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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소란하고 다정한 도서관

이상하다. 도서관은 조용히 걸어야 하고, 책을 가지런히 꽂아야 하며, 의자 끄는 소리 없이 공부하는 곳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요즘은 좀 다른 것 같다. 어린이도서관에서 아이들은 끊임없이 이야기하며 책을 읽고, 도서관 곳곳에서는 인문학 강좌가 열린다. 도서관의 변화가 궁금했다. 서울도서관의 이용훈 관장을 찾아가 물었다. 의외로 도서관은 소박하고 다정하게 우리와 걷고 있었다.

 

책가방 매고 찾던 도서관, 의외의 임무

시험이 코앞에 닿은 주말. 새벽 이슬을 맞으며 길을 나선다. 집에서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 가면 나오는 구립도서관에는 이미 또래 아이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 있다. 그 속에는 지긋한 나이의 어르신들도 섞여 있다. 먼저 도착해 줄을 서있던 친구의 곁에서 도서관 문이 열리기를 기다린다. 곧 개인 열람실로 향하는 도서관의 문이 열리고, 칸막이로 이루어진 각자의 자리를 채우면 적막이 내려앉는다. 허기져 우동 먹으러 식당에 가기 전까지는 이렇게 앉아 있기로 마음을 다잡는다. 물론, 친구가 쏟아지는 잠을 못 이겨 자판기 커피 한 잔 마시자고 할 때까지는.

그래서 도서관은 늘 북적였다. 근처 학교의 시험기간일 때 더욱 그랬다. 도서관에 가는 일은 사실 정해져 있었다. 공부를 한다거나 신간을 살피러, 그리고 자료를 찾아보러. 최근에는 도서관에서 다양한 문화 강좌나 프로그램 등을 개발해 지역 주민과 함께 하는 자리도 많이 마련하고 있긴 하지만, 사실 도서관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자료의 수장과 보존’ 역할이다. 다시 말해 국민을 대신해 세간에 발간되는 수많은 자료들을 모으고, 안전하게 보관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국립중앙도서관이나 전국의 거점 도서관에서는 수장고를 따로 설치해 과학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자료를 보존하고 있다. 그러니까 자료를 찾으려면 제일 먼저 도서관으로 향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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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경북대학교중앙도서관 대출증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도서관에 왜 갈까?’라는 질문은 ‘책을 왜 읽을까?’라는 질문과 이어져 있다고 생각해요. 궁금한 것이 있고, 물어볼 것이 있고, 해결할 것이 있으니까. 요즘 도서관과 출판계가 위기라는 말을 자주 듣는데, 그 이유가 디지털 시대와 스마트폰에 있다고 합니다. 뚝딱 검색해서 원하는 답을 찾아낼 수 있는 시대이니 말이죠. 그런데 이것도 마찬가지인 거죠. 궁금한 것이 있으니까.”

 

이용훈 서울도서관장은, 다만 인터넷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들은 지나치게 가볍다고 했다. 오류가 오류를 낳고, 그것이 진실인 것처럼 퍼져나가는, 무턱대고 믿었다가는 큰 코 다칠 수 있는 정보들인 탓이다. 거기에 도서관의 경쟁력이 있다고 했다. 오로지 검증된 사실들로만 만들어진 출판물이 응집되어 있는 곳이 도서관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공들인 정보들이 모두 모여있는 곳이니 어제 답을 찾았다 해도, 오늘 또 다른 답을 찾을 수 있지요. 그래서 도서관을 일상공간이라고도 합니다.”

 

우리 지역만의 이야기를 기록해 갈 유일한 공간

“미국의 한 조사에 의하면 ‘지금의 도서관 모습과 5년 후 도서관 모습’을 묻자 ‘지금은 책과 정보를 위한 곳이지만 5년 후에는 커뮤니티일 것이다’라는 답변이 가장 우세했다고 해요. 시민의식이 변하고 있다는 거지요. 과거 귀족들만 이용하던 도서관을 모든 이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바꾼 것은 시민입니다. 그런 시민들이 지금의 시대에서 원하는 도서관의 모습은 커뮤니티, 공동체 역할입니다. 지역의 이야기를 나누고 담을 수 있는 곳이 바로 도서관이라는 얘기와도 같지요.”

