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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 不老口

우리 탕이나 한 그릇 할까?

“우리 탕이나 한 그릇 할까?”
끼니를 앞두고 반가운 친구를 만났을 때, 이처럼 편안한 말도 흔치 않다. 계절에 관계없이, 복장에 관계없이, 지갑 두께에 관계없이, 불쑥 내미는 말이 정겹다. 곰탕집이나 설렁탕집 앞에서 이렇게 스스럼없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영구기억장치에 간직된 오래 전 그날의 기억들이 소라껍데기 속 이야기처럼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나
뜨끈한 국물이 떠오를 때면

 

초등학교를 마치고 읍내로 진학했을 때, 장날이면 외삼촌을 찾아 집으로 돌아오는 반대쪽 길인 장터로 가곤 했다. 외삼촌은 하나뿐인 누나의 막내둥이인 나를 무척이나 아껴주셨는데 내가 외삼촌을 찾으러 장터로 갔던 더 큰 이유는, 외삼촌이 나를 만날 때마다 귀여운 조카를 위해 장터의 소문난 맛집에서 ‘곰탕’을 사주셨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곰탕을 먹는 날이면 청소년시절 출출한 하굣길의 곰탕 한 그릇을 마지막 국물까지 들이켜던 까까머리 소년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글로벌 시대를 맞아 한국음식의 고유한 맛을 느껴볼 수 있는 식당이 사라져가고 있는 현실이다. 인터내셔널 푸드International Food가 거리와 상점들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끔 여행하다 보면 지금도 우리음식의 진수를 이어가는 곰탕집이나 설렁탕집을 만나면 어찌나 반가운지 나도 모르게 문을 밀고 들어선다. 그리고 김 모락이는 뽀얀 국물을 들여다보면 돌아가신 외삼촌 모습이 떠오른다.

 

‘곰탕’보다 뼈가 더 많이 들어가
뽀얀 국물을 내는 것이 ‘설렁탕’

 

곰탕과 설렁탕을 화두로 삼을 때 흔히들 ‘곰탕과 설렁탕은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 한다. 손정규孫貞圭의 《조선요리》1940에서는 곰국과 설렁탕을 어렵지 않게 구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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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국은 사태, 쇠꼬리, 허파, 양, 곱창을 덩이째로 삶아 반숙半熟되었을 때
무, 파를 넣고 간장을 조금 넣어 다시 삶는다.
무르익으면 고기나 무를 꺼내어 잘게 썰어 열즙熱汁에 넣고 파를 넣는다.”1)
“설렁탕은 소고기의 잡육, 내장 등 소의 모든 부분의 잔부殘部
뼈가 붙어있는 그대로 하루쯤 곤다.
경성지방의 일품요리로서 값 싸고 자양滋養있는 것이다.”2)

이로써 설렁탕은 곰국에 비하여 뼈가 많이 들어가서 장시간에 걸쳐 골수가 우러나와서 국물이 한결 뽀얗게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요즘의 사전에서는 ‘곰국’을 ‘소의 고기와 뼈를 진하게 푹 고아서 끓인 국’이라 하였고, ‘곰탕’을 ‘①소의 고기와 뼈를 진하게 푹 고아서 끓인 국, ②곰국에 밥을 만 음식’이라고 동의어로 설명하고 있다. 또한 고음膏飮이란 말의 사전적 정의를 보면 “고기나 생선을 푹 삶은 국. ‘곰’을 이두식 한자로 쓴 말”이라고 정의하고 있어 곰탕과 같은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또, 아동문학가 고 조풍연趙豊衍 선생은 곰탕을

“‘곰국’은 반드시 다시마, 무우를 흠씬 고기와 함께 고는 맑은 장국인데,
그 방법은 사라지고 설렁탕처럼 걸쭉하게 끓이고 무우나 다시마는 쓰지 않고
내어 놓는 순전한 고깃국이다. 그 대신 곰국이라 하지 않고
「곰탕」이란 이름으로 해방 후에 태어났다.”3)

고 적었고, 「서울 설렁탕」이란 글에서는

“설렁탕은 서울의 대표적 음식은 아니다.
다만 고유한 음식으로 쇠고기 곰국의 일종이다.
고기를 가려낸 것이 아니라 통째 고아 우려내는 것이니까!
하는 짓이 투박스럽고 거칠지만 ‘소’라는 짐승의 맛을
이보다 더 한꺼번에 느끼는 방법은 달리 없다.”4)

고 술회하고 있다.

