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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음악을 새깁니다

다운로드와 스트리밍이 지배하는 디지털 음악 시장에 홀연히 재등장한 LP의 활약이 심상치 않다. 오랫동안 음악을 듣는 가장 대표적인 수단이던 LP는 1990년대 중반 CD에게 왕좌를 내준 뒤 음악 애호가의 고집스런 수집 대상이자 고전적인 취미 정도로 여겨져 왔다. 디지털이 완벽하게 세상을 지배한 2010년대에 LP가 재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흔한 복고 열풍의 하나라고 생각하기엔 전 세계 음반 시장에 차지하는 비중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2년 전 마장뮤직앤픽쳐스도 LP의 부활을 꿈꾸며 등장했다. 이곳의 하종욱 대표는 어떤 가능성을 보았을까. 음악평론가이자 공연 연출가, 음반 프로듀서로 활약해 온 그가 말하는 LP의 생명력과 미래의 가능성을 들어보았다.

 

Q. 마장뮤직앤픽처스는 2017년 당시 LP를 생산, 제조 시스템을 갖춘 유일한 제작사로 시작했다. 먼저 회사 소개를 부탁한다

하종욱_사라졌던 LP의 유산을 복원해 부활시키는 데 일조하는 회사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음악을 새깁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LP를 생산하고 있다. 시작할 때는 유일한 제작사였지만 지금은 후발 주자가 등장했다.

Q. 다른 이들 눈에는 맨땅에 헤딩하기로 보일 수 있는 일이었겠다

하종욱_두 측면에서 이야기할 수 있다. 산업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2010년대 들어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조금씩 LP 붐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다 2016년에 지각변동이 일어난다. 전세계 음악시장 매체 순위에서 1위가 스트리밍, 3위가 다운로드, 4위가 CD였고 LP가 2등이었다. 명백한 부활이고, 르네상스였다. 비산업적으로도 나를 비롯해 많은 이들에게 LP는 여전히 살아 숨 쉬는 매체였다. 생산과 산업적인 측면에서는 역사의 뒤안길에 있었을지언정 말이다.

 

Q. 당시 해외 시장의 움직임이 이 모험에 영향을 미쳤을까?

하종욱_사실 먼저 준비했던 사람들이 있다. 나의 음악적 동지이자 조언자였던 C.림이라는 뮤지션이 그랬다. 사실 그가 먼저 이런 이야기를 할 때 나는 말리는 입장이었다. 뜻은 좋고 개인적으로야 무조건 동의하지만 ‘과연 이게 될까?’하는 걱정이 앞섰으니까. 그런데 만류하는 과정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 순간 그의 뜻에 동화되어 있었다(웃음). 결국 우리 뜻에 동의하는 선후배, 동료들을 규합해 ‘바이닐 팩토리’라는 공장을 공식적으로 런칭하는 등 지난한 준비 끝에 2017년 「조동진 6집」을 LP로 내놓을 수 있었다.

 

 

Q. 2년 정도가 흘렀는데 시장의 반응은 어떤가?

하종욱_우리나라는 아직 스트리밍, 다운로드, CD가 1~3위이고 LP가 압도적 꼴찌다(웃음). 아직 수지타산은 맞지 않지만 LP를 그리워하는 사람들, 구매를 희망하는 사람들과 SNS로 접촉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고, 어떤 흐름을 느끼고 있다. 특히 2030세대 젊은이들의 좋은 반응을 보면서 LP가 대중화되었을 때를 기대하고 투자하는 차원에 있다. 결국 LP를 듣는 고객들의 필요를 만족시킬만한 좋은 음질, 품질을 내놓는 것이 중요하다.

 

Q. 그 새로운 흐름 속에서 어떤 희망을 보았나?

하종욱_‘안 했으면 어쩔 뻔했을까’ 싶을 만큼 만족스럽다. 국내 LP 시장은 2위를 차지한 세계 시장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지만 일련의 실험과 진화의 과정 속에서 우리나 고객 모두 만족할 수준에 이르렀고, 호평이 쏟아졌다. 우리 음반은 다소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YES 24나 알라딘 등의 LP 전문 인터넷 숍에서 공히 1위를 차지하고 있고, 평가도 단연 1위다. 우리 모두 약간 고무되어 있다(웃음).

 

Q. 한 인터뷰에서 ‘LP는 음악을 듣는 가장 근원적 행위라고 말한 게 기억난다. 음반제작자이자 프로듀서로서 LP의 매력, 생명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하종욱_디지털 음악의 경우, 찰나의 클릭과 스트리밍 속에서 사람들은 음악을 켜놓고도 계속 다른 일을 한다. 하지만 LP는 굉장히 불편하고 까다롭다. 소중하게 보관해야 하고, 조심스럽게 꺼내서 정성스럽게 먼지를 닦고 턴테이블에 올려놔야 한다. 이른바 ‘소유’와 ‘접촉’ 후에 ‘감상’을 허락한다. 하지만 이 까다로운 LP는 첨단 디지털이 채워줄 수 없는 ‘원음에 가장 가까운 소리’를 낸다고 생각한다. 나는 음반 제작 프로듀서와 공연 연출을 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거치지 않은 ‘순수한’ 소리의 특성을 안다. 그 원음이 왜곡되지 않고 가장 풍부하게 전달되는 매체가 LP라고 생각한다.

 

Q. LP의 그런 특성과 매력이 오늘날의 부활을 이끈 것일까?

하종욱_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의 역할을 이야기하고 싶다. 소멸되어 가던 아날로그를 향한 근원적인 그리움들이 모여 부활을 이끌었다고 본다. LP뿐만 아니라 커피나 캠핑처럼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아날로그 방식을 좇는 이들이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디지털이라는 편리함, 그 문명과 과학 기술이 끝내 포착하지 못했던 사람다움, 문화예술을 즐기는 근원적인 즐거움에 대한 갈증이 오늘날 아날로그 LP 사운드의 부활을 이끌었다고 생각한다.

 

 

Q. 지금은 부활했다고 하지만 단순히 복고를 소비하는한때의 유행일 수도 있다

하종욱_지금 LP 부활을 이끄는 세대는 나처럼 LP를 기억하고 추억하는 중년 세대가 아니라 한 번도 LP를 만난 적 없는 2030 세대다. 그들은 LP의 불편함, 까다로움에 오히려 매료되었다. 지난한 과정 끝에 선사 받는 순수한 소리, 그 포만감, 만족감, 즐거움 말이다. 때문에 지금의 현상은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명백한 오늘의 이야기다.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앞으로도 지속되어야 할 하나의 유산이라는 믿음과 소명의식이 있다.

 

Q. 그런 의미에서 마장뮤직앤픽처스의 앞으로의 계획과 꿈을 들려달라

하종욱_LP는 어린 시절부터 나에게 음악의 아름다움 그리고 풍부함을 일러주었던 음악적 길잡이, 스승과 같은 존재였다. LP가 지니고 있는 그 소리의 결, 그 따뜻한 질감과 소리의 진심을 잘 담아내서 이를 새로운 시대, 새로운 대중들과 나누는 데 일조했으면 하는 것이 나와 우리 회사 직원들의 진솔한 바람이다.

 

 

 

글_편집팀
사진_김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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