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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아름다운 커피 한 잔

검은 빛깔, 쓰디 쓴 맛. 현대인들은 오늘도 커피 한 잔으로 바쁜 하루를 시작한다. 그런데 그 한 잔이 우리가 미처 상상치 못한 좋은 일에 일조하고 있다면? 대양을 세 개나 건너야 있는 지구 반대편 누군가의 삶을 바꿔놓을 수 있다면? 그렇다면 이보다 더 착한 한 잔이 세상에 있을까? ‘찻잔 속의 태풍’이 아니고 ‘찻잔 속의 행복’이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이런 취지에 동의하는 한국인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인터넷 쇼핑을 하거나 몇몇 카페에 찾아가 커피 한 잔을 주문하면 된다. 유학 시절 외국에서 마셨던 공정무역 커피를 한국에서도 마시고 싶었던 한 여인이 지난 십여 년간 이룬 성과가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재단법인 아름다운커피 한수정 사무처장은 자타공인 우리나라 공정무역 커피의 개척자다.

 

Q. 공정무역, 공정무역 커피. 한번쯤 들어본 단어지만 그 의미를 제대로 아는 이는 드물다

한수정 사무처장이하 한수정_‘물건을 살 때 개발도상국 사람들에게 제값을 주는 것’이다. 개발도상국 커피 생산자에게 노동에 부응하는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커피를 사는 행위를 통해 장기적으로 자립을 돕는 것이다. 해외에서 공정무역이라는 무역체계가 시작된 것이 1980년대다. 개발도상국가 빈곤문제의 원인을 들여다보니 무역거래 때 제값만 쳐줘도, 이게 물자를 원조하거나 학교를 지어주는 것보다 낫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학교를 지어주기보다 학교 지을 돈을 벌게 해주면, 직접 지은 학교니까 훨씬 더 소중하게 꾸려나가지 않겠나. 남이 와서 그냥 뚝딱 지어주면 그게 망가져도 ‘다시 와서 도와주겠지’ 하는 의존성만 강해질 수 있다.

 

Q. 쌀을 가져다주는 것보다 쌀을 생산할 논마지기를 마련해주는 게 낫다는 뜻인가?

한수정_그렇다. 그런데 농민이 논마지기를 살 수 있을 때까지 그가 생산한 쌀의 값을 제대로 주는 게 먼저다. 애초에 제값을 안 줬기 때문에 이 사람들이 자기 논을 못사는 것이다. 사실 예전에는 ‘물고기를 잡아주기보다 낚는 법을 알려준다’고 했지만 이것도 공정무역 입장에서 보면 말이 안 되는 거다. 물고기를 낚으러 저수지에 갔는데 그 저수지가 부잣집에 독점되어 있거나, 그 물이 너무 더럽거나, 물고기의 질이 좋지 않거나 아예 없거나 하는 여러 경우의 수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저수지 물고기의 품질을 올려주는 일도 같이 하고, 저수지를 농민들이 소유할 수 있게 돕는 것이다.

 

 

‘아름다운 커피로 공정 무역 세상을 발견한다’는 취지가 아름답다.

 

Q. 국가나 거대 커피 회사가 아닌, 아름다운 커피 같은 작은 재단법인에서 어떤 식으로 그들과 접촉하고 계약해서 거래하는지 궁금하다

한수정_소작농이 개인적으로 판로를 개척하는 데 한계가 있다. 판매를 하려면 15톤은 나와야 하는데 개인이 2백, 3백kg 만들어서는 수출을 못하니까. 우리나라야 온라인이 발달해서 쌀 한 가마니라도 팔 수 있다지만, 커피는 태생적으로 그게 불가능하다. 그래서 커피 판매국에는 커피를 파는 농민으로 구성된 협동조합들이 있다. 커피 박람회에 가면 그런 협동조합이나 커피 판매상을 만나게 된다. 우리는 그 중에서 공정무역에 참여하고 싶은 커피 상인을 만나는 거고. 주로 ‘공정무역 조합 인증’을 받은 곳 중에서 인터뷰를 통해 물량공급 능력 등을 두루 본 다음 거래를 시작한다.

