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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와! 방학이다!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 학생들은 잠시 학업을 멈추고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모든 교육기관에서 방학을 시행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여름방학의 원형은 역시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부터 비롯된다. 방학 제도가 현재의 형태가 되기까지 한국 초등학교의 방학은 어떤 과정을 거쳐왔는지 잠시 시간여행을 떠나보자.

1950년대부터 시작된 방학의 역사

아이들을 위한 근대적 교육 제도는 1895년 ‘소학교’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다. 1896년 전국 공립소학교의 수는 38개에 불과했다. ‘소학교’라는 명칭은 1906년부터 ‘보통학교’로 바뀌었다가 1938년부터 3년간 다시 소학교로 불리게 된다. 1941년부터는 비교적 익숙한 ‘국민학교’라는 이름이 쓰이기 시작했다. 한국전쟁 이전까지 초등학교 모습에는 일제의 잔재가 만연해 있었으며 방학에 대한 기록 또한 문헌을 통해 찾기 어렵다.

아이들의 방학이 국가기록원 등 공식적인 자료로 기록된 것은 1950년대부터다. 냉난방기가 없던 시절인 1950~60년대 방학은 더위와 추위를 피해 학교를 쉬고 농번기의 농사일을 돕거나 독서나 여행 등으로 여가를 보내는 데 활용됐다. 초등학생들이 친척 집을 방문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다.
여름방학의 최고 인기 장소는 물놀이장이었고 겨울방학에는 동네 골목에서 딱지치기와 구슬치기, 제기차기, 썰매타기 등을 즐겼다. 방학 일과표를 계획하고 실천하는 학생들도 많았지만 많은 아이들이 만화가게로 몰려 웅성거렸다. 1960년대가 지나며 방학 동안 학업을 통해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자는 자성의 목소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1970년대, 방학은 학교생활의 연장이라는 생각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방학이 시작되면 학생들은 성적표 공개와 더불어 방학 시간표를 작성했고 1971년부터 KBS TV는 방학을 맞아 ‘방학생활’이라는 프로그램을 제작해 방영했다. 이전까지 돈을 주고 사야 했던 『방학공부』 대신 문교부(현 교육부)가 직접 발행한 『탐구생활』을 초등학생 5백70만여 명에게 무료 배포하기 시작한 것도 1979년 여름방학의 일이었다.

『방학공부』가 주입식 위주의 가정학습용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면 『탐구생활』은 책의 전체 내용에 과학 과목을 60% 이상 할당해 방학 동안 학생들이 자연과 접하고 각종 동식물 상태를 탐구하면서 스스로 연구하고 답을 찾아보는 내용을 담았다. 『탐구생활』은 다양한 체험을 직접 해본 후 기록하는 문제가 다수를 차지했다.

방학에는 다양한 체험 활동을

1980년 12월 1일 KBS 1TV에서 컬러 텔레비전 방송이 처음 시행되었다. KBS 2TV와 MBC TV 또한 12월 22일 컬러 영상을 송출하기 시작하자 방학을 맞은 초등학생들은 텔레비전 앞에 삼삼오오 둘러앉기 시작했다.
영상 미디어를 통한 간접 경험이 급속도로 늘어난 시기지만 이 무렵까지는 방학기간 중 친척과의 교류나 야외 활동이 무척 잦았다. 시골 친척을 열흘씩 방문해 개울에서 민물고기를 잡거나 원두막에서 수박을 먹는 등 도시 바깥에서 다양한 추억을 쌓았다. 1970년대에 비해 방학 문화활동 또한 급격하게 늘었다. 80년대 기록에 따르면 문화유적지 순례, 박물관과 미술관 강좌, 음악회와 컴퓨터 교실 참가 등 전에 비해 훨씬 다채로워진 문화활동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1996년부터 ‘국민학교’는 ‘초등학교’로 변했다. 여름방학 학생들의 생활상도 많은 변화를 맞았다. 방학 숙제에 빠지지 않았던 곤충채집이 1990년대에 들어서며 사라진다. 1994년 환경처와 한국교총은 여름방학을 ‘환경 방학’으로 정하고 여름방학 숙제에 곤충과 식물채집을 금지했다. 그 대신 쓰레기를 재활용한 공작 숙제가 시작되었고 일회용품 안 쓰기, 환경보호 실천 일기 등을 가족실천과제로 내줬다. 그해 전국 7천 4백여 개 초등학교에는 재생용지로 제작된 환경 방학 일기장이 배부됐다. 도시 아이들에게 자연 체험의 기회가 됐던 채집 숙제의 빈자리는 야영장과 자연체험 캠프 등 가족 단위 여행으로 대체되었다.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자 전인교육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졌다. 방학 도중 컴퓨터와 스포츠 활동 등에 참여하며 창의적으로 자기 개발에 힘쓰는 것이 강조됐다.

21세기의 방학은 학업의 연장

e-나라지표의 가족 형태별 분포에 의하면 핵가족 비중은 1970년 71.5%에서 2015년 81.7%로 증가했다. 핵가족 증가의 여파는 방학 활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과거처럼 방학 동안 친척을 방문하는 비중은 자연스럽게 줄었다. 2017년 시행된 자녀 연령별 맞벌이 가구 비율 조사에서는 초등학생 자녀를 둔 맞벌이 부부의 비율이 51.3%를 차지했다. 초등학생을 둔 가정의 절반이 맞벌이 부모인 셈이다. 방학 동안 학생들의 학원 수강이나 과외 활동도 증가할 수밖에 없었다.

2012년부터는 모든 토요일이 휴업일이 되었다. 최근 주 5일 수업을 전면 실시하는 학교들이 있는데, 그 경우 매 학년 190일 이상의 수업일수만 채우면 된다. 나머지 휴일은 방학일수에 포함시킬 수 있어, 더욱 융통성 있게 방학기간을 조정할 수 있게 되었다.

방학을 맞이하고 즐기는 형태의 변화로부터는 그 시대와 세대의 고민을 읽어볼 수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변함없는 사실 또한 존재한다. 초등학생에게 방학은 소중한 선물이라는 점이다. 방학의 근본적 취지는 연속된 학습으로부터 휴식과 재충전을 취하고 다시 학교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학원과 과외 등 방학 동안의 학업이 지나치게 과열되는 것 또한 21세기의 현상이다. ‘학생들의 휴가’라는 방학의 본질적 의미가 상실되지 않도록 어른들의 각성과 지도가 필요할 것이다.

* 이 글은 외부 필진이 작성하였으며 국립민속박물관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글_최우성 | 대부중학교 교사, 한국교사학회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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