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승유(전시운영과 학예연구사)
국립민속박물관은 2025년 5월 27일(화)부터 9월 14일(일)까지 특별전 《오늘도, 기념: 우리가 기념품을 간직하는 이유》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기념이 넘쳐나는 시대, 기념품을 중심으로 기억의 가치를 탐구하고 진정한 기념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야기한다.
기념일이 이렇게나 많다고요?
오늘날 우리는 수많은 기념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현재 법률로 제정된 공식 기념일만 150개가 넘고, 가족과 친구, 동료 등과 나누는 일상 속 사적인 기념일까지 더하면 우리의 달력은 기념일로 가득하다. 그런데 그 많은 기념 속에서 우리는 정작 무엇을, 왜 기억하려 하는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있었을까? 이번 전시는 일상 속 익숙한 기념품을 낯설게 들여다봄으로써 기념의 본질과 우리 삶 속에서 어떤 가치를 물건으로 남기고자 하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전시의 시작인 <1부 기념의 일상>은 현대 사회 속 기념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우리의 일상에 녹아 있는지를 시각적으로 풀어낸다. 반원형 구조물에는 에펠탑 모형, K팝 응원봉, 기념 접시, 관광 마그넷, 키링 등 우리 집 한쪽 어딘가에 있을 만한 기념품들이 빼곡히 채워져 있다. 자료 사이 사이에는 기념품에 대한 현대인의 인식이 담긴 인터뷰를 볼 수 있다.
관람객들은 이 자료들을 보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얼마나 많은 기념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전시의 시작부터 기념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환기하고 체감할 수 있도록 구성한 공간이다.
왜 우리는 기념품을 간직할까
기념은 기억의 가치를 공유하는 사회적 실천이며, 기념품은 그 기억을 구체화하고 삶의 이야기를 이어가는 물리적 증거다. 2부는 이러한 관점에서 본격적으로 기념의 목적과 의미를 세 가지 측면에서 조명한다. 기념품 상자를 형상화한 세 개의 공간은 개인에서 공동체로, 전근대에서 근현대로 진행되는 흐름 속에서 특별했던 기념품이 우리 일상 속으로 어떻게 스며들었는지 보여준다.
먼저 <2-1부 특별한 순간, 빛나는 기념품>에서는 개인의 생애주기를 따라 출산부터 경로까지 이어지는 삶의 이정표들을 기념한 물건들을 소개한다. 전시 입구의 평생도 8폭 병풍을 따라 이어지는 구성은 출산, 성장, 군 복무, 혼례, 경로 등 한국인의 생애주기 각 단계에서 기념의 방식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보여준다.
주목할 만한 자료로는 환갑 다음 해, 장수를 축하하고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특별한 생일인 진갑을 기념하며 만든 수건과 1720년 숙종이 주관한 경로잔치를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 기해기사계첩己亥耆社契帖이 있다. 그 밖에 관리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만든 기념품인 만인산, 탈춤반 학우들이 졸업을 앞둔 친구에게 ‘취발이탈’ 뒷면에 작별의 말을 적어 건넨 기념품 등도 주목할 만한 자료이다. 이를 통해 개인의 특별한 순간이 어떻게 시대의 가치와 맞닿아 있었는지, 그리고 본래 기념이 지닌 소중함과 의미를 되짚어볼 수 있을 것이다.

2-1부 특별한 순간, 빛나는 기념품

환갑 맞은 진갑 기념 수건

기해기사계첩(국립중앙박물관)

대학교 졸업 기념 선물
<2-2부 오늘이 되는 기억>에서는 공동체 차원의 기념품을 중심으로 함께 나누고자 했던 우리의 시간과 기억을 조명한다. ‘우리의 기억을 세우다’, ‘펼치다’, ‘만들어가다’ 등 세 부분으로 구분하여 국가와 공동체 차원의 기념이 어떻게 기억과 정체성을 형성했는지를 살펴본다. 이를 통해, 기념은 멈춰 있는 과거가 아니라, ‘우리’라는 이름으로 함께 세운 기억이 오늘을 살아가는 힘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2-2부 오늘이 되는 기억
여기서 가장 주목해야 하는 자료는 도입부에서 볼 수 있는 5년 사이에 제작된 세 장의 달력(1945, 1946, 1949년 달력)이다. 이 자료는 기념일이 단순한 날짜를 넘어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에 의미를 부여했는지를 극명하게 비교해 준다. 기념하고 싶지 않은 날들이 가득하던 시대, 무엇을 기념해야 할지 몰랐던 과도기를 지나 비로소 ‘우리’라는 정체성을 찾은 뒤에야 기념할 날들을 스스로 정할 수 있게 되는 과정이 세 장의 달력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1945년 달력

