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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서해5도와 강화도, 생존의 섬에서 평화의 섬으로

섬을 걷고 또 걸었다. 저녁 노을이 질 무렵 하염없이 걷다 보면 섬을 한 바퀴 돌아서 제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매일 걸어도 육지에 닿을 수 없다는 당연한 사실이 단절감으로 다가왔다. 지금은 섬을 나왔으나, 그곳을 그리워하고 있다. 섬은 그러하다. 섬에서는 육지를, 육지에서는 섬을 그리워한다. 안도현 시인은 이런 나를 꾸짖는 듯하다.

“섬에 한번 가봐라, 그곳에
파도 소리가 섬을 지우려고 밤새 파랗게 달려드는
민박집 형광등 불빛 아래
혼자 한번
섬이 되어 앉아 있어봐라

삶이란 게 뭔가
삶이란 게 뭔가
너는 밤새도록 뜬눈 밝혀야 하리(‘섬’ 중에서)”

서해5, 치열한 섬살이의 기억

사람이 사는 섬이 있고, 사람이 살지 않는 섬이 있다. 매우 큰 섬이 있고, 갯바위 수준의 작은 섬도 있다. 섬은 다양한 층위를 지니지만 바다에 둘러싸여 있기에 모두 섬으로 통칭된다. 섬은 고립된 지리적 환경으로 독자적이고 폐쇄적인 문화를 형성한다. 고립되었기에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과 낭만, 안식처라는 이미지가 따른다. 그러나 섬에서의 삶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다. 안도현은 파도에 지워지지 않으려 치열하게 싸우는 것을 섬의 숙명으로 봤다. 그렇다. 섬살이는 치열하다. 나는 그때 그 섬에 있었음을 그리워한다. 섬 생활의 낭만이 아닌, 그 치열한 곳에서 치열하게 살았던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리라.

연평도의 민속문화를 조사하기 위해서 2017년 1월부터 10월까지 연구원 2명과 함께 대연평도에 거주하며, 간혹 소연평도, 백령도, 대청도를 오갔다. 이 섬들은 서해5도라 불리는 단절된 섬이다. 육지와 멀어서 공간적으로 단절되고, 북방한계선(NLL)과 접해 있어서 야간조업이 금지되어 밤의 시간과 단절된 섬이다.

연평도는 꽃게잡이의 섬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꽃게잡이 어선은 동이 틀 무렵이면 1천 톤과 5백 톤급 어업지도선의 호위를 받으며 어장으로 나간다. 서해5도 특별경비단이 2017년에 창설되기 전까지 북방한계선을 따라 내려온 중국의 불법 어선으로 골머리를 앓았다. 참다못한 연평도 선원들이 중국 어선을 나포하는 일까지 있었다. 해경도 힘에 부쳐하는 일을 어민들이 할 정도로 치열한 삶을 살고 있다. 치열하지 않으면 살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연평도 주민들은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를 DMZ보다 위험한 화약고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NLL 일대에서는 1․2차 연평해전이 있었고, 2010년에는 북한의 포격으로 섬 전체가 쑥대밭이 되다시피 했다. 남북 간에 고강도 충돌이 빈번히 발생한 수역이다. 여기에 중국의 불법 어선은 수시로 연평 어장을 넘나든다. 밤에는 조업을 할 수 없고, 북한 땅과 마주하고 있는 섬의 동쪽 바다는 바라만 볼뿐 들어갈 수는 없다. 치열하지 않고서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어찌 살아남겠는가.

1차 연평해전 전승비
소연평도
연평도 갯벌에서 해산물 채취하는 주민
NLL에 정박한 중국의 불법 어선
연평도 구리동 해변의 철책선
연평도 조기전관과 석양

분단의 기억에서 평화의 희망으로

3천여 개의 섬 중에서 남북 분단의 아픔과 직접 대면하고 있는 섬은 서해5도와 강화도다. 필자는 연평도 조사에 이어 다음 해인 2018년에는 강화도의 포구를 조사했다. 강화 본섬뿐만 아니라 부속섬인 석모도와 교동도의 포구를 포함했다. 강화의 포구를 누비고 다니면서 강화 북단은 여백으로 남겨질 수밖에 없음에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다. 남북 분단으로 강화 북단의 포구는 모두 사라졌기 때문이다. 분단 전에 강화도 최대 포구였던 산이포조차 흔적을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산이포는 개성과 한양으로 향하던 수백 척의 선박이 머물던 곳이었다. 밀물을 기다렸다가 한 갈래는 예성강을 따라 개성으로 올랐고, 또 다른 갈래는 한강을 따라 한양으로 갔다. 7백여 가구가 밀집한 마을의 골목길은 아이들이 숨어들면 찾을 수가 없을 정도로 북적였다고 노인들은 회상한다. 5일장이 열리는 날에는 황해도 연백 사람들까지 모여들었다. 남북이 분단되면서 포구 앞으로 군사분계선이 그어졌다. 포구는 폐쇄되었고, 사람들은 떠났다. 남아 있던 일부 주민들도 강제 이주되었다. 시끌벅적하던 마을은 들판으로 변했고, 포구가 있던 물가는 철책으로 막혔다.

강화 북단에서 바라본 황해도 개풍군
강화 최대 포구였던 산이포는 현재 농경지로 변해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강화도 북단과 황해도 개풍군
백령도 두무진

다른 지역의 섬과는 달리 서해5도와 강화도는 남북이 대치하는 군사요충지다. 이들 섬은 감당하기 벅찬 배역을 60여 년 동안 맡아왔다. 이제는 남북 평화의 전진기지로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남북한은 2018년 4월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기로 합의했다. 연평도와 황해도 앞바다에서 남과 북의 어선들이 어우러져서 고기를 잡는 장면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같은 해 12월 반가운 뉴스가 이어졌다. 정전협정 이후 65년 만에 최초로 남북이 공동으로 한강하구 수로조사를 실시했다. 35일간, 6백60km 측량을 하여, 선박이 다닐 수 있는 물길을 찾아냈다. 암초나 사구 등의 위치를 확인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민간 선박의 접근이 통제되던 한강하구 수역을 평화공간으로 복원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 그 중심에 강화 북단의 산이포가 있다. 머지않아 남북 평화의 공간으로 되살아날 연평도, 백령도, 대청도 앞바다와 강화 산이포의 화려한 미래를 상상하는 일은 즐겁다.

글_김창일│국립민속박물관 섭외교육과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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