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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고향의 맛

추억을 가장 강렬하게 소환하는 것은 미각과 후각인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맛보았던 음식 한 숟가락은 더 빠르게 더 다채로운 기억을 불러온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 고향의 기억은 각 지역의 향토 요리 속에 담겨있는 셈이다. 그 지역의 기후와 지형, 그로부터 나는 식재료, 오랫동안 사회적 기억으로 누적되어 온 조리법은 개성적인 향토 요리의 전제다.
어쩌면 우리 고향의 맛은 그 명맥이 조금 위태로워졌는지도 모른다. 대형 마트의 식품 구성은 지역 식재료의 개성을 논하기엔 지나치게 폭넓고, 향토 조리법의 개성 역시 21세기에는 쉬운 일이 아니다. 제주도부터 강원도까지 우리 고향들은 어떤 맛을 간직하고 있으며 그 풍미는 현재 어떤 풍경 속에 놓여 있을까?

21세기 고향 음식의 역설

시대는 전국을 하나의 문화권으로 뭉뚱그렸다. 한반도가 그래도 나름 넓다. 산과 강을 경계로 예민하게 기후가 나뉘고 자연이 달라 흔히 나고 즐겨 먹는 식재료도 섬세하게 달랐다. 자연과 별개로 산업과 시장과 생활방식에서는 이제 한반도는 하나가 되었다. 자연에 기반한 ‘고향 음식’, 즉 향토 음식을 더 이상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다. 분당 사람부터 서귀포 사람까지 모두 제육볶음에 된장찌개를 즐기는 시대랄까? 전국 어디서나 같은 재료로 만드는, 맛이 크게 다르지 않은 그 매일의 음식이 머지않아 ‘집의 맛’, ‘고향의 맛’이 될 것만 같다.

‘고창집’, ‘경주집’ 하는 식으로 지명으로 식당 이름을 짓던 시대엔 고창댁이 고창식 식재료로 고창식 음식을 내고 경주댁이 경주식 식재료로 경주식 음식을 냈는데 그런 식당마저도 하나하나 사라져간다. 서울로 올라와 생계를 일구다 얼떨결에 동향 사람들의 향수도 달래고 지역 식문화도 전파했던 ‘OO댁’들이 모두 등 굽은 할머니가 된 탓이다.
이런 현상은 역설적이다. 향토 음식 중 전국구가 된 것들은 되레 풍성해진 것처럼 보인다. 전주비빔밥이나 아구찜, 홍어삼합 등은 지역색 물씬한 전국구 향토 음식 스타다. 때와 운이 좋아 전국에 알려졌고, 전국으로 확산된 덕분에 명맥이 번성하는 향토 음식이다. 그 지역에선 톡톡한 관광 상품으로 활약하고 다른 지역에선 별미 음식으로 귀한 대접을 받는다.

역설 뒤에는 더 많은 것들이 숨겨져 있다. 산업이 아닌 자연에서 먹거리를 구하던 시절에 음식은 제철 이벤트가 아닌 생존의 문제였다. 팔도끼리 거리가 멀던 시절, 각 지역 사람들은 자연이 주는 식재료로 음식을 지어 먹었다. 재배한 작물뿐 아니라 채집, 수렵한 식재료까지 모두가 토착화되어있던 시절이다. 특히 채집과 수렵으로 얻은 야성적인 식재료는 지역마다 주변 자연 환경에 따라 격리된 특성을 드러냈다. 그 식재료를 음식으로 변모시키는 지혜가 누적되어 토착 음식은 고유의 맛을 드러내는 문화가 되었고, 박력 있는 개성을 지역마다 유지했다.

경상도의 콩잎, 전라도의 젓갈

고향의 맛을 과연 사시사철 전국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전주비빔밥, 아구찜이나 홍어삼합에서 찾을 수 있을까? 고향의 기억은 단지 음식이 아니라 그 음식이 담고 있는 모든 정경이다. 관광상품화되고 지역색이 뒤섞여 버린 전국구 음식으로는 그 향수를 좀처럼 달랠 수 없다. 갈무리해뒀던 나물이 쿰쿰한 내를 풍기던 광의 정경, 포구에서 걷어 올린 아구의 펄떡임, 홍어를 손질하던 날랜 손놀림이 결국 고향에 대한 기억이자 고향의 맛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우리 고향에 남아있는 ‘고향 음식’에 대한 향수에는 하나같이 그곳의 색다른 풍경과 우락부락한 야생이 있다.

