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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이 소장한 | 목가구

쓰임에 미감과 바람을 담다

국립민속박물관은 대표적인 생활사박물관으로서 다양한 생활사 자료들을 소장하고 있다. 그중 목가구木家具는 사람들의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된 중요한 살림살이로서 낡고 허름해지면 새것으로 바꾸어 쓰는 다른 생활용품에 비해 오랜 시간 사용하거나 평생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고, 때로는 대물림되기도 한다. 그만큼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담고 있는 생활용품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다량 소장 중인 조선시대 목가구는 장, 농, 반닫이, 소반 등 그 종류가 다양하여 당시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더불어 미감 또한 엿볼 수 있어 당시의 생활사 자료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오늘날 조선시대 목가구는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공예품으로 손꼽을 만큼 그 시대의 문화 수준, 미의식이 잘 반영된 산물로서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고 있다. 가구는 사람이 삶을 영위하기 위한 필수품으로 그 쓰임새가 중요하지만, 요즈음에는 실제 사용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예술품으로서 그 가치를 두고 소장하는 경우가 많다. 조선시대 목가구는 공장에서 대량생산되는 요즈음의 가구와 달리 사용자의 취향, 공간 구조, 기능에 따라 맞춤형 주문 제작 방식으로 만들어져 각기 다른 형태와 구조를 갖고 있다. 대개 사랑방 가구, 안방 가구, 부엌 가구 등으로 나누는데 이것은 그 공간의 기능과 분위기에 걸맞은 형식의 가구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남자의 공간인 사랑방의 가구는 절제되고 안정된 분위기의 것이 주를 이룬다면, 여성의 공간인 안방의 가구는 화려한 장식이 더해져 방안에 화사함과 따뜻함을 더한다. 민속학자 김태곤金泰坤, 1936~1996의 『한국무가집韓國巫歌集』에 수록된 무가의 일부에는 화려하게 장식된 가구들이 배치된 안방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세간치장 볼작시면 가께수리 들미장에
자개함농 반다지에 홍장봉장 곁들이고
삼층장 이층장에 머리장 사방탁자 곁들이고

각 층과 마대가 분리되는 이층농 | 조선 후기 | 852×414×1203mm

여러 공간 중 안방은 가족생활의 중심이 되는 공간으로 주로 장이나 농, 반닫이 같은 수납가구와 화장도구나 각종 치장구治裝具를 넣어둘 수 있는 경대와 빗접, 바느질 도구를 수납할 수 있는 반짇고리 등 다양한 성격의 가구들이 놓였다. 특히 장과 농은 다른 가구에 비해 규모가 큰 수납 가구로, 주로 옷을 수납하였다. 장롱이라 부르는 경우도 있으나 본래 장은 여러 층이 한 몸으로 이루어진 것, 농은 각 층이 분리되는 것을 말한다. 장롱欌籠이란 말은 18세기 이후 경제 부흥으로 부유한 양반가에서는 장과 농이 필수 혼수품이 되면서 사용되기 시작한 합성어1)이다. 오늘날에도 옷이나 각종 살림살이를 수납하는 용도로 장롱이 쓰이고 있으나 조선시대의 것과는 그 형태와 재료, 장식 등에 차이를 보인다. 조선시대 전통 가구는 근대를 거치며 오늘날까지 다양한 형태와 구조, 크기로 변화하게 된 것이다. 이는 서양과 중국, 일본의 영향, 좌식에서 입식으로 변화한 생활환경, 시대마다 새로운 재료의 보급과 기술 개발이 있었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장과 농의 큰 차이는 층의 분리에 있다. 장의 경우 각재와 판재로 구성하여 한 통으로 제작되고 기능에 따라 머릿장, 옷장, 의걸이장, 책장 등으로 분류할 수 있으며, 단층에서부터 여러 층까지 그 규모의 차이가 있다. 이와 달리 농은 각 층이 분리되어 위아래로 쌓아 올릴 수 있는 형태의 가구로 장에 비해 그 규모가 작으며 아랫부분에 마대馬臺2)를 받치기도 한다. 농은 대표적인 혼수품으로 경제력과 가족관계에 따른 보관물의 양, 사용자의 취향과 유행에 따라 크기와 모양새가 결정되었다. 특히 농은 대물림이 흔치 않아 시어머니가 돌아가시면 태워버리거나 안방이 아닌 다른 곳에 옮겨 보관하는 경우가 많았다3). 그만큼 유행에 민감한 중요 혼수품으로 시대성을 반영하는 대표적인 가구라 볼 수 있다. 다양한 종류의 물품을 수납하는 장에 비해 농은 주로 옷가지를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되었으며, 각 층이 독립적이기 때문에 계절에 따라 내부에 수납된 것들을 그대로 두고 위 아래층을 뒤바꾸어 쓰기도 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서유구徐有榘, 1764~1845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섬용지贍用志 권3에는 농의 시원始原에 관한 기록이 있다.

