴퓨터에 디자인된 상태로만 남게 됐다는 신문 기사였다.

디지털 미디어 시대인 지금은 종이 연하장이 거의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도 종이 연하장을 보내는 분들이 물론 있기는 하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은 디지털 연하장을 스마트폰으로 전송한다. 우표를 붙이지 않으니 비용이 들지 않고 발송하기 위해 우체국에 가야하는 번거로움도 없다. 나아가 이메일로 연하장을 보내는 분들도 거의 없고, 대부분이 디지털 연하장에 마음을 담아 보낸다. 몇 번만 터치하면 디지털 연하장을 만들 수 있다. 그림과 애니메이션은 물론 동영상 메시지까지 디지털 연하장에 어렵지 않게 담을 수 있다. 정성은 없어 보이지만 많은 사람에게 동시에 새해 인사를 전할 수도 있다. 이런 장점 때문에 디지털 연하장은 앞으로 오랫동안 대세가 될 것 같다. 재미있게도 2020년에는 ‘금연본능 연하장’이 등장하였다. 보건복지부와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은 2020년 새해를 맞아 금연 결심을 독려하고 응원하기 위해 ‘금연본능 연하장’ 금연 캠페인을 전개하였다. 새해를 맞이해 금연 결심을 독려하고 응원하기 위해 고안한 특별한 연하장이었다. 주최 측에서는 가로 4.2미터와 세로 4.6미터 크기의 참여형 금연본능 연하장 무대를 만들어, 흡연자는 금연을 다짐하고 비흡연자는 소중한 사람을 위해 금연본능을 일깨우는 행사에 참여하도록 권고하였다. 그리고 행사에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나만의 금연본능 연하장’을 원하는 일반인들의 신청을 받아 금연본능연하장을 제공하였다.

새해를 맞이하면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인사를 전한다. 지금도 우정사업본부는 해마다 새해를 앞두고 연하카드와 연하엽서를 발행하며 연하장의 전통을 잇고 있다. 풍습을 계승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현상이다. 새해 인사를 어떻게 하든 각자가 알아서 할 일이지만 연하장의 전통을 생각하며 정성스럽게 보냈으면 좋겠다. 받는 이의 이름도 없이 단체로 뿌리는 문자 메시지는 가장 심각하다. 받는 사람은 명시하지 않고 보내는 사람 이름만 있는 스마트폰 문자나 카톡 메시지는 너무 성의가 없다. 똑같은 문구로 대량 살포하는 문자 메시지는 받는 사람에게 어떠한 감동이나 울림을 주지 못한다. 조금 번거롭더라도 받는 분의 이름이라도 써서 보내는 최소한의 예의는 갖춰야 한다. 정말로 사랑하는 분에게는 자필로 꾹꾹 눌러 쓴 연하장을 보내보면 어떨까 싶다. 받은 분께서 좋아하며 더 깊은 감동을 느끼지 않을까?


글 | 김병희_서원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 한국광고학회 제24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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