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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서는 #1 | <한국인의 하루> 여름 개편

박물관에도 여름이 왔다

여름이 왔다. 방충망에 붙은 매미 울음소리가 알람을 대신하고 식지 않는 열기와 왕성히 활동하는 모기에 밤잠을 설치는 여름이, 박물관에도 왔다.

국립민속박물관 상설전시관1 <한국인의 하루>는 계절마다 달라지는 하루하루를 관람객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사계절에 따라 변화를 준다. 여름을 맞이해 전시관 곳곳에 소소한 변화를 주었다. 조선 시대 사람들의 여름 일상을 느낄 수 있는 변화, 지금부터 하나하나 살펴보자.

창틀과 발에서 미풍이 들어오네 虛欞踈箔度微風
(시원한 모습의 선비의 사랑방과 누마루)

들자리 대나무 침상 자유롭게 누웠으니
蒲席筠床隨意臥
창틀과 발에 미풍이 들어오네
虛欞踈箔度微風
둥근 부채가 다시 서늘케 하여
團圓更有生凉手
찌는 듯한 더위가 이 밤에 없어졌네
頓覺炎蒸一夜空
여름 경치(夏景), 『고봉집高峯集』 기대승奇大升, 1527~1572

전시관은 여름을 맞아 선비의 사랑방과 누마루를 다양한 여름나기 용품으로 채웠다. 가장 눈에 띄는 여름용품은 사랑방의 등등거리와 토시이다. 등나무를 엮어 만든 등등거리와 토시는 옷과 피부 사이에 공기층을 만든 것으로, 거기에는 통풍을 원활하게 하는 과학적 지혜가 담겨 있다. 열어젖힌 들장지와 시원스러운 대나무 발이 돋보이는 누마루를 바라보면 기대승奇大升, 1527~1572의 한시 「여름 경치夏景」에 나오는 창과 발 사이의 미풍이 느껴지는 듯하다. 또한, 대나무 재질의 장점을 이용하여 차가운 느낌과 서늘함을 주는 죽부인, 대나무 방석, 대나무 베게 등이 청량한 느낌을 준다. 선비의 사랑방은 선조들의 자연을 이용한 더위나기 비법과 지혜가 담겨 있어, 기계로 모든 시원함을 강제하는 오늘날 우리에게 교훈이 될 만하다.

사랑스런 둥근 부채 可愛團團扇

사랑스런 둥근 부채
可愛團團扇
삼 년 동안 이 늙은이와 함께했네
三年伴此翁
접었다 폈다 하는 편리함은 없지만
縱無舒捲便
또한 맑은 바람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네
亦足當淸風
둥근 부채(團扇), 『용담집龍潭集』 박이장朴而章, 1547~1622

이번 여름 개편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부채로 여름 느낌을 더하였다. 방구부채는 둥근 형태로 단선團扇이라고도 한다. 무늬나 모양에 따라 종류가 다양한데, 이번 여름 전시에서는 태극무늬를 본 딴 태극선太極扇을 전시하였다. 접부채는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형태로 접선摺扇이라고도 한다. 이번에는 특별히 선면扇面에 심전心田 안중식安中植, 1861-1919의 수묵담채 산수화가 그려진 부채를 전시하였다. 선풍기나 에어컨이 없던 그 시절, ‘여름에는 부채, 겨울에는 책력’이라는 ‘하선동력夏扇冬曆’의 말처럼 부채는 여름나기의 필수품이자, 여름 더위를 없애주는 고마운 존재였다. 여름 하면 더위, 더위 하면 생각나는 사랑스러운 부채가 가득한 전시관에서 시원함을 물씬 느낄 수 있다.

하는 일이 김매기뿐이로다.
(무더위 속에도 계속되는 일상의 노동 소개)

젊은이 하는 일이 김매기뿐이로다 … (중략)
날 새면 호미 들고 긴긴 해 쉴 때 없이
땀 흘려 흙이 젖고 숨 막혀 기진할 듯
때마침 점심밭이 반갑고 신기하다 … (하략)
6월령,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정학유丁學游, 1786~1855

전시관의 낮 부분에서는 하루하루 계속되는 여름철 일거리를 소개하였다. 여름철 농부들은 보리타작으로 분주했다. 전시장 농가 마당 부분에는 보리타작의 전 과정을 살펴볼 수 있도록 타작 도구인 ‘도리깨’, ‘넉가래’, ‘키’ 등을 전시하였다. 여름철 논에서는 김매기가 한창이다. 날씨가 덥고 습한 여름이면 무성하게 자라나는 잡초를 제거하는 김매기와 관련하여, 날이 큰 ‘논호미’와 여름의 따가운 볕을 가리기 위해 썼던 ‘방갓’ 등을 전시하였다. 더불어 경직도의 여름 부분을 영상으로 제작하여 함께 배치함으로써 여름 농사 과정을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다. 농가에서는 모시와 삼베를 짜는 여성들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기산箕山 김준근金俊根의 ‘뵈낫는모양베 낫는 모양’ 그림과 ‘전짓다리’, ‘날틀’, ‘베매기솔’ 등 여름 옷감 제작 도구를 함께 전시하여 여성들의 여름 일거리를 소개하였다. 무더위 속에서도 계속되는 조선시대 사람들의 여름철 일상 노동을 보면, 계절에 상관없이 매일 출근하는 우리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 같다.

어량에 통발치고 돌을 물에 던지고서 織薄承梁石打波
(조선 시대 여름 피서, 천렵川獵)

어량에 통발치고 돌을 물에 던지고서
織薄承梁石打波
아이들이 앞다투어 물고기를 몰아가네
群兒爭趁衆魚過
잠깐 사이 통발 가득 물고기가 팔딱이니
須臾潑潑盈筠裏
이번이 제일 많다 웃으며 말들 하네
笑道今番得最多
천렵을 구경하며(觀川獵) 『무명자집無名子集』 윤기尹愭, 1741~1826

세 번의 김매기가 계속되는 바쁜 여름 일상 중에서도 사람들은 더위를 피하거나 여가를 즐기기 위해 냇가에서 고기를 잡는 천렵을 즐기기도 했다. 이러한 조선 시대 여름철 피서 풍경을 ‘가리’, ‘통발’, ‘어렵도’ 등을 통해 소개하고 있다. 고된 노동 끝에 냇가에서 천렵을 즐기며 여름철 더위를 피하던 조상들의 모습은 여름이 되면 시원한 바닷가, 계곡으로 피서를 떠나는 우리의 모습과 참 닮아있다.

 

이렇게 박물관에도 여름이 왔다
시원한 등나무와 대나무로 만든 여름용품으로 청량감을 주고, 사랑스런 방구부채와 접부채로 시원한 느낌을 물씬 낸 여름 풍경이, 선조들의 여름나기를 살펴보고 우리의 여름나기와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한 여름 모습이 박물관에도 왔다. 여름을 맞이한 박물관의 변화는 소소하지만 모두의 더위를 식혀주기엔 충분할 것이다. 새롭게 개편한 <한국인의 하루> ‘여름’에 등장하는 현대인의 일상과 같고도 다른 선조들의 여름나기를 살펴보면서 시대를 넘어 지속되고 변화하는 한국인의 여름 일상을 공감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꿀팁 하나, 상설전시관1 여름 개편은 국립민속박물관 홈페이지 VR전시를 통해 관람할 수 있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박물관에 직접 오지 못한다면, 국립민속박물관 홈페이지-온라인 전시-상설전시관1-여름전시 클릭을 추천한다.


글 | 오아란_국립민속박물관 전시운영과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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