농은 원래 죽기를 의미하는 것인데,
목조나 고리버들을 써서 사용하는 것도
역시 농이라 이름하니,
이는 이름을 빌려쓰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목조는 옻칠을 하고 또 황동으로 장식한다.
고리버들로 만든 것은 안과 밖을 도배하고 황칠을 하고 철로 장식을 하는데
모두 여닫을 수 있고 자물쇠를 사용한다……

원래 농은 버들채나 싸리채 따위로 함같이 만들어 종이로 바른 상자를 말하는 것인데 위아래로 쌓아 사용하기에는 물건을 넣고 꺼내는 데 불편함이 있어 개구부開口部를 전면前面에 두어 보완 발전시킨 형태가 오늘날의 농으로 보인다. 장과 달리 대개 기둥과 개판蓋板4)이 없고 널5)과 널을 짜임으로 연결하여 상자 형식으로 만드는 경우가 주를 이루며 짜임을 보강하기 위해 감잡이6), 귀장식7) 등의 장석을 많이 사용하였고, 쉽게 들 수 있도록 양 옆면에는 들쇠를 달았다. 이층농이 많은 편이며 조선 후기에 와서 장과 유사하게 기둥과 연결되는 쇠목과 동자, 그로 인해 생기는 쥐벽칸과 머름칸 등으로 면분할하여 구성하거나 개판을 다는 경우도 있었다. 농에는 옷을 개어 수납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높이로 쌓아놓을 경우 쏟아질 수 있으므로 앞면 전체의 윗부분에 두 짝의 여닫이문을 배치하고, 일부 문판 안쪽으로 판재를 덧대어 미닫이문처럼 열 수 있게 하여 옷이 쏟아지는 것을 방지하기도 했다.

좌. 자개로 장식된 이층농 | 조선 후기 | 870×475×1268mm
우. 먹감나무로 제작된 이층농 | 조선 후기 | 852×414×1203mm

농은 주로 가벼운 오동나무나 나뭇결이 아름다운 먹감나무, 느티나무 등을 사용하여 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오동나무의 표면을 낙동법烙桐法8)으로 가공하여 표면의 질감이 느껴질 수 있게 하거나 먹감나무의 자연스러운 나뭇결을 살리기도 했으며, 표면에 소나무·학·불로초·대나무 등 장수를 기원하는 문양을 자개로 장식하거나 대모玳瑁9)나 동사銅絲10)를 붙여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또한 단순하게 기능과 형태만 있는 장석보다는 번창繁昌, 다산多産 등을 기원하는 나비, 박쥐 문양의 장석을 부착하여 가족의 행복을 바라는 사용자의 바람을 담았다. 또한 가족의 우환을 막고 부귀富貴와 다남多男, 장수 등을 기원하는 주술적 의미의 부적이나 글귀를 종이에 써 여닫이문 안쪽이나 밑바닥에 부착해 두기도 했다.

이렇듯 농은 장과는 달리 단순한 구조이지만 화려함을 지닌 가구라 할 수 있다. 단순히 가족들의 옷을 보관하기 위한 상자로 보일 수 있지만 여기에는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화사함을 더하고, 가족의 행복을 생각하는 여성의 바람이 담겨 있다. 요즈음 방 전체를 드레스룸으로 꾸미거나 방 한쪽 벽면에 붙박이장을 설치하는 등 기능적인 측면, 편의를 중시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오늘날 조선시대의 농은 생활용품보다는 예술품의 기능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시대와 환경이 변화함에 기인한 것이지만 쓰임과 그 당시 사람들의 미감, 바람을 담은 것이기에 관심을 갖고 바라본다면 표면적인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내면의 아름다움과 그 가치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1)국립민속박물관, 2019, 『한국의식주생활사전: 주생활 1』. pp.576~577.
2)기물의 다리가 되는 몸통. 다리 부분 전체를 일컫는 말
3)국립민속박물관. 2003, 『민속유물의 이해1-木家具』
4)장이나 농의 천판에 양옆과 앞으로 뻗어 나오도록 댄 나무판
5)판판하고 넓게 켠 나뭇조각
6)여러 부재를 잇거나 벌어진 사이가 떨어지지 않도록 단단하게 감아쥐는 쇠
7)모서리를 보호하거나 견고하게 접합되도록 하기 위해 대는 금속 장식
8)오동나무의 표면을 인두로 지진 후 볏짚으로 문질러 약한 부분은 들어가고 단단한 부분은 도드라지게 하여 나뭇결[木理]을 살리는 기법
9)거북목 바다거북과에 속하는 동물의 등과 배를 싸고 있는 껍데기
10)구리로 가늘게 만든 철사

참고자료
·국립민속박물관. 2003, 『민속유물의 이해1-木家具』
·국립민속박물관, 2019, 『한국의식주생활사전: 주생활 1』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 용어사전


글 _ 이주영_국립민속박물관 유물과학과 학예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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