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으로 메주를 쒀도 곧이 듣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다. 거짓말을 잘 하는 사람은 아무리 당연한 사실을 말해도 믿을 수 없다는 뜻이다. 이 속담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콩으로 메주 쑤는 일’은 우리 삶에서 너무나도 ‘당연한 일’로서 ‘친근한 일상’으로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다. 10월 말부터 11월 초는 메주 쑤는 콩, 흔히 흰콩·하얀콩이라고 하는 대두의 수확철이다. 농촌에서는 논두렁에 심어두었던 콩을 갈무리하고 음력 10월부터 11월경에 메주를 쑨다. 메주 쑤는 시기가 되어서일까? 필자의 기억세포에서 메주에 대한 DNA가 깨어나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2전시실 전시장에서 ‘메주틀’을 만났다.
메주틀은 메주 쑬 때 메주 모양을 만드는 틀을 말한다. 마을 어른들이 뒷산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나무로 뚝딱뚝딱 만들었을 지극히 평범한 ‘메주틀’이 눈앞 진열장에 있다. 그동안 메주틀은 흔한 물건이라 이렇게 귀할 것이라는 생각을 미처 해보지 못했다. 국립민속박물관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메주틀은 전시장에 있는 메주틀을 포함해서 총 4점인 것을 보면 확실히 메주틀이 흔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이제는 박물관을 찾아 조우해야 하는 유물이 된 메주틀 앞에서 필자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100년 된 ‘메주틀’ 앞에 서니 돌아가신 할머니 얼굴이 떠오른다. 세월이 느껴지는 울퉁불퉁한 나무결에서 할머니의 주름진 손마디가 생각난다. 이맘때 할머니를 도와 메주 쑤는 일을 도왔던 10살 어린 소녀였던 필자 자신을 만난다. 할머니는 커다란 솥에 콩을 삶았다. 고소한 냄새가 집안에 풍길 정도로 콩을 푹푹 끓였다. 콩 한 알을 꺼내서 엄지와 검지로 눌렀을 때 자연스럽게 껍질이 미끄러지면서 속살이 뭉개질 정도로 무르면 할머니는 커다란 다라이대야에 콩을 쏟아 붓고 절굿공이로 찌었다. 소녀는 할머니 절굿공이를 뺏어들고 콩을 찧어 보았다. 으깨지지 않은 콩 알갱이가 뭉개지는 게 놀이처럼 재미있다. 콩이 잘 찌어지면 모양을 만들었다.
당시 집에는 ‘메주틀’이 없었다. 고골현재 경기도 하남시 하사창동 큰집에는 메주틀이 있었는데, 우리 집에는 메주틀이 왜 없는지 특별히 궁금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다만 당시 큰집은 농사를 크게 짓고 있어서 그럴 것이라는 추측을 했을 뿐이다. 한편으로 할머니께서 메주틀 없이도 메주를 척척 잘 만드셨기 때문에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 같다. 할머니는 찰흙처럼 쫀득한 콩덩이를 양쪽 손으로 잡고 도마 위에서 밑바닥이 평평하도록 쿵쿵 두드렸다. 그렇게 여섯 면을 돌려가면서 직육면체의 메주를 빚었다. 나도 할머니를 따라 콩콩거리며 제법 말쑥한 메주를 만들었다.
할머니는 메주를 며칠 말렸다가 볏짚으로 엮어서 안방 벽에 걸린 옷걸이 못마다 두 덩이씩을 걸어두었다. 또 얼마간 지나서 메주는 안방 아랫목을 차지하고 쿰쿰한 냄새를 풍기며 한참동안 겨울잠을 잤다. 다음해 설날 지나고서 할머니와 엄마는 메주를 씻어 말린 다음 장을 담갔다. 날이 따뜻해질 무렵 할머니는 항아리에 된장을 담고 엄마는 간장을 달였다. 간장 달이는 냄새가 몇날 며칠 집안에 가득해서 공연히 집에 들어가는 일이 창피했던 기억이 난다. 이 기억은 그리 오래된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1980년대 초반에 서울에 살던 필자 가족의 이야기다. 비록 5층이었지만 현대 주거의 상징인 공동주택, 아파트에서 있었던 일이다.
나에게 추억을 소환한 이 메주틀은 2전시실 ‘한국인의 일상’의 ‘메주와 두부’ 코너에 전시중이다. 이 메주틀은 사각형의 나무판을 서로 맛물리게 이어서 나무못으로 고정되어 있다. 크기는 가로 36.3cm, 세로 36cm, 높이 13.2cm이다. 메주는 건조 과정에서 그 부피가 줄어들기 때문에 조금 크게 만드는 것을 감안해도 최근 빚는 메주보다는 다소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재는 메주의 크기가 과거에 비해 많이 줄어들고 있다. 도시화, 핵가족화로 인해 한 가족이 먹는 간장, 된장의 양이 적어지면서 장 담는 규모도 작아지고 그에 따라 항아리의 크기도 작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콩(대두)의 원산지가 한반도와 만주일대라는 자연환경 덕분인지 메주의 역사는 그 연원이 깊다. 메주는 한자로 ‘시豉’로 표기되는데 메주의 의미와 함께 다양한 형태의 장醬을 포함한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장의 원료가 메주인 것을 생각하면 장의 역사와 메주의 역사는 상당 부분 함께 했을 것이다.
