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민속문화

솟대가 남긴 흔적, 현대 도시를 수놓다

우리는 여행지에 가면 명소를 중심으로 돌아다니곤 합니다. 서울의 남산타워, 파리의 에펠탑,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 등. 왜 우리는 유독 랜드마크에 집중하게 되는 것일까요? 과거로 돌아가 이유를 찾아보면, 우리는 사람을 모으고 상징적으로 여겼던 솟대의 존재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과거의 솟대부터 현대의 랜드마크까지 이어져 온 의미 있는 공간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 솟대

솟대는 ‘솟아 있는 장대’라는 뜻으로, 장대 위에 오리 모양의 상징물을 올려두는 것이 특징이다. 솟대에서 오리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데, 경남 지역의 마을 어르신들은 솟대를 ‘오리’라고 칭하기도 한다. 오리는 천둥새라고도 불리며, ‘오리가 기침하면 비를 내려준다’라고 생각했다. 오로지 비에 의존해 농사를 짓던 시절, 비는 풍년을 의미했기에 솟대에 오리를 올린 것이다.

오리는 철새이기에 우리 선조들은 ‘오리가 다시 돌아오면 무엇인가를 알려 줄 것 같다’라고 생각했다. 또한, 오리는 ‘물새’로서 상·중·하계를 연결해주는 메신저로 여겨졌다. 시베리아 샤먼들이 오리를 숭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처럼 오리가 가지는 다양한 상징성으로 인해 솟대는 풍요와 다산 등 마을 사람들의 다양한 욕구에 부응하는 존재로 거듭났다. 솟대는 마을 입구에 벽사의 의미로 세워두고 마을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행주형 마을에서는 돌대 기능을 하기 위해 마을 중심에, 장원급제 솟대는 장원급제자의 집 앞에 세웠다.

마을의 상징에서 국가의 상징으로, 탑과 기념비

솟대가 마을의 중심적인 상징물이었다면 국가 중심적인 상징물로 변화한 것으로 탑을 꼽을 수 있다. 마을 단위에서 상징성을 지니던 구조물이 시간이 지나면서 권력과 불교나 기독교 등의 종교가 결합하여 더 거대한 탑의 형태로 변화한 것인데, 신라의 첨성대나 조선의 종루, 서양의 교회 첨탑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솟대에서 변화된 또 다른 상징물은 기념비이다. 솟대는 마을 사람들이 신에게 기원하기 위해 세웠지만, 국가적으로 역사를 기념하는 구조물이 필요해지면서 기념비가 등장한 것이다. 초기의 기념비들은 종교적인 의미로 시작했지만, 점차 국가와 영웅을 기리는 상징물로 변화하였다. 현대로 넘어와서는 국가의 정체성과 공동체의 기억을 유지하는 역할까지도 하게 되어 전쟁 기념비나 광화문의 세종대왕상처럼 동상으로 세워 문화적 정체성을 드러나도록 했다.

경기지방 장승·솟대

강원지방 철제솟대

시대를 넘어 이어지는 상징성, 랜드마크

랜드마크는 ‘Land’와 ‘Mark’의 합성어로 먼 곳에서도 잘 보이도록 땅에 세워진 물체를 의미한다. 하지만 지금의 랜드마크는 단순한 상징을 넘어 문화·경제적 중심지, 문화적 허브의 역할까지 수행하는 복합적인 공간이 됐다. 흥미로운 점은 이처럼 상징성이나 경제적 성향이 강한 공간이지만 과거 솟대에서 소원을 빌었던 공간의 역할도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남산타워의 자물쇠는 과거 솟대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던 것처럼 연인들의 영원한 사랑과 인연을 기원하는 장소가 됐다.

또,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기도 촛불은 과거 솟대가 신과 연결되는 매개체로 인식하고 마을 사람들의 기원을 담았던 것처럼 촛불을 통해 신과의 소통을 상징하고 개인과 공동체의 염원을 담는다. 이처럼 시대는 다르지만, 솟대와 랜드마크는 본질적으로는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 높은 곳에 자리하여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공동체가 장소에 의미를 부여하고, 소원을 비는 장소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탑의 형태로 변화한 신라의 첨성대

광화문의 랜드마크로 자리잡은 세종대왕 동상

높이 솟은 구조물이 주는 특별한 의미

오늘날 솟대는 점차 사라져 가고 있지만, 본질적인 의미와 상징은 사라지지 않고 기념비, 탑, 랜드마크 등의 형태로 남아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사람들은 의미를 담은 ‘상징적인 공간’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단순한 미신이 아닌, 사람들이 자신들의 신념과 감정을 공간에 투영하고 싶어 하는 본능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둘째, 솟대가 마을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했듯, 사람들은 모이고 소통할 수 있는 만남의 장소이자 공동의 기억을 쌓는 곳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셋째, 높이 솟은 구조물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꿈, 이상, 권력 등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 현대 사회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소원을 빌고, 기념하고, 의미를 남기려고 행동한다. 이 때문에 미래에 대한 희망을 공간에 담고 싶어 하는 마음이 랜드마크에 투영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솟대는 형태만 변했을 뿐, 현대적인 방식으로 변형되어 여전히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다.

더 알아보기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 등록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