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植物’은 ‘심다, 구축하다’라는 어원처럼 인간이 이용하는 대상과 재료로서의 의미가 강하다. 영어에서 식물을 뜻하는 ‘PLANT’라는 단어 또한 유사한 의미를 지니고 있어서 이러한 인식은 동서를 막론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실제 우리는 일상 속에서 훨씬 복잡하고 다양하게 식물을 인식하고, 식물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관계는 인류 역사의 시작부터 긴 시간 동안 형성되어왔을 것이다. 성서의 창세기에도 나오듯 인류가 출현하기 이전에 이미 식물은 이 땅에 번성하고 있었다. 인류 최초의 의식주 재료가 주변에서 구하기 쉬웠던 식물이라는 가정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이후 식물이 주요 식량 원이 되고, 오랜 시행착오와 지혜가 모여 치료제로 만들어질 수 있었다.
한편, 식물에 또 다른 의미와 역사가 더해져 이제 식물은 무궁화나 벚꽃같이 국가와 시대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식물은 그 자체로서 인간에게 위안과 휴식이 되기도 한다. 도심지 건물 옥상에서 농사짓는 도시농부를 내세운 예능 프로그램은 농사가 도시에서 벌어졌다는 공간적특성에서 신선함을 주었다. 우리는 이제 시골 고향 집 텃밭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가까이에서 이를 보고 느끼고 싶어 한다. 우리나라 인구의 70% 이상이 도시에서 거주한다는 조사결과와 함께, 도시농부나 도시 정원은 지금 우리가 기대하는 식물의 새로운 역할이자 21세기 인류가 식물과 함께 새로이 설정해 나가고 있는 공존의 형태이기도 하다.


기억 한 줌과 경험 한 줌으로
식물은 자란다
필자에게 가장 중요한 ‘식물’을 꼽으라면 시골집 마당 한가운데 오래된 단감나무를 들고 싶다. 내가 아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학사모를 쓴 졸업사진이 유일하다. 그래서 초등학생 시절 할아버지가 심으신 그 나무는 할아버지에 대한 나의 유일한 추억이요, 시골집의 상징과도 같다. 세종시에서 만난 이들에게 자신이 기억하는 식물을 물었다. 그들은 세종시에 거주하게 된 각자의 사연만큼이나 다양한 기억과 시간들을 쏟아냈다. 그 답변들 속에는 필자처럼 삶의 기억과 경험이 녹아있었다.
세종시로 은퇴한 노신사는 고향 땅의 오래된 대추나무를 마당에 옮겨 심고서 세종시를 고향으로 삼았다. 40년 된 아버지의 체육관을 지키고 있는 형제는 천장 틈새를 비집고 들어 온 덩굴줄기와 감나무를 묵묵히 보듬으며 소나무 아래에 묻히신 아버지의 뜻을 잇고 있었다. 행복도시가 건설되면서 땔감이 될 뻔한 둥구나무는 주민들의 관심과 노력으로 되살아나 사라진 마을의 새로운 구심점이 되기도 했다. 이들이 기억하는 식물은 자신의 시대와 지역, 경험이 깊이 연관된 중요한 매개체였다.
식물은 언제나 우리 주변에 자리해 있다. 때문에 이들을 채취하고 이용하는 관점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우리가 이를 인식하고 기억하는 일련의 현상을 기록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식물’을 주제로 지금 현재 우리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또 다른 의미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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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익숙하게 누려왔던 자연인데..이렇게 읽어보니 새롭습니다. 나에게 의미있는 또한 아이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식물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