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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이 소장한 | 가을 농기구

벼 타작 도구

타작도구는 시대의 발전에 따라 그 변화상이 여타 전통 농기구에 비해 빨랐고, 일제시기에 한국에 전해진 개량 ‘그네’1)는 마치 한국의 전통 재래농기구인 양 박물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 농가의 재래 타작도구는 탈곡기가 등장하면서 사라졌고, 탈곡기도 이젠 콤바인이 등장하면서 자취를 감추었다.

개상과 탯돌로 낟알을 털어내다
벼의 낟알을 털어내는 도구로 개상, 탯돌을 사용하였고, 절구를 뒤집거나 눕혀서 쓰기도 하였다. 볏단을 개상이나 탯돌 위에 메어 쳐서 낟알을 털어내는, 이들 도구의 단점은 알곡이 튀거나 흩어져서 모으는 작업을 추가로 진행하여야 한다. 이때 마당에 흙이나 모래 등이 흩어져 있다면 낟알과 섞여서 낭패를 보게 된다. 이러한 문제를 없애기 위하여 타작 며칠 전에 진흙을 개어서 마당을 말끔하게 바른다. 이를 ‘마당맥질’이라고 한다. 개상은 서까래 굵기의 통나무 두세 개를 엮거나 붙여서 상 모양으로 만들고 여기에 다리를 달거나 아주 큰 통나무를 그대로 엎어 놓은 형태이다. 여러 명이 함께 타작을 하며, 개상에다가 곡식을 태질하는 것을 ‘개상질’이라고 한다.

들마당 집마당에 개상에 탯돌이라 무논은 베어 깔고 건답은 베두드려
오늘은 접근벼2)요 내일은 사발벼라 밀따리 대추벼와 등트기 경상벼라
– 정학유丁學游, 1786~1855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9월령의 태질하는 모습

위 시는 정학유丁學游, 1786~1855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9월령의 태질하는 모습을 노래한 것이다. 탯돌에 태질을 하기 위해서는 한쪽은 높고 한쪽은 낮게 만든 나무틀 받침대 위에 탯돌을 얹어 놓는다. 탯돌은 돌의 형태나 종류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고, 다소 거친 둥글고 넓적한 자연석을 사용하고, 맷돌 한 짝을 탯돌로 대신하기도 한다. 탯돌질은 한 사람이 작업하며, 하루에 벼 한 가마 반에서 두 가마를 떨 수 있었다.

 

까끄러기와 북데기를 넉가래와 키, 드림부채, 부뚜로 날리다
조선시대 경직도를 보면 개상이나 탯돌로 타작한 낟알을 넉가래, 키, 드림부채, 부뚜로 까끄라기와 북데기를 날린다. 넉가래는 나무 삽의 형태로 낟알을 떠서 하늘로 띄워 올리면 북데기는 날라 가고 낟알만 밑으로 떨어진다. 키도 마찬가지로 빗자루로 담은 낟알을 하늘로 올린다. 드림부채와 부뚜는 잘 알려지지 않은 도구이다. 드림부채는 바람을 불러들이는 부채라는 뜻으로 전라북도에서는 ‘부뚜부채’, 경기도에서는 ‘풍선風扇’, 곡식 날리는 부채라서 ‘곡선穀扇’이라 하였다. 드림부채는 일반 부채와 달리 가로 1m에 세로 1.3m, 손잡이 길이는 1.2m쯤으로 크다. 한 사람이 키나 바구니에 담은 곡식을 아래로 부으면 드림부채를 두 손으로 잡은 사람이 옆으로 부쳐서 바람을 일으켜 검부러기를 날려 보낸다. 두 사람이 하루 서너 섬의 곡식의 잡물을 가린다. 부뚜는 너비가 좁고 길이가 긴 자리로, 볏짚이나 왕골로 만들고 손으로 잡는 양쪽 끝은 가는 새끼로 튼튼하게 짠다. 한 사람이 가운데를 발로 밟거나 정강이 사이에 끼우고 벌어지지 않도록 무릎으로 조이면서, 양 끝에 감아 놓은 부뚜손인 막대기를 잡고 좌우로 벌렸다가 모으면서 힘차게 흔들어서 바람을 일으키는 사이에 다른 한 사람이 바구니나 키에 담은 곡식을 위에서 떨어뜨리면 검부러기 따위의 잡물이 날아간다. 『과농소초課農小抄』에는 “우리는 풍구가 없는 탓에 사람이 한 발로 긴 자리의 가운데를 밟고 닭이 날개 치듯이 부치면, 다른 사람이 소쿠리에 담긴 곡식을 위에서 아래로 붓는다. …… 하루 종일 부치고 나면 부뚜도 해질 뿐 아니라 팔의 힘도 다 빠진다. 또 이것은 팔의 힘도 세고 능숙해야 하므로 온 마을을 뒤져도 두세 사람만 쓸 수 있다.”라는 내용이 보인다農器條 颺扇. 부뚜는 ‘颺席’해동농서, ‘揚穀子’역어유해, ‘颺場’한청문감, ‘風席(風莚)’조선의 재래농구 등으로 적었다.

1) 젓가락을 촘촘히 세워 놓은 빗살 형태의 날에 벼를 훑어서 타작하는 농사 연장으로, 발로 밟는 틀에 장착하여 볏대를 양손으로 잡고 당겨서 훑는 방식이다. 그네라는 명칭은 18세기 말 『해동농서海東農書』 ‘농기農器’편에 ‘그’는 ‘날화기(捋禾器)’라고 풀이하고, 쇠젓가락[鐵箸]을 사용하여 벼 낟알을 훑어서 거둬들이는 도구로, 바로 논에서 익은 벼를 바로 훑어 내는 ‘홀태’를 가리킨다. 일제강점기 일본의 ‘이나코기(‘稻扱)’가 전해졌을 때 그 방식이 벼를 훑기에 명칭을 ‘그네’라고 불렀다. 따라서 그네는 홀태와 명칭이 혼용되어 불렀고, 일본으로부터 전해졌기에 왜홀태, 센바(千齒)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2) 정금벼·사발벼·밀다리·대추벼·동트기·경상벼는 벼의 품종으로, 조선 후기 수확한 벼 가운데 좋은 품종들이다.


글 | 정연학_국립민속박물관 전시운영과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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