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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 不老口

귀하게 대접하고픈 따뜻한 음식

무얼 대접해야 내 마음이 전해질까.

첫 만남의 자리에 좋은 인연을 만들고 싶은 마음에 차림표를 두고 궁리할 때, 마땅한 음식이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 청년시절 그런 고민에 빠졌을 때, 선택한 음식이 불고기였다. 다른 음식보다 풍미가 깊고, 향이 너무 강하지 않아 역겨움이 없고, 음식 값으로 보나 한옥의 아늑한 품격이 있는 불고기집 실내 분위기로 보나 귀한 인연으로 대접하려는 마음이 전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가열요리의 온기로
마음과 정성을 담다

장인장모를 모시고 상견례를 하던 날, 고민 끝에 당시 서울에서 유명했던 홍릉 근처 불고기집으로 장소를 정했다. 숯불화로 위에 올라가는 둥근 불판은 전체 윤곽은 신선로를 닮았으나 가운데 연통이 없는 황동불판이었다. 연소구가 듬성듬성 뚫린 불판의 중심엔 바둑알만한 구멍이 뚫려 있고, 무덤처럼 봉긋한 곳에 양념한 소고기가 올려졌다. 불판의 고기가 익어갈 때 나는 타지 않도록 가장자리에 있는 육수를 숟가락으로 떠서 고기 위에 끼얹어주어 육즙이 마르지 않게 하였다.

사실 눈길을 어디에 둘지 안절부절 할 수 있는 상견례자리였지만 불고기 위에 육수를 끼얹어가며 고기가 마르지 않도록 이리저리 뒤집느라 어르신 얼굴을 쳐다볼 겨를이 없었다. 분주한 손놀림으로 따뜻한 불고기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가장자리 국물에 잠긴 고기까지 알맞게 익고, 장인장모께 잡수시도록 권했을 때 두 분의 얼굴에서 인자한 미소를 읽을 수 있었다.

가열요리는 식사를 마칠 때까지 적당한 온도를 유지한 상태여야 최상의 맛을 즐길 수 있다. 장인어른께서 평소 불고기를 좋아하신다는 정보를 미리 알고 있었지만 나는 두 분이 식사를 마치실 때까지 따뜻하게 드실 수 있도록 정성스럽게 불고기를 구워 대접하였고, 내 마음이 전달되었던 건지, 그 불고기가 특별히 맛있었던 건지 사위로서 합격점을 받게 되었다. 두 분을 뵐 수 없는 지금도 나는 그날의 추억이 오롯이 떠오르는 불고기를 즐겨 먹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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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불고기,
구이요리의 맛과 향의 정점

우리의 전통 고기구이는 맥적貊炙에서 유래되었다. 맥은 중국의 동북지방이나 고구려를 가리키며 맥적은 고구려의 고기구이를 가리킨다. 《예기禮記》 주에는 적은 고기를 꼬챙이에 꿰어서 직화를 쬐어 구이 하는 것이라 하였고, 이것이 오늘날의 불고기의 조형祖型이지만 석쇠가 나온 후에는 꼬챙이에 꿸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불고기를 왜 설야멱雪夜覓이라 하였을까? 《송남잡지松南雜識》에 의하면, 송나라의 태조가 진을 찾아가니 숯불에다 고기를 굽고 있더라는 것이다. 이때 눈 오는 밤에 찾아갔다는 뜻으로 설야멱이라 하였다는 것이다.

《거가필용居家必用》은 몽고계 요리서이지만 내용에는 전부 몽고계 요리가 아니라 중국의 본래의 것과 회회요리回回料理, 여진요리女眞料理 등도 널리 포함되어 있다. 몽고사람들은 불의 신을 굳게 믿고 있어 고기를 불에 구워 먹으면 불의 신이 화를 낸다고 하여 고기를 직접 굽지 않는다. 불에 굽는 요리는 만주족기원의 요리인데 이것을 일본인들은 북경의 고기구이를 몽고계 요리로 착각하고 ‘징기스칸’이라 하였다.

《음식디미방》의 가지누르미조에 “가지를 설야멱처럼”이란 말이 나오니 1600년대 말엽에도 설야멱은 보편적인 요리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해동죽지海東竹枝》에는 “설야멱은 개성부開城府에 예부터 내려오는 명물로서 쇠갈비나 염통을 기름과 채소로 조미하여 굽다가 반쯤 익으면 냉수에 담갔다가 센 숯불에 다시 구워 익히면 눈 오는 겨울밤의 술안주에 좋고 고기가 몹시 연하여 맛이 좋다.”고 쓰여 있다.

《한국요리문화사韓國料理文化史》 180쪽 기록을 인용하면 “19세기 말엽의 《시의전서是議全書》에는 갈비 염통 등을 양념하여 물에 담그지 않고 그대로 직화에 구워 낸다고 한다. 또 정육을 저며 잘게 칼질하여 양념한 다음 직화에 쬐여 구이 하는 것을 너비아니라 하였는데, 너비아니는 불고기의 궁중용어로서 오늘날의 불고기를 뜻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오늘날의 불고기는 국제화시대의 다양한 외식문화의 도입으로 그 입지가 좁아진 것 같다. 굽는 고기의 재료도 소고기뿐만 아니라 돼지고기나 오리 닭 등 다양해졌으며 생고기상태에서 부위별로 구워 먹을 수 있는 음식점이 등장하여 1인용으로 제공하는 ‘뚝배기불고기’까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가열방식 또한 첨단과학의 발달과 함께 다양한 석쇠가 직화기구로 등장하였다. 사용하는 에너지도 가스식 세라믹기구가 있고 전기식도 인덕션이나 할로겐 등 다양하게 등장하였으나 ‘숯불직화구이’의 맛을 추월하는 맛은 아직까지 없다. 아니,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음식점의 유행이 급변하는 시대에도 우리 전통의 맛을 그대로 보전하고 있는 곳만큼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물론 외국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성업이다. 이는 시대가 변한다 할지라도 우리만의 조리법과 맛과 향, 그리고 함께 나누는 문화까지 우리 음식이 가진 가치가 얼마나 뛰어나고 기품 있는지를 대변한다. 그 선두에 불고기가 있다.

글_ 김필영 | 시인 · 문학평론가
시인이자 평론가이며, <푸드서비스 디자인컨설턴트> 활동하고 있다. 한국음식 64가지를 시로 쓴 《우리음식으로 빚은 시》 음식테마 시집을 발간하였으며 저서 《주부편리 수첩》과 《나를 다리다》 《응》 《詩로 맛보는 한식》 등의 시집을 출간했다. 현재 한국현대시인협회 사무총장과 이어도문학회장, 시산맥시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시와 음식이 어우러진 아름다움을 세상에 전하고 있다.

그림_ 신예희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는다. 여행과 음식에 대한 무한한 사랑으로 〈배고프면 화나는 그녀, 여행을 떠나다〉, 〈여행자의 밥 1, 2〉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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