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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이 소장한 | 국수틀

국수틀, 정감 가는 부엌살림

국수는 그 모양새처럼 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 나이가 많으니 그 속에 담긴 이야기도 무궁무진할 수밖에 없다. 전 세계를 통틀어 국수를 먹지 않는 나라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모양도 재료도 조리 방식도 그리고 먹는 이유도 다양하다. 그와 동시에 먹는 목적도 주식, 부식, 특별식으로 여기저기 다 끼어 있다. 그러나 농사를 지어 얻어지는, 곡물 껍질을 벗기고 바로 익혀 먹는 쌀 · 보리 등등에 비하면 음식으로 조리되기까지의 과정이 꽤 복잡한 편이다. 추수해서 얻은 알곡을 건조해 가루로 만들고 이를 반죽해 어떤 도구의 힘이든 빌려 가락을 뽑아내야 한다. 국수는 반죽을 길게 늘여서 만들거나, 넓고 얇게 펴서 칼로 썰거나, 구멍이 뚫린 틀이나 바가지 등에 부어 눌러 뽑거나 하는 방법으로 만들어진다. 첫 번째는 우리가 흔히 수타 짜장면집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 반죽을 양손에 잡고 공중에서 돌리면 한 가닥이 두 가닥이 되고 접어서 네 가닥, 여덟 가닥 이렇게 가닥을 손과 팔의 힘을 이용해 가늘고 길게 늘여가면서 뽑는 것이다. 두 번째는 한국인의 소울푸드가 되어 버린 손칼국수가 대표적인 예이다. 마지막 세 번째가 이 글의 주인공 ‘국수틀’이다.

 

국수틀은 ‘분틀’이라고도 불리며 유압식 제면기가 등장하기 전까지 사용되던 면을 뽑는 전통적인 기구다. 일반적으로 구성은 홈이 있는 부분이 몸체로 받침의 역할을 하고, 공이와 손잡이가 일체가 된 부재가 위쪽으로 나란히 앉혀진다. 재료는 소나무처럼 밀도가 높고 단단한 나무로 만들고 반죽을 밀어 넣을 부분은 원통형으로 홈을 파고 아래 바닥은 금속성 재료에 구멍을 여러 개 뚫어 마감한다. 이 구멍을 통해 위에서 공이로 누른 반죽이 긴 가닥으로 빠져 나와 국수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착면搾麵 혹은 압면押麵으로 면을 뽑는 것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방법이다. 국수를 해먹을 때는 이 국수틀을 물이 끓고 있는 솥 위에 올려놓고 반죽이 홈통을 통과해 긴 면발 모양으로 나오면서 솥 속으로 떨어지게 하여 바로 익힌다. 한 사람의 힘으로 반죽을 내릴 수 없을 때는 장정 두어 명이 붙어 공이에 힘을 실어야 면이 뽑혀 나오기도 한다. 기산 김준근의 풍속화 중 ‘국수 누르는 모양’이라고 화제가 붙은 그림은 이러한 상황을 아주 상세하게 잘 묘사하고 있다. 국수틀이 위대한 발명품까지는 아니지만, 우리가 일상생활을 영위해 가는 과정에서 절실한 필요에 따라 탄생한 도구는 확실하다. 쌀이 귀했던 시절 그 이외 주식이 될 수 있는 곡물들은 땟거리로 다 동원이 되었다. 곡물뿐만 아니라 감자나 고구마 같은 작물들 그것도 모자라 온갖 푸성귀나 해초들을 보태서 음식의 양을 늘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런데 이런 기근을 헤쳐나가기에 가장 적당한 곡물이 있었으니 바로 메밀이다. 게다가 메밀은 지질이 척박하거나 별다른 관리를 하지 않아도 흉작이 되는 법이 없어 우수한 먹거리 재료로 대접을 받았다. 이런 메밀에게도 단점이 있으니 오래 씹으면 일반 곡물에서 맛볼 수 있는 달큰함이 거의 없다는 것과 점성이 매우 약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곡물과 어울려 한 그릇의 밥이 되긴 쉽지가 않다. 그러한 성질의 메밀이 주로 만들어낸 음식은 묵과 국수였다.

