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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옛 마을에 예술을 입히다

참 예쁘다. 2백여 년 전 정조가 이곳에 행궁을 완성하고 난 뒤에도 같은 말을 읊조리지 않았을까. 한양에서 백리나 떨어진 이 시골 마을에 들어선 ‘궁’은 그야말로 장관이었을 테고, 도시는 빠르게 번화해갔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 강산이 스무 번도 넘게 바뀌며 한때의 영광만을 간직하고 있던 ‘왕의 도시’는 다시 한 번 봄을 만났다. 이번엔 왕이 아닌 토박이 주민들과 예술가들의 차례다. ‘대안공간 눈’이라는 공간을 차려 젊은 예술가들을 끌어 모으고, 동네 주민들을 설득해 역사의 고장에 예술의 옷을 입힌 이윤숙 대표를 만났다.

 

수원하면 화성은 알아도, 그 안의 행궁동은 모르는 사람이 많다. 많은 곳 중에 행궁동에 터를 잡고 행궁동 예술마을 만들기활동을 하게 된 이유가 있다면?

이윤숙 대표 이하 이윤숙_행궁동을 이루는 12개 동네 중 하나는 아니었지만 나는 화서동에 오래 산 수원 토박이다. 이 동네는 결혼하면서 살게 되었다. 대안공간 눈 공간이 시아버지가 손수 지은 우리 시댁이다. 시부모님을 모시며 살다가 시어머니 돌아가시면서 집을 비영리 전시공간으로 꾸미게 되었다. 2003년부터 구상을 시작해 2004년에 공사를 했다.

 

쇠락한 동네는 ‘행궁동 예술마을 만들기 프로젝트’가 시작되며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젊은 예술가들을 위한 비영리 전시공간을 열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이윤숙_나는 조각가다. 대학 졸업하고 먹고 살기 위해 미술학원을 열었는데 내가 키운 제자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또 할 게 없으니 입시학원을 열었다. 스승과 제자가 경쟁하는 셈이었다. 그게 싫어 학원 문을 닫았다. 제자들이 고향 수원에 돌아와 예술 활동을 해야 하는데 서울이 아닌 이 위성도시에선 비빌 언덕이 없었다. 2000년대 초반 수원에 개인 화랑 하나가 없었으니까. 그러니 서울 가서 활동을 한다. 수원은 껍데기만 남는 거지. 그래서 젊은 예술가들에게 비빌 언덕 만들어주고 오래된 마을도 활성화되기를 바랐다. 1997년 수원 화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되고 나서 마을이 슬럼화 되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후 오히려 슬럼화 되었다니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윤숙_다들 그렇게 생각하는데 막상 세계문화유산이 지정되고 나서 오히려 막히는 게 많았다. 문화유산 보호 정책들 때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마침 근처에 신도시가 개발되니 돈 있는 사람들은 다 떠나고. 아주 옛날, 이 성 안에 사는 게 수원 사람의 로망이던 시절도 있을 만큼 부촌이었지만 다 옛날 얘기가 되었다.

 

이윤숙 대표는 수원의 예술가들에게 기회를 주고 행궁동이 옛 모습을 찾기를 바라며 대안공간 눈을 열었다.

 

그러면 대안공간 눈을 통해 행궁동 예술마을 만들기 프로젝트가 시작된 건 생각보다 오래된 계획인 셈이다.

이윤숙_그렇다. 서울의 삼청동이나 북촌만큼 오래된, 이 같은 움직임들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요즘은 익선동이나 경주의 황리단길 등이 있지만, 우리가 이 계획을 시작할 때 비슷한 예가 전혀 없었다. 그냥 이 아름다운 마을이 이렇게 방치된 채 슬럼화 되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다. 무모하지만 일단 시작하고 보자는 마음이었다.

 

동시에 예술가로서 후배 예술가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은 마음도 컸겠다.