『삼국지』 「위지동이전」에는 “고구려 사람들은 장 담그기에 뛰어나다善藏釀”고 하며 우리 장의 냄새를 ‘고려취高麗’라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 신문왕조에는 폐백품목에 ‘장醬’과 ‘시豉’가 포함되어 있다. 『해동역사海東繹史』에는 『신당서新唐書』를 인용하여 발해의 명산물로서 책성柵城의 ‘시豉’를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기록을 통해서 볼 때 메주 혹은 장의 역사는 이천여 년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여겨진다.
메주 쑤기는 간장, 된장, 고추장 같은 장醬을 담그는 기본 재료인 메주를 만드는 일로 일년 중 중요한 세시행사 중 하나이다. 농가월령가 11월령에는 “십일월은 한겨울 되니 대설 동지 절기로다··· 부녀자들아 네 할 일이 메주 쑬 일 남았구나. 익게 삶고 매우 찧어 띄워서 재워 두소.”라는 기록이 있다. 기간의 차이는 있지만 음력 10월에 김장을 마치고 동짓달 11월에는 메주를 쑤는 것이 부녀자들에게 큰 일거리였다. 필자는 2015년 세종시 전동면 미곡리에서 10개월간 현지 조사를 진행한 하며 ‘메주 쑤기’ 등 1년간의 마을 일상을 기록한 바 있다. 미곡리 주민인 임백순의 메주 쑤기 현장 기록을 통해 메주틀에서 만난 기억의 DNA를 확인해 본다.
[2015년 12월 9일 수요일 종일 / 미곡리 제일말 자택 / 임백순여 64세·이훈고남 69세 부부]
- -메주 쑤는 날 : 음력 10월 중 손 없는 날로 정한다. 이날은 음력으로 10월 28일이다.
- -메주콩 준비하기 : 10월 말에 수확한 콩으로 종자는 대원콩이다. 메주를 쑤기 위해 콩 4말, 32kg을 준비했다. 보통 1말에 메주 네 덩어리를 만든다.
- -콩 씻기 : 전날 4시에 물에 콩을 고르고 씻는다. 마른 콩이라서 한참 잠기게 물을 많이 넣어 서너 번 씻는다.
- -콩 삶기 : 전날 5시부터 마당에서 가스불 켜고 가마솥에 삶기 시작해서 최소 8시간 이상 삶는다. 일단 끓기 시작하면 불을 약하게 해서 뜸을 오래 들인다. 하얀콩이 빨갛게 될 때까지 삶는다.
- -콩 찧기 : 절구가 있어도 다라이고무대야에 콩을 찧는다. 콩이 안 튀고 앉아서 할 수 있어서 좋다. 콩 알갱이가 조금만 보일 정도로 찧는다. 콩 찧는 거는 남편 이훈고의 역할이다.
- -메주 빚기 : 주걱으로 찧은 콩을 모아서 두 손으로 한 면씩 사면을 평평하게 해주고 양쪽은 두드려서 직육면체를 만든다. 잘 뭉쳐지라고 손으로 토닥토닥 두드려준다. 간장메주는 네모나게 고추장과 막장 담는 메주는 동그랗게 만든다.
- -메주 겉면 말리기 : 누런 종이 위에 볏단 깔고 네모나게 빚은 메주를 올린다. 볏단 깔면 종이에 메주 붙지 않고, 또 볏단이 발효에 좋다. 또한 짚이 있어야 수분도 조절도 된다. 메주가 굳어지면 옆으로 세우고 돌려가면서 말린다.
- -메주 걸어 말리기 : 메주의 겉면이 다 마르면 헹거옷걸이에다 메달아 말린다. 메주에 탈맹이파란 곰팡이가 안 끼게 하려고 생각해냈다. 메주를 짚으로 감싼 뒤 양파망에다가 넣어서 행거에 메달아 베란다 중앙의 거실에 두고 한 달 넘게 말린다.
- -메주 띠우기재우기 : 음력 동짓달 그믐께 띠운다. 보일러가 있는 따뜻한 다용도실에서 메주를 띠워준다. 한 켜씩 짚을 깔고 메주를 놓고 포대기로 따뜻하게 덮어 놓는다. 보름 뒤에 위·아래 메주의 위치를 바꿔준다.
- -메주 털어 말리기 : 햇볕 좋을 때 곰팡이를 털어 말린다. 장 담그는 날짜 봐서 바람 쐬어준다.
- -장 담그기 : 간장·된장 담글 때는 메주 그대로 쓰고, 고추장을 담으려면 까만 부분이 없는 데만 사용한다. 간장 먼저 담그고 고추장을 담으라고 한다. 간장이 어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