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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의 추천

김미겸 큐레이터가 추천하는
<호건>

밤에 돌아다니지 말라고 했다. 그러다간 호랑이 밥이 될 거라고 했다. 아이들은 그 무엇보다 호랑이가 제일 무서웠다. 본 적도 없지만 까만 어둠 속에 무언가 움직이기라도 하면 행여 호랑이가 아닐까 겁부터 덜컥 났다. 그런 아이들이 호랑이가 될 때가 있다. 호랑이 같은 눈과 뾰족한 귀가 달린 ‘호건’을 썼을 때다. 김미겸 학예연구사가 ‘호건’을 소개해 주었다.

때론 무섭고 때론 믿음직스러운
우리의 친구 ‘호랑이’

“호건은 조선 시대 남자 아이들이 썼던 쓰개입니다. 그 쓰개에 호랑이가 있어요. 반짝이는 눈과 뾰족한 귀가 있지요. 행여 우리 아이에게 다가올 나쁜 기운을 쫓는 벽사의 의미와 호랑이처럼 씩씩한 기상으로 튼튼하게 자랐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은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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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건虎巾. 돌이나 명절 때 전복에 갖추어 쓰는 남아용 쓰개이다. 머리 윗부분을 둥글게 만들고 뒤로는 드림을 길게 내렸다.
양 옆에는 여밈끈이 달린 귀가리개가 부착되어 있고 귀와 눈, 코, 입 등을 붙여 호랑이 얼굴을 표현했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한 눈에 보아도 손이 많이 갈 유물이다. 호랑이의 눈으로 여겨지는 두 눈에도 한 땀 한 땀 색실이 수 놓였고, 지그재그의 눈썹과 수염에도 어지간히 공이 들었다. 날카로운 호랑이의 이빨도 뾰족하게 세운 두 귀도 어디 하나 허투루 지난 곳이 없다. 어린 아들을 생각하며 한 땀 한 땀 호랑이를 짓는 동안 엄마 마음에 아들은 이미 용맹한 아이로 훌쩍 자랐다.

“호건은 돌 때부터 5~6세까지 썼어요. 쓰인 재료를 보면 알 수 있듯 서민층 보다는 주로 양반가에서 만들어 사용했어요. 화사한 금박만 봐도 알 수 있죠. 하지만 돈이 얼마나 들었고, 품이 얼마나 들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을 거예요. 요즘에도 딸이 아기를 가지면 친정 엄마가 배냇저고리를 직접 지어주잖아요. 그때나 지금이나 다 같은 마음 아닐까요?”

엄마가 지어준 호건을 머리에 쓰면서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평소에 그토록 무서워하던 호랑이를 머리에 얹으면서 마치 자신이 용맹한 호랑이라도 된 것처럼 우쭐해 했을 모습을 떠올리면 절로 웃음이 난다. 게다가 호건의 호랑이는 무섭다기 보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이라 오히려 귀가 두 개 솟은 작은 동물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그러고 보면 우리는 호랑이에게 잡혀갈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 믿고 의지한 동물이기도 하다. 김미겸 학예연구사가 기획한 전시 주제인 어린이박물관의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이야기에도 호랑이는 마냥 두렵고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 어딘가 모자라고 인간미까지 느껴지는 동물로 그려져 있다.

“옛날부터 우리는 호랑이가 무섭다고 피하기만 할 존재가 아니라 수호신으로서 우리를 보호해준다고도 생각했어요. 단군신화에서는 비록 인간이 되지 못했지만, 산신령으로 산을 지키고 생활 속 액을 막으며 우리를 지켜준다고 여겼듯이 말이에요. 우화에서도 많이 등장하죠. 호랑이와 곶감에서는 곶감이 두려워 허둥지둥 대는 모습으로 표현했고 팥죽 할멈과 호랑이에서도 할머니에게 된통 혼나는 허당으로 등장해요. 아마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호랑이를 무서워하지 말아라, 이겨낼 수 있는 거다’라고 긍정적인 가르침을 주려고 했던 게 아닐까 싶어요. 결국 이런 오랜 노력들이 우리에게 가장 친근한 동물로 ‘호랑이’를 갖게 한 힘이 되었을 거고요. 88서울올림픽의 마스코트인 ‘호돌이’가 가장 상징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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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민속박물관에서 어린이들과 함께 진행했던 ‘호건 만들기’ 교육 프로그램