 

Q. 커피의 소량 인터넷 거래가 태생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건 무슨 뜻인가?

한수정_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커피를 키우는 개발도상국 국민은 정작 커피를 많이 섭취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콜롬비아, 네팔 사람에게 커피는 주 음료가 아니라는 말이다. 네팔 사람들은 차를 미시고, 콜롬비아 사람들은 아침에 과일차를 마신다. 식민지 시절, 제국주의 국가들은 이 나라의 값싼 노동력과 넓은 땅을 이용하기 위해 커피나무를 심었다. 그러니 우리나라 쌀처럼 내수시장이 존재하지 않는다. 있어도 아주 소수다. 그러니 커피는 그들에게 태생적으로 수출작물인 거다.

 

Q. 그런 특성 때문에 공정무역의 여러 대상 중에서 커피를 선택하게 된 건가?

한수정_그렇다. 공정무역은 캠페인과 비즈니스를 결합한 활동이라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대상이 필요했다. 그게 커피였다. 커피는 원유原油에 이어 전 세계 교역량 2위를 차지하는 품목이다. 처음엔 아름다운가게 안에서 공정무역 수공예품을 취급했다. 옷이나 기념품 같은 것. 그런데 이런 건 한번 사면 10년을 넘게 쓴다. 그래서 식품류에 눈을 돌렸다. 농업 관련 문제이기 때문에 설명하기도 좋고, 또 실제로 커피 농가가 굉장히 힘들고. 그런 사정을 사람들에게 설명하면 공감대를 이루기가 쉽다. ‘아, 내가 이렇게 매일 마시는 커피에 이런 슬픈 이야기가 있구나’ 하고 느끼는 것이 훨씬 더 크다.

 

 

Q. 공정무역과 공정무역 커피를 알게 되고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한수정_원래 공정무역에 관심이 많았다. 2000년대 중반쯤 외국에 공부하러 갔는데, 공정무역 상점도 많고, 일반 소비자가 쉽게 다가갈 수 있더라. 한국에서 꼭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다. 2008년 돌아와서 아름다운가게에 입사했는데, 소규모지만 이미 공정무역을 하고 있었다. 나는 적극적으로 ‘더 하자’고 목소리를 냈고, 이듬해 첫 공정무역 홍보캠페인 팀장이 되었고, TV 다큐멘터리 「히말라야의 선물」을 찍는 등 조금씩 일이 커졌다.

 

Q. 아름다운가게에서 법인을 분리한 게 2014년인데, 여전히 두 지붕 한 가족 같은 느낌이다

한수정_아름다운가게에서 우리나라 최초 공정무역 커피인 ‘히말라야의 선물’을 출시한 게 2006년이다. 그 후 공정무역 커피 운영이 안정되고 다크초콜릿도 시작하는 등 일이 잘 진행됐는데 그럴수록 법인 분리의 필요성이 대두될 수밖에 없었다. 아름다운가게는 기본적으로 재활용 자선가게다. 그래서 헌 물건을 기증받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반면에 우리는 물건을 잘 수입해 와서 잘 파는 게 중요하다. 비즈니스 모델이 틀린 거다. 그래서 서로 발전하려면 독립이 필요하겠다는 결론을 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 빈곤문제의 부조리한 부분을 고쳐나간다’는 문제의식 등 같은 정신을 공유하고 있으니, ‘두 지붕 한 가족’ 이 맞는 말이다.

 

Q. 분리한 지 4. 현재 아름다운커피가 거래하는 국가, 그리고 취급 품목은 어떻게 되나?

한수정_네팔, 르완다, 페루, 인도네시아, 파퓨아뉴기니, 콜럼비아, 파라과이 등이 교역 국가다. 현재는 커피말고도 초콜릿, 마스코바도, 원당 같은 설탕류, 캐슈넛, 브라질너트 같은 견과류도 취급하고 있다. 커피, 설탕 등 품목 안에서 취급 상품을 세분화하면 대략 1백여 종 정도가 된다.