 

지역을 구성하는 공간 중 커뮤니티 영역으로 적합한 곳으로 ‘도서관’을 꼽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만남’의 공간인데 안타깝게도 적절한 공간은 모두 자본에 매여있어요. 공공의 영역을 둘러보았을 때, 답은 바로 광장 혹은 도서관입니다. 그 중에 지역 주민과 가깝고, 다양한 문화 활동까지 누릴 수 있는 곳은 결국 도서관이고요. 지역의 도서관은 그 지역과 함께 맞물려 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동체 공간으로써, 그 지역을 기록하고, 기억을 남기고,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생각해 보면 지역도서관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굉장히 많다. 책을 모으고 제공하는 기본적인 도서관 기능을 수행함과 동시에 지역 주민의 문화 생활과 공동체 활동을 돕고, 더불어 그 지역만의 역사를 축적해 나가는 일 등이다. 이용훈 서울도서관장은 특히 지역의 기록을 남기는 일에 도서관의 가장 큰 역할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동네의 작은 구멍가게에서 내거는 홍보물까지도 모두 다 갖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도서관의 힘은 ‘장서 목록’에 있어요. 장서 목록이란 것은 시간과 범위를 내포하고 있어요. 그것들은 지역마다 다를 수밖에 없고, 오히려 똑같은 것을 가질 필요가 없지요. 우리 지역만의 특색을 가진 장서 목록을 찾아내고, 지금 쌓아가고 있는 것들을 지속해가면서 그 지역 주민에게 꼭 필요한 장서 목록을 갖추어야 합니다.”

 

도서관에서는 오래된 자료를 보존하기 위해 과학적인 방법을 동원한다. 사람들의 손을 타게 되면 훼손의 위험이 있어 일반인에게 쉽게 공개하지 않는 자료도 있다. 하지만 도서관이 장서를 수집보존하는 가장 궁극적인 이유는 사람들에게 그동안의 시간을 알리기 위함인데, 막상 사람에게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은 어폐가 있다. 그래서 반가운 것이 있다. 바로 장서의 디지털화다.

 

공생 이상의 교감, 도서관과 사람

지난 2004년부터 구글이 세계 유명 대학도서관 장서를 디지털화하여 검색 서비스로 제공하는 ‘구글 북스 라이브러리’ 프로젝트를 시행했다. 현재 3천만 권 이상의 장서를 디지털 데이터로 변환하였고, 앞으로도 세계의 도서관 장서들을 대상으로 디지털화 작업을 가속화 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누구나 원하는 자료를 온라인에서 간단히 검색해 구독할 수 있으며 그것이 세계 어느 곳의 장서라 해도 무리 없이 찾아볼 수 있다. 놀라운 기술의 발전이다.

 

“도서관의 미래를 얘기할 때 ‘로봇’이나 ‘디지털’을 함께 얘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또 기계적인 일들이 많기 때문인데요. 반대로 그럴수록 사람의 역할은 뚜렷해집니다. 질문을 정교하게 이해하고, 대화로 풀어가며 정확하게 연결하고 확인하는 일은 ‘사람’만 할 수 있잖아요. 오랜 경험과 지식, 그리고 판단력을 갖추고 숱한 변수에 대응하는 것은 사람의 영역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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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서울도서관장은 ‘노인 한 명이 죽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는 아프리카의 속담을 떠올리며 사람이 갖고 있는 가치와 가능성을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할수록, 사서의 역할은 더욱 빛난다. 도서관을 찾는 수많은 이용자들의 요구사항이나 기록들은 사서들의 개인적인 기억이나 그들이 만든 제도 속에, 그리고 일목요연히 책 속에 담긴다. 

“도서관이나 박물관은, 과거에는 추가, 수정, 배제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고정화 된 느낌이었는데 이제야 비로소 역동성을 갖고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아요. 사실 도서관과 박물관, 기록관은 유물의 종류와 방식이 다를 뿐이지 같은 목표를 가지고 같은 영역에 속해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 기관이 하나로 묶인 ‘라키비움’이 등장하기도 한 것처럼, 과거의 것들에 앞으로의 것들을 계속 더해 콜렉션을 구축해 나가야 해요. 물론 그 일은 ‘사람’이 할 것이고, 반드시 ‘사람’이 해야 할 일이지요.”

아주 작은 몸집의 ‘작은 도서관’이 동네마다 들어서고 있는 요즘이다. 버스 정류장이나 지하철역의 작고 사소한 도서관도 어렵지 않게 만난다. 또 음악이나 여행, 문학, 만화 등의 특정 분야 도서관도 점차 늘고 있다. 마을 공원에 가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찾을 수 있는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이렇게나 가까워진 도서관은 우리의 삶을 차곡차곡 기록해 갈 것이고, 우리의 일상은 한 시대를 이루는 기록이 되어 있을 것이다. 낭만적이다. 책과 인문학으로 만나는 민속이라니.

이용훈 | 서울도서관장

 

글·사진_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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