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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에는 | 우리 차에서 나의 차로!

자동차, 신기한 탈것에서 삶의 동반자로

20년째 수도권 외곽에 살고 있는 필자는 일 때문에 차를 몰고 서울을 오갈 일이 많다. 그럴 때마다 거의 비슷한 경로로 간선도로를 이용하는데, 평소에도 정체가 심하긴 하지만 요즘이 가장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뚜렷한 통계 자료가 나와 있지는 않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 대유행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많은 사람이 함께 타야 하는 대중교통을 피하고, 자기 차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늘었기 때문일 것이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온통 자동차뿐인 도로 한복판에 있다 보면, ‘자동차가 이렇게 많았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사람들이 이동할 때 자동차에 많이 의존하고 있고, 차를 쓰는 것이 일상화되었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한편으로는 지금과 같은 교통정체는 상상하기 어려웠고, 거리를 달리는 자동차들이 마냥 신기하고 차를 모는 사람들이 부러웠던 어린 시절이 떠오르기도 한다.

포니 픽업 자동차 | 높이 136.8×너비 155.8×길이 395.8cm

1960~70년대, 부와 권력의 상징
2019년 우리나라 전체 자동차 등록 대수는 2,368만 대였다. 통계자료를 찾아보니, 내가 태어나기 불과 몇 년 전이었던 1969년에는 전국에 등록된 차를 모두 합친 숫자가 11만 대에 그쳤다. 그런 사정은 한동안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1983년까지도 우리나라에 등록된 자동차는 채 100만 대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1) 더욱이 1970년대까지만 해도 전체 자동차에서 승용차가 차지하는 비율은 버스 등 승합차와 화물차를 합친 것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다. 승용차는 주로 아주 부유한 사람들이나 높은 공직에 있는 사람들이 탈 수 있었던 만큼, 평범한 서민들과는 거리가 있는 존재였다. 승용차는 곧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다.

지금은 승용차의 크기와 값이 다양해지고 차의 소유 여부만으로 경제적 수준을 가늠하지는 않는다. 현재와 같이 우리 주변에 차가 많아진 것은 그리 오래전 일은 아니다. 1984년에야 100만 대를 넘어선 전국 자동차등록대수는 그 뒤로 빠르게 늘어 1997년에는 1,000만 대를 넘겼고, 그로부터 17년 뒤인 2014년에는 2,000만 대를 넘겼다. 2019년 기준, 자동차 한 대당 인구는 2.19명, 1,000명당 자동차 보유대수는 456.6대에 이른다.2) 자동차가 흔해진 지금도 ‘내 차’를 갖는다는 것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은 그처럼 짧은 시간 사이에 차가 엄청나게 많이 늘어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1980~90년대, 봉고차와 승합차의 인기
1980년대 중후반에 이르면 수출이 활발해지고 가구 소득이 늘면서 도시를 중심으로 승용차를 사는 사람이 많아졌다. 당시에도 승용차를 가진 사람들은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자동차 인심’이 지금에 비하면 훨씬 더 넉넉했던 기억이다. 동네 사람들 사이에 교류가 많은 편이었고, 어느 정도 알고 지내는 이웃 사이에 크고 작은 것을 나누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정이 있었던 영향도 컸다.

아울러 마이카 붐과 더불어 레저용 차로 흔히 ‘봉고차’라고 불리는 상자형 승합차가 큰 인기를 얻었다. 요즘처럼 번듯하게 꾸미고 쓰기 편리한 오토캠핑장이 없던 과거에는 여름철 한적한 강가나 다리 밑에 차를 세워 놓고 밥을 지어 먹고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 시절에 두세 가족이 함께 여행을 떠날 때 승합차 한 대로 움직이는 것이 낯설지 않았다면, 지금은 각자 차를 몰고 한 장소에서 만나는 모습이 오히려 더 자연스럽다. 물론 연료비가 지금과 비교하면 무척 쌌던 것도, 조금 돌아가더라도 차를 함께 나눠 타는 것이 덜 부담스러웠던 이유 중 하나였다. 1989년 평균 휘발유 값은 리터당 325.75원이었다.3) 차 값이 많이 비싸졌다고는 해도, 연료비만큼 크게 비싸지는 않았다. 차를 갖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지만, 일단 차를 가진 사람들이 차를 쓸 때의 부담은 상대적으로 작았던 시절이다.