 

 

Q. 그 정도면 매우 괄목할만한 성과다

한수정_몇 가지 성과가 있다. 우선 ‘국제개발사업’이라고 해서 현지에서 커피만 사오는 것이 아니라 협동조합이 잘 운영되고 비즈니스를 잘 할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을 탄탄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이른바 ‘씨드투컵Seed to Cup’이라는 가치사슬을 완성했다. 기업에서 부가가치가 생성되는 과정이 가치사슬이다. 우리는 생산자 접촉부터 시작한다. 묘목 심어서 커피나무 키우고, 커피 따서 한국에 보내고, 한국에서 볶아서 포장하고, 매장에서 잔 커피를 판매하는 것까지 모두 한다. 그 전 과정을 자신 있게 컨트롤 할 수 있는 커피 회사는 한국에 우리 밖에 없다고 자부한다. 캠페인을 통해 지금까지 3만여 명의 학생들에게 공정무역 강의를 하는 등 교육 활동도 열심히 했다. 처장 선출제 등 조직 내 민주주의 시스템을 이룩한 것도 내부의 성과다.

 

Q. 아름다운커피의 뜻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이 커피를 마실 수 있나?

한수정_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원두 등을 구매할 수 있다. 서울과 경기도에 4곳의 커피숍도 운영하고 있다. 일반 커피숍과 똑같이 커피를 마시고 초콜릿, 원두 등을 사갈 수 있다. 생협 같은 대규모 거래처에도 납품하고 일반 도매상, 카페 등에서도 주문이 온다. 그런 저런 것들을 다 포함하면 전국 1천여 곳에 커피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Q. 아름다운커피의 목표를 말해 달라

한수정_우선은 시장에서 ‘1%가 되자’는 것. 그건 우리 힘으로 불가능은 아니지만, 매우 어렵다. 지금 우리나라 커피 시장 규모가 11조라고 한다. 1천억이 되어야 1퍼센트가 되는 거다. 2008년 7천억이었던 시장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다. 매출을 늘려도 1퍼센트의 관문은 계속 좁아진다. 내려오는 엘리베이터에 거꾸로 올라가려고 안간힘을 쓰는 기분이다.

 

 

Q. 추진력이 대단한 만큼 앞으로의 계획도 많을 것 같다

한수정_자잘한 계획은 너무 많다. 하지만 그 모든 것에 우선해서 공정무역이 사람들에게 보다 널리 알려지고 힘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되려면 한국의 주류 커피 회사들이 공정무역에 참여해야 한다고 본다. 안 그러면 계속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공정무역이 발달한 영국의 경우, 스타벅스 매장에서 잔으로 마시는 커피가 전부 공정무역 커피로 바뀌었다. 그건 소비자들이 원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소비자의 한마디가 우리 같은 단체의 백 마디 말보다 강력하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에 공정무역을 알리는 캠페인 활동이 정말 중요하다.

 

Q. 아름다운커피는 결국 세상을 보다 좋게 바꾸려는 활동이다. 가장 보람 있을 때는 언제인가?

한수정_커피엔 사람을 각성시키는 효과가 있다. 정신이 들게 한다는 얘기인데, 실제로 공정무역 커피를 마시다 보면 육체적으로 깨우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 삶에 대한 어떤 성찰을 하게 된다. 나를 포함해 함께 활동하는 사람들, 커피를 소비하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부분이다. 처음엔 커피 한 잔에서 시작하는데, 나중엔 옷도 고민하게 되는 식이다. 패스트 패션을 즐기던 사람이 아름다운가게에 가서 재활용 옷을 사게 된다. 그러면서 주변에도 권하게 된다. 우리 삶을 바꾸는 아주 작지만 큰 시작이 일상 속 커피 한 잔에서 시작되는 거다.

 

 

글_편집팀
사진_김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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