경상도의 향토 식재료 중 하나는 콩잎이다. 콩잎과 마찬가지로 팥잎도 예전에는 식재료로 요긴하게 쓰였지만 경상도의 콩잎은 현재까지도 이어져 더 각별하다. 콩이 들어차기 전 여린 콩잎, 그리고 무르익어 노랗게 단풍 든 콩잎을 먹는다. 푸릇푸릇하고 부드러운 여린 콩잎으로는 김치를 담근다. 물을 자작하게 잡은 물김치 스타일이다. 양념도 그저 가볍게 친다. 콩잎에선 콩과 마찬가지로 비릿하다가 달달한 내가 풍긴다. 샛노란 단풍 콩잎은 소금물에 몇 달 삭혀야 먹을 수 있다. 푹 삭힌 후에 삶아 갖은 양념을 사이사이 발라 콩잎지를 담가 먹는데 이게 별미다.

한편, 전라도의 근사한 고향 맛은 바다에서 난다. 고흥 쪽에선 겨울 바다에 주렁주렁 매달린 큼직한 굴을 따 특유의 젓갈을 담가 먹는데 서해안의 새초롬하게 알이 잘은 어리굴젓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기개가 있다. 진석화젓이라는 이름인데, 굴소스가 되기 직전의 굴젓이라 해야 할까, 굴은 거의 형체 없이 흐물거리고 즙은 새카맣게 흥건하다. 발효된 강렬한 향취가 무척 진해 젓갈 한 입에 밥 세 숟가락은 너끈히 들어간다. 이 젓갈은 강렬한 ‘고향의 맛’이지만 현대 요리에 적용하기에도 좋다. 냉장고에 보관해두고 엔초비 대신 파스타에 넣거나 볶음요리에 굴소스 대신 넣어도 어울린다. 쌈장 대신 고기를 구워 먹을 때 곁들여낼 수도 있다. 큼직한 석화를 박박 씻어 깊게 우려낸 뽀얀 국물 음식 ‘피굴’과 함께 고흥의 최대 장기로 치는 맛이다.

고향의 맛은 향토성을 압축한다

제주도에선 각재기, 갈치 등 빛나는 생선으로 끓인 맑은 국도, 해초와 돼지고기를 어우른 죽이며 탕도 각별해 보이지만 어쩐지 그 명성이 과해 소중한 맛은 덜하다. 아강발탕쯤 되어야 고향에 대한 없던 향수도 생긴다. 제주도의 향토성이 압축적으로 담겨있기 때문이다. 아강발은 어린 돼지의 족발이다. 돼지고기 명산지인 제주도에서 육지보다 돼지고기를 즐겨 먹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족발을 푹 고아 뽀얀 국물을 내고, 제주도에서 흔했던 메밀가루를 꾸덕하게 풀고, 역시 제주도에서 즐겨 먹는 푸성귀인 배춧잎을 듬뿍 넣는다. 그 말끔하게 진한 국물 한 입으로부터 대체되기 힘든 고향의 풍미가 풍긴다.

충청도로 다시 올라가면 민물새우나 물고기를 꾸덕하게 끓여내 국수를 말아 먹는 어탕국수 맛이 맴돈다. 어탕 한 모금 입에 머금어보자.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게으른 울음을 울고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는 곳에서 작은 산천어를 잡던 오랜 풍경 속 아이가 나였던 것만 같은, 그런 맛이다. 맑은 물에 무릎까지 둘둘 말아 올린 바지가 젖도록 잡은 것이 죄다 피라미뿐이었다면 도리뱅뱅이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상상 속에서 고향의 풍경과 맛이 어우러진다.

험준한 산줄기를 따라 강원도로 올라가면 고랭지의 강퍅한 토양에서 캐낸 큼직한 감자를 투박하게 닳은 손으로 강판에 갈고 전분을 곱게 앉혀 만든 옹심이가 있다. 감자알이 서걱서걱 씹히는 감자전과 감자를 얼리고 삭혀 만든 감자떡까지. 달큰하고 포근한 감자 맛이 혀에 달라붙을 것만 같다.

번거롭고 유별나고 흔하지 않다는 이유로 사라질 위기에 놓인 이 음식들과 각지의 귀한 식재료들을 어찌하면 좋을까. 이 수많은 고향의 맛이 훗날 단지 기억과 추억에 머문다면 그야말로 구슬픈 일이 될 것만 같다. 그 맛의 역사를 기록하고 계승하는 것 역시 민속의 한 부분일 것이다.

* 이 글은 외부 필진이 작성하였으며 국립민속박물관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글_이해림 |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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