특히 지금은 가장 일반적인 국수의 재료인 밀가루는 구하기가 힘들었으니 그 자리를 메밀이 대신했다. 그러나 점도가 약한 메밀 반죽을 넓게 펴서 칼로 썰어 면을 만들면 우리가 알고 있는 국수 같은 긴 가닥의 모양이 잘 나오지를 않았다. 이러한 애로사항을 극복하게 해준 것이 ‘국수틀’이다. 반죽을 둥그런 방망이처럼 대충 모양을 잡아 틀 홈통 안으로 공이의 힘을 빌려 밀어 넣으면 구멍을 통과한 반죽이 긴 가락으로 성형되어 솥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재료의 특성을 확실히 이해하고 그에 걸맞은 도구를 만들어 식생활을 원활하게 하였으니 진정 필요가 낳은 결과물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국수틀이 집집마다 구비되어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디딜방앗간처럼 마을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는 도구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국수를 해먹을 때마다 2m에 가까운 국수틀을 솥에 건다는 것 또한 만만치 않은 과정이었다. 그래서 비슷한 음식, 유사한 방법으로 소량을 좀 더 편하게 조리할 수 있는 도구가 생겨났다. 일반적으로 ‘올챙이국수틀’이라고 불리는 기구다. 두 개의 나무 막대 사이에 위가 개방된 사각 통을 고정했는데, 통의 바닥에는 구멍이 뚫린 철판을 붙였다. 사각 통에 반죽을 넣고 손잡이가 달린 나무판을 누르면 구멍을 통해 국수 가락이 떨어지는 원리이다.

앞서 언급한 국수틀에서 최소한의 기본 기능만 따온 것이다. 그런데 이 올챙이국수틀은 일반 국수틀처럼 긴 가닥의 면이 뽑혀 나오지 않는다. 일반 국수틀은 통나무로 만들어져 힘을 가해도 틀의 형태가 손상되거나 변형되지 않지만 올챙이국수틀은 나무판을 짜맞춘 것이라 된 반죽으로 국수를 내리기엔 적당하지가 않다. 그렇다고 묽은 반죽은 끓는 물에 들어가면 풀어져 버려 형태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만들어진 것이 강원도의 토속음식으로 자리매김한 ‘올챙이국수’다. 국수틀을 통과하지만, 면이 길게 이어지지 않고 툭툭 끊어져 버린다. 물에 넣고 끓일 수도 없으니 가루로 묵을 쑤어 틀에 통과시킨다. 그리고 틀 아래엔 구멍을 빠져나온 면들이 잠길 물을 담은 그릇을 둔다. 따뜻한 면들은 물에 입수되면서 온도가 낮아지고 모양이 잡히면서 굳는다. 이때 떨어지는 면의 모양이 국수처럼 길지 않고 물속에서 부화되어 떠다니는 올챙이를 닮았다는 연유에서 올챙이국수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러나 현지인들은 이를 올챙이국수가 아니라 ‘올챙묵’이라고 부른다. 여름철 한창 수확되는 옥수수 알곡을 말려 가루로 분쇄하고 이것으로 묵을 쑤어서 앙증맞은 국수틀을 이용해 올챙묵을 만들고 양념장을 끼얹어 시원하게 후루룩후루룩 떠먹는다. 올챙이국수라는 먹거리는 국수틀과 같은 원리를 가진 틀에서 탄생하였기에 묵이면서도 국수라고도 불리게 된 것이다. 찰기는 없지만 그나마 쉽게 얻을 수 있는 재료로 좀은 품을 덜 팔아 음식을 만들어내게 해준 것이 올챙이국수틀이었다.

우리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국수틀’은 10여 개가 확인된다. 하나같이 손때가 묻고 장인이 아닌 일반인의 솜씨로 오로지 국수를 뽑기 위해 만들어진 순박한 모양을 가진 물건들이다. 하루 일과의 중간 점을 찍는 직장인들의 점심시간은 날씨에 따라 그 메뉴가 변하기 마련이다. 날이 더워지면서 입맛도 떨어지고 하니 “오늘은 간단히 국수 한 그릇 하시지요!”라는 대화가 여기저기 들린다. 많이 차려진 찬 없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니 일종의 간편식으로 한 끼를 해결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식문화는 기계화된 체계로 국수의 대량생산이 이루어지고 있기에 생겨난 것이다. 원재료가 국수 가락이 되기까지 지난한 과정을 거쳤던 시절에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길지 않은 시간에 일어난 변화에 우린 또 너무도 빨리 적응을 해버린 듯하다. 국수틀이 우리 곁을 떠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글 | 박선주_국립민속박물관 어린이박물관과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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