이윤숙_세 가지 이유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내 고향 행궁동의 아름다운 옛 모습을 찾는 것. 둘째, 나의 후배이자 동료인 가난한 젊은 예술가들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은 것. 마지막으로 나와 같은 토박이들이 아름다운 고향 땅을 떠나지 않고 마음껏 예술을 향유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바랐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품은 이 아름다운 곳이 누구나 살고 싶은 동네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런 마음으로 대안공간 눈을 오픈하면서 가장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윤숙_우선 젊은 작가들이 생기를 얻었다. 마음껏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이 처음으로 생겼으니까. 다들 전시하려면 비싼 대관료를 지불하면서 서울로 가야 했는데, 내가 사는 마을에 생기니 얼마나 좋은가. 그리고 마을이 아름다워지면서 동네 분들도 덩달아 생기를 얻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이곳으로 찾아오기 시작했다. 이제 주말이면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많은 이들이 온다.

 

비 오는 행궁동은 고즈넉하고 운치 있었다.

 

대안공간 눈은 미술 전시 이외에도 다양한 프로젝트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윤숙_매년 말 공모를 통해서 젊고 실험적인 작가들 40팀을 선정하고, 그 밖에도 솜씨 좋은 행궁동 주민들을 발굴해서 작품을 전시할 수 있도록 공간을 지원한다. 골목도서관, 눈카페 등을 만들어서 관람객들이 쉴 수 있는 공간도 만들었다. 2014년에는 여기 뒷집 담장을 털고 집을 이어서 ‘예술공간 봄’도 만들었다. 역시 전시실, 카페, 아트샵 등으로 꾸몄다. 철거 예정이던 건물을 행궁동 레지던시라고 행궁마을 커뮤니티 아트센터로 만들어서 예술가들한테 작업공간으로 주기도 했다.

 

행궁동하면 벽화 마을로도 유명하다.

이윤숙_2010년에 행궁동 레지던시 입주작가들과 국내외 작가들을 초청해 ‘행궁동 사람들’이라는 예술 프로젝트를 추진했는데 그 중 하나가 골목 벽화였다. 단순한 벽화 마을로 그치는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작가와 주민이 소통하면서 골목의 역사가 드러나고, 이웃과 이웃 사이 마음의 담장이 허물어지면서 공동체가 복원됐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이쯤에서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걱정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윤숙_안 그래도 2016년에 3층으로 제한되었던 건축 법규가 완화되면서 이 동네에 5층 건물을 지을 수 있게 되니까 개발업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침 동네 예쁘고 살기 좋다고 소문이 나 사람들이 몰려올 때였다. 이 벽화 골목에도 당장 기와집을 허물어서 5층 빌라 허가를 받으니까 주민들이 동요하더라.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생기니까. 그래서 갈등이 컸다. 장기적으로 예술마을이 손상되고 빌라촌이 되면 그건 암담한 일이다. 다행히 수원시에서 벽화 골목 보존을 위해 단층 기와집 10채를 문화 시설로 지정하고 앞선 집의 신축 허가를 취소하면서 문제는 봉합이 되었지만 이후에도 그 때문에 많은 갈등을 겪었다.

 

행궁동은 젠트리피케이션의 고비를 넘기며 마을 활성화가 지역경제 활성화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미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고 또 이뤄왔다. 앞으로 더 목표하는 것이 있다면?

이윤숙_장기적으로 행궁동이 차 없는 거리가 되면 참 좋을 것 같다. 자전거와 트램만 다니는 낭만적인 동네. 너무 멋지지 않나? 결국 나의 꿈은 하나, ‘행궁동 예술마을 만들기’다. 그래서 이곳에 사는 사람들, 찾아오는 사람들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 벌써부터 젊은이들이 많이 들어왔다. 노인들만 살던 이 동네에 인구가 늘어나고 활기가 생기고 있다. 마을의 활성화를 통해 공동체를 복원하고 관광객 유치를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를 이루고. 내가 살고 있는 곳의 환경을 스스로 바꾸는 것도 예술가의 몫이자 이 모든 것이 나의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뷰_편집팀
사진_김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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