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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저장소

두 눈이 스르르 감기는 맛, 빙수기와 빙수그릇

햇빛이 내려쬐는 뜨거운 여름. 더위를 견디지 못해 하얀 눈처럼 쌓인 얼음, 단팥, 연유 등이 듬뿍 들어간 빙수를 먹는다. 가정용 빙수기가 나왔던 시기부터 사먹었던 빙수는 가정에서 만들어 먹을 수 있었다. 여름철 매일 빙수를 만들어 먹기 위해 장만했던 빙수기가 가정에 하나쯤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빙수기로 간 얼음을 담는 유리그릇. 여름철 추억을 담고 있는 빙수기와 빙수그릇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가정용 빙수기_높이 27cm× 너비 19cm

빙수그릇_높이 4cm×입지름 12cm×바닥지름 4.2cm

 

1970년대 금성산업사의 훼밀리 빙수기는 가정용 소형 빙수기로 사람이 손잡이를 돌려 얼음을 갈 수 있는 방식이다. 빙수기 하단에 빙수그릇을 받치고 얼음을 갈면, 갈린 얼음이 빙수그릇에 쌓이게 되는 구조이다. 갈린 얼음에 단팥, 연유, 과일, 아이스크림 등을 넣으면 달콤한 빙수가 만들어진다. 빙수그릇은 하얗게 갈린 얼음과 화려한 색감의 장식이 부각될 수 있도록 투명한 유리로 만들어졌다.

 

눈이 부시게 하연 어름 우에 유리가티 맑게 붉은 딸긔물이 국물을 지을 것처럼 저저 잇는 놈을 어느 때까지던지 드려다 보고만 잇서도 싀원할 것 가흔대 그 샛빨간 데를 한 술 떠서 혀우에 살적을 녀노보라. 달콤한 찬 뎐긔가 혀끗을 통하야 금시에 등덜미로 쪼르르르 다름질해 퍼저 가는 것을 눈으로 보는 것처럼 분명할 것이다. () 그냥 전신이 녹아 아스러지는 것 가티 상긋하고도 보드럽고도 달큼한 맛이니 어리광부리는 아기처럼 딸긔 탄 어름물에 혀끗을 가만히 담그고 두 눈을 스르르 감는 사람 그가 참말 빙수맛을 형락할 줄 아는 사람이다.

 

위의 글은『별건곤』에 실린「빙수」라는 제목의 글이다. 빙수의 차갑고 달콤한 맛을 향유하는 사람의 모습이 생생히 표현되어 있다. 1920년대 빙수를 만들 때는 얼음을 갈아 빨간 딸기물이나 주황 오렌지 물 등의 첨가물을 넣어 맛과 색을 내었다. 첨가물은 단 맛을 내는 설탕물에 색소나 과일 향료를 탄 것이 대부분으로, 이런 첨가물 외에 설탕에 졸인 단팥, 과일, 달걀 등을 얹어 먹기도 했다. 과거 꿀이나 엿으로 내던 단맛은 점차 설탕으로 대체되었다.

 

빙수점_매일신보, 1917년 7월 18일

청량음료 시범 가두판매대, 1968.08.06_서울사진아카이브

 

빙수는 얼음의 생산과 궤를 함께 한다. 1910년대 제빙소가 설립되면서 식용 얼음 사용이 본격화되었으며, 이로 인해 궤짝이나 이동식 매대를 들고 빙수, 냉차 등을 파는 행상이 등장했다. 1930년대가 되면서 소형 동력기가 보급되어 소규모 제빙시설이 가능해졌고, 제빙이 소규모로 가능해지면서 빙과업이 각 지방 도시로 확산되었다.

 

가정용 빙수기의 사용은 가정에서 얼음의 생산이 가능해졌음을 보여준다. 가정에서는 보통 냉장고를 이용해 얼음을 얼리며, 우리나라 최초의 냉장고는 1965년 금성사에서 생산하였다. 냉동이 가능한 냉장고의 보급과 함께 각 가정에서는 직접 만든 얼음을 갈아 빙수를 만들어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금성 냉장고 GR-120, 등록문화재 제560호_문화재청

 

요즘 길을 나서면 빙수 전문점이나 카페 등에서 다양한 재료를 이용한 빙수를 쉽게 접할 수 있다. 때문에 점차 얼음을 가는 수고스러움을 감수하며 집에서 빙수를 만들어먹지 않는 시절이 되었다. 하지만 군것질 거리가 없던 시절, 에어컨이 발달해 있지 않은 시절, 집에서 만들어먹는 빙수는 「빙수」라는 글처럼 ‘전신이 녹아 아스러지는 것 같은 상긋하고도 보드럽고 달콤한 맛’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참고자료
生影波, 「氷水」,22, 1929.8, 92~96면
매일신보, 문화재청, 서울사진아카이브
김동식,「1920~30년대 대중잡지에 나타나는 음식 표상」,『한국학연구』44, 2017.2.
이은희,「근대 한국의 제당업과 설탕 소비문화의 변화」, 연세대학교 대학원, 2012.

 

 

글_권선영|국립민속박물관 유물과학과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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