1990년대 이후, SUV의 인기와 다양한 쓰임
과거에 오랫동안 문이 네 개 있는 세단이 승용차의 주류였다면, 지금은 종류도 다양해졌다. 1980년대 후반에 수입차 판매가 공식적으로 허용되고, 경제 성장과 더불어 여유 있는 소비자가 늘어나면서 자동차 선택의 폭은 훨씬 더 넓어졌다. 특히 1990년대 초반부터 승용차 개념을 접목한 모델들이 등장하면서 차츰 ‘지프형 승용차’ 즉 SUV가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SUV의 인기는 승용차가 이동수단의 성격에서 벗어나 레저 활동 등 다양한 용도로 쓰이며 생활의 여러 측면을 반영하는 존재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와 더불어 사람들이 차를 대하고 쓰는 방식도 과거에 비하면 엄청나게 다양해졌다. 단적인 예로, 50년 전에는 우리나라에도 자동차 경주장이 생기고 자신의 차로 경주장을 달리며 운전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사람들이 생기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파트 단지에서는 입주자들의 승용차만큼이나 온라인 쇼핑으로 산 물건들을 가득 실은 택배 회사 트럭들과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오가는 노란색 승합차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알게 모르게 우리 생활의 거의 모든 요소들이 자동차 없이는 돌아가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는 뜻이다.

자동차의 새로운 이용 방식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새차 판매가 크게 늘지 않아 자동차 업계가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이미 자동차 보급이 충분히 이루어졌고, 과거보다 차값이 비싸져 시장의 양극화가 뚜렷해진 영향이 컸다. 전체 자동차 판매에서 값비싼 대형차나 수입차의 비중이 커지는가 하면, 장기 렌터카나 카 셰어링이 인기를 얻기도 했다. 그러나 코로나19 대유행 때문에 카 셰어링의 인기는 주춤하고 있고, 오히려 ‘비대면’이 일상화되면서 차를 독립된 ‘나만의 공간’으로 활용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밀폐된 공간인 극장에서 영화를 보기 어렵게 되면서, 한동안 사람들의 발길이 뜸했던 자동차 극장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한편으로는 ‘차박’이라는 표현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형태의 오토캠핑도 인기를 얻고 있다. 과거에는 차를 타고 이동해 차에 실어 두었던 장비를 설치하고 캠핑을 즐기는 형식의 오토캠핑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차 자체를 텐트와 같은 거주공간으로 쓰면서 차 안에서 먹고 자고 노는 일을 모두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다른 사람과 접촉을 최소화하면서 좀 더 쉽고 가볍게 캠핑을 즐기려는 생각이 차박의 유행으로 이어진 것이다. 자동차 개조튜닝에 관한 규제가 완화되면서 승용차나 화물차를 캠핑카로 개조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게 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와 같은 변화는 자동차가 이동수단 개념에 그치지 않고 개인의 생활을 함께하고 개성을 표현하는 도구로 발전했음을 보여준다. 코로나19 대유행이라는 이슈를 만나 살짝 방향을 틀기는 했지만, 자동차는 오랜 시간에 걸쳐 우리 일상 깊숙이 스며들어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이미 자동차를 축으로 움직이는 생태계에 익숙해진 만큼, 앞으로 어떤 식으로 변화하고 발전하느냐에 관계없이 자동차는 삶의 동반자로서 우리와 함께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1)국토교통부 자동차 등록 현황, e-나라지표
2)국토교통부 국토교통 통계누리 누리집 자동차등록현황보고 메타정보
3)“[광복70]연탄보다 싸던 휘발유…지금은 연탄 값의 10배”, [뉴스1], 2014년 12월 31일


글 | 류청희_프리랜서 자동차 저널리스트, 자동차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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