 

직접 만들면서 알아가는
‘호건’의 의미와 쓰임

김미겸 학예연구사도 호건에 대해 처음부터 잘 알고 있던 것은 아니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 프로그램 연구를 위해 유물을 살펴보던 중 눈과 귀가 달린 귀여운 호건이 눈에 들어왔고, 아이들과 어른들이 모두 반겨줄 유물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호건은 아이들의 첫돌과 이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돌과 연계한 교육에서도 활용해보았고, 아이들의 놀이 교육에서도 활용해보았어요. 그리고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에서도 함께 해보았죠. 모든 프로그램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어요. 이야기가 있는 유물은 어디에도 잘 적용할 수 있고, 또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죠.”

호건을 활용한 교육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호건 만들기’ 프로그램이다. 직접 천에 바느질을 하는 방식은 쉽지 않기 때문에 한지를 활용해 재단하고 붙이는 작업으로 이루어진다. 엄마와 아이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궁리를 해가며 눈과 귀를 만들어 붙이는 이 프로그램이 이용자들의 큰 사랑을 받아 한때 호건 만들기 키트를 제작해 제공하기도 했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할 때에는 초등학교 4학년 정도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수준으로 조정해서 진행했어요. 먼저 호건을 직접 써보고, 호건이 무엇인지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우리 민족에게 호랑이가 어떤 의미인지도 함께 전해주었죠. 그런 후에 직접 호건을 만들어보는 거예요. 아무래도 외국인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손 끝이 예민한 분들이 드물어요. 특히 바늘에 실 꿰는 일을 가장 힘들어 해요.웃음 하지만 자신의 손으로 만든 호건이 완성되면 누구보다 뿌듯해 하죠.”

 

‘자연스러움’
아이들의 자아를 형성할 키워드

김미겸 학예연구사는 14년 째, 국립민속박물관에서 교육 프로그램을 연구, 개발하고 있다. 그 중의 대부분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프로그램에 집중했고, 이제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다. 그가 박물관 프로그램 중에 특히 어린이 교육프로그램을 중요하게 여기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어린 시절의 경험은 굉장히 중요해요. 제 경험담이기도 해요. 1972년, 지금의 국립민속박물관 자리에 국립중앙박물관이 개관했어요. 그때 사학을 전공하신 아버지를 따라 우리 가족 모두 이곳을 방문했고, 그때 달항아리를 보고 있는 사진이 신문에 실렸어요. 늘 그 사진을 보면서 자랐죠. 그 후로 딱히 박물관에 각별한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역사 전공을 선택했고, 지금에 이르렀어요. 그런 자연스러움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쌓이는 것들이 ‘나’를 형성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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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박물관에서 달항아리를 보고 있는 김미겸 학예연구사와 가족들
김미겸 학예연구사가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에는 바로 이런 마음가짐이 기반이 된다. 아이들이 자신과 같은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로 기획하고, 운영한다. 아이들과 함께 교육에 참여하는 부모들에게도 늘 그렇게 얘기한다. ‘일부러 외우게 하거나 배우게 하지 말아라. 대신 이전에 박물관에서 본 거 기억나니? 그렇게 스스로 떠올려볼 수 있게 하라.’고. 그렇게 호기심을 자극해주면 아이들을 스스로 실마리를 찾고 관심을 갖게 된다. 결코 부모의 조급함이 아이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아님을 김미겸 학예연구사는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박물관 교육의 핵심은 사람들에게 박물관 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전시를 통해 유물을 보여주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이야기를 통해 알려주고, 직접 체험해 보고, 나아가 문화상품으로 개발할 수 있는 일련의 과정이 잘 구축된 것이 바로 박물관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은 우리가 살아왔던 이야기가 바탕이 되어야겠지요. 그렇게 되면 분명 박물관 교육은 한층 풍성해 질 겁니다.”

김미겸 학예연구사가 추천하는 <호건>은 3전시장 ‘한국인의 일생 – 돌’ 코너와 어린이박물관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다.

 

| 국립민속박물관 어린이박물관 상설전시 <해와 달이 된 오누이> – 바로가기
|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유물 <호건> –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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