1946년 달력

1949년 달력
또한, 같은 기억과 감정을 나누며 기억을 쌓아가는 기억 공동체인 팬덤의 기념품도 만날 수 있다. 앨범, 응원봉, 슬로건 등 개인의 감정이 집단의 기억으로 확장된 팬덤의 기념품은 기념의 새로운 형태이자 오늘날 기억의 문화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BTS 응원봉
마지막으로 <2-3부 손끝에 머문 여행>에서는 관광 기념품이 일상 속 기념 문화를 어떻게 형성해 왔는지에 대한 사회문화적 해석을 시도한다. 관광 기념품의 변화는 기념이 어떻게 대중화되고 일상 속 소비로 스며들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광화문·남대문(현 숭례문)이 그려진 신선로나 조선풍속 인형 세트 등 일제강점기 공예품의 관광 기념품화 과정과 타자의 시선이 담긴 다양한 자료도 함께 소개된다.
한때 특별했던 기념품들이 실용성과 유사성, 대량 생산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소비재로 변화해 왔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2-3부 손끝에 머문 여행
마라톤 메달, 트럼프 카드 …
나의 기념, 우리의 이야기
전시 마지막 <3부 내 인생의 기념품>은 관람객 각자의 삶 속에서 기념이 어떻게 실천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42.195km를 완주하고 받은 첫 마라톤 메달, 어린 시절 작은 호기심에서 시작된 트럼프 카드 수집 등 공모를 통해 수집한 서로 다른 여섯 개의 이야기와 그 속에 깃든 기념의 조각을 소개한다. 이 기념품들은 기념이 거창하거나 공적인 것만이 아니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일상 속의 기억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기념품이 삶에 스며들어 우리가 살아온 시간을 증명하고 서로의 마음을 이어주는 의미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3부 내 인생의 기념품
기념, 오늘을 살아가는 힘
기념(품)은 단지 과거와 기억을 보관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의 우리를 형성하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주는 오늘의 실천이다. 전시의 구성처럼 기념은 개인의 기억이 모여 공동체의 기념이 되고, 그 기념은 다시 개인에게 되돌아와 의미 있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전시는 바로 그 순환의 구조 안에서, 통시적인 시간의 흐름과 공시적인 동시대의 다양한 가치를 교차시켜 기념의 다층적인 의미를 조명하고자 했다.이 전시가 관람객 각자의 기억을 다시 꺼내 보고, 삶의 어딘가에 머물러 있던 기념의 조각들을 새롭게 바라보고 아울러, 함께하는 우리를 기념하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한다.

마라톤 대회 메달

트럼프 카드
전시 감상 포인트 3가지
1. 뭘 좋아할지 몰라 다 준비했어요!
이번 전시는 말 그대로 ‘볼거리가 많은 전시’입니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품 중 좋은 ‘기념품’이 너무 많아 어떤 자료를 선보일지 결정하는 것 자체가 큰 고민이었습니다. 시대, 주제, 매체를 아우르는 전시로 구성된 만큼, 적어도 한두 점은 관람객의 추억을 소환할 수 있을 거예요.
2. 처음 공개되는 ‘기념의 순간’들
1765년 열린 기로연耆老宴과 수작례受爵禮를 하나의 병풍에 담은 ‘영조을유기로연英祖乙酉耆老宴 ·경현당수작연도受爵宴圖 屛風 병풍’, 제헌절의 시작을 알리는 역사적 장면을 담은 ‘헌법 공포 기념사진’ 등 사료적·상징적 가치가 높은 유물이 이번 전시를 통해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처음 공개됩니다.
3.‘나’와 ‘우리’를 돌아보는 시간
마라톤 메달, 트럼프 카드처럼 평범한 기념품 속 감정의 결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나의 기억이 공동체의 이야기와 어떻게 이어지는지, 전시를 통해 느껴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