 

하늘빛 오롯이 담긴 국물
백성을 소중히 여긴 왕의 한 그릇

설렁탕의 유래는 조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매년 2월이면 왕이 지금의 제기동에 있던 선농단先農壇으로 거동하여 생쌀과 생기장과 소·돼지를 잡아 통째로 놓고 제전을 올렸다. 친히 논밭을 가는 행사를 마친 뒤 미리 준비한 큰 가마솥에 쌀과 기장으로 밥을 짓고, 소는 갈라서 국을 끓여 소를 몰던 농부와 구경꾼 가운데 60세 이상 백성을 불러 먹였다고 한다. 뚝배기에다 밥과 국을 퍼 담고 반찬이 없으니 파를 씻어다 놓았다. 간장도 없으므로 소금으로 간을 맞추게 하였는데, 이것이 선농단에서 끓인 국과 같다 하여 선농탕先農湯이 되었다고 한다. 고 조풍연趙豊衍 선생은 그 선농탕이 자음접변으로 「설롱탕」, 다시 모음조화로 「설렁탕」이 되었다고 한다.5)

영화의 한 장면을 보듯 「설렁탕」의 유래를 다시 사유해 보면 가슴이 먹먹해 온다. 겨우내 가물었던 땅을 쟁기로 일구시며 백성들 앞에서 장딴지를 들어내고 맨발로 흙을 밟는 임금님의 백성을 생각하신 마음이 오롯이 가슴에 전해오기 때문이다. 궁궐의 산해진미를 잠시 뒤로 하고 소 한 마리 잡아 「설렁탕」을 만들게 하여 몸소 백성들과 같은 음식을 먹는 왕의 모습은 얼마나 소박한 사람의 모습인가?

「설렁탕」 앞에서처럼 사람이 먹고 사는 일은 왕의 입과 백성의 입이 평등함을, 그렇기에 백성의 배고픔을 자신의 배고픔으로 여길 줄 아는 왕을 생각게 한다. 반찬도 변변치 않고 오직 가늘게 썬 파를 넣고 소금만으로 간 맞춘 「설렁탕」의 하늘빛 오롯이 담긴 국물 빛깔을 떠올리며, 백성을 곧 하늘로 삼는 왕. 그런 왕이 통치하는 나라의 백성이라면 가난도 서럽지 않을 것 같다.

우리의 얇은 지갑도 부끄럽지 않게 열 수 있게 하는 「곰탕과 설렁탕」이 있어 참 고맙다.

이 글의 필자는 1985년 교문사에서 발행한 《한국요리문화사》를 참고로 하고 있다. 《한국요리문화사》는 우리나라 식품 분야의 저명한 연구가인 故이성우 선생이 집필한 책으로, 농업과 역사를 바탕으로 하여 우리나라 고유의 음식이 어떻게 발전하여 왔는지를 보여준다. 요리와 조리, 가열요리의 기원, 밥의 문화, 국의 문화, 곰탕과 설렁탕의 문화, 국수와 냉면의 문화 등 한식의 전 범위를 담아내고 있다.

《한국요리문화사》, 이성우 지음, 교문사
1) 곰탕과 설렁탕의 문화 중에서 _109쪽
2) 곰탕과 설렁탕의 문화 중에서 _109쪽
3) 곰탕과 설렁탕의 문화 중에서 _110쪽
4) 곰탕과 설렁탕의 문화 중에서 _110쪽
5) 곰탕과 설렁탕의 문화 중에서 _111쪽

글_ 김필영 | 시인 · 문학평론가
시인이자 평론가이며, <푸드서비스 디자인컨설턴트> 활동하고 있다. 한국음식 64가지를 시로 쓴 《우리음식으로 빚은 시》 음식테마 시집을 발간하였으며 저서 《주부편리 수첩》과 《나를 다리다》 《응》 《詩로 맛보는 한식》 등의 시집을 출간했다. 현재 한국현대시인협회 사무총장과 이어도문학회장, 시산맥시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시와 음식이 어우러진 아름다움을 세상에 전하고 있다.

그림_ 신예희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는다. 여행과 음식에 대한 무한한 사랑으로 〈배고프면 화나는 그녀, 여행을 떠나다〉, 〈여행자의 밥 1, 2〉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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