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 아프리카계 미국인 역사 및 문화 박물관National Museum of African American History and Culture, NMAAHC은 현대 사회에서 박물관이 어떻게 과거의 기록을 바탕으로 현재와 소통하고 미래를 연결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사람들이 우리가 서로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차이가 우리가 성장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인식하도록 도울 것입니다”
-로니 번치Lonnie G. Bunch (박물관 창립이사)
국립 아프리카계 미국인 역사 및 문화 박물관NMAAHC은 수십 년의 정치적, 사회적 논의 끝에 2003년 미국 의회에서 박물관 설립 법안이 통과되면서 스미소니언Smithsonian의 19번째 박물관으로 설립 작업을 시작했다. 2009년, 오바마 대통령이 기공식을 통해 상징적인 첫 삽을 뜬 후, 2016년 9월에 드디어 문을 열었다. NMAAHC의 설립 배경은 단순히 역사적 유물과 자료를 보관하는 것을 넘어,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역사와 문화를 미국의 중요한 부분으로 재조명하고 이를 전 세계에 알리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는 미국 사회의 인종적,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논의를 활성화할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인권과 평등에 대한 메시지를 널리 퍼뜨리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 건물은 우리 모두를 위해 노래할 것입니다.”
-로니 번치Lonnie G. Bunch
워싱턴 D.C. 내셔널 몰National Mall에 위치한 NMAAHC은 건물의 외관부터 인상적이다. 돌과 대리석으로 지어진 주변의 건물들과 뚜렷한 대조를 이루며,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지 호기심을 자아낸다. 프리론 아자예 본드/스미스그룹Freelon Adjaye Bond/SmithGroup은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의 다양한 독특한 요소를 건물의 구조와 디자인에 통합했다. 서아프리카의 요루반Yoruban 예술에 사용된 3단 왕관의 코로나corona 구조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공예품에서 영감을 받은 청동색 금속 격자이다. 이 외벽의 빛에 대한 개방성은 인종에 대한 열린 대화를 촉진하고 화해와 치유를 도모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하는 박물관을 상징한다. 또한 건축학적으로도 실용적이고 지속 가능한 표준에 따라 설계된 내셔널 몰의 첫 번째 박물관으로 2018년에 친환경 건축 골드 인증LEED Gold Certification을 획득했다.
박물관 직원은 “박물관을 경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사 전시관을 시작으로 연대순으로 전시물을 살펴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NMAAHC의 역사 전시관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유리로 된 엘리베이터는 타임머신의 역할을 하며 1968, 1954, 1948, …… 1400년에 멈춘다. 관람객은 포르투갈 탐험가들이 아프리카에 도착하고 식민주의가 시작되기 전날에 도착한다. C3 역사 전시관은 천장이 무척이나 낮아서 답답하고 조명까지 어두운 폐쇄적인 공간이다. ‘노예무역과 노예제도’에 대한 전시를 경험하는 관람객을 마치 그 시대에 사는 사람들처럼 우울함과 암담함으로 이끄는 것 같다. 경사로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가 들어서게 되는 C2 역사 전시관은 ‘재건과 인종 분리 시대’를 보여준다. 당시 미국은 노예에서 해방된 사람들에게 어떤 권리가 주어져야 하는지 고민했다.
전시관은 짐 크로우 시대부터 현대 시민권 운동의 시작까지 각기 다른 시대로 이동한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 C1 역사 전시관에 도착하면 ‘1968년 이후의 상황’으로 현대 흑인의 삶을 탐구하고 흑인 권력 운동을 활성화한 사건들을 볼 수 있다.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목사의 죽음부터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대통령 당선까지 변화하는 미국으로 관람객을 이끈다.
최근 등장한 새로운 유형의 박물관들은 단순한 유물 전시를 넘어 특정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NMAAHC를 비롯한 뉴욕의 911기념관9/11Memorial & Museum이나 벨파스트의 타이타닉 박물관Titanic Belfast은 역사적 사건을 영화, 사진, 사운드 등과 결합해 서사적 장치로 활용한다. 이 과정에서 유물은 영화의 배경 속에서 중요한 서사를 전달하는 요소로 작동하며, 포스터와 영화 같은 시각적 도구들은 복잡한 역사적 현실을 생생하게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이들 박물관에서의 경험은 유물과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동시에 체험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포스트 메모리 세대1)에게 초월적 기억과 유산을 전승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유물과 서사를 결합한 방식은 단순한 정보를 넘어 감정적이고 몰입감 있는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사건의 참상과 역사적 의미의 이해와 공감을 이끌 수 있다.
“이 장소는 우리가 사람들을 매우 중요한 여정으로 인도한다는 것을 이해한 후 특별히 설계했다.”
-에스더 워싱턴Esther Washington (박물관 교육 책임자)
박물관의 역사적인 부분을 통한 감동적인 여정이 끝나면 박물관 내에서 상징적인 공간인 명상의 정원Contemplative Court에서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고난과 성취를 성찰하고 명상할 수 있는 장소이다. 이곳 중심의 물이 흐르는 대형 반사풀은 평온과 성찰을 상징하고, 벽을 타고 흐르는 물은 지속적인 회복과 치유를 나타낸다. 이 공간은 박물관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역할을 한다. 관람객들이 전시를 통해 느낀 감정들을 정리하고, 서로의 경험을 나누며 공동체로서의 연결을 느끼게 한다.
NMAAHC의 지상 3층과 4층의 전시관은 음악, 스포츠, 예술 등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문화적 기여를 조명한다. 4층은 영화, 연극, 문학, 음악, 예술, 댄스, 패션, 음식 등의 문화를 소개한다. ‘뮤지컬 크로스로드Musical Crossroads’는 특히 인기가 많은데,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다양한 음악 장르의 발전에 기여한 역사를 조명한다. 음악을 통해 그들의 정체성과 문화적 영향력이 어떻게 형성되고 전 세계로 퍼져나갔는지를 보여주며 관람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3층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과학, 군사, 교육,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룬 업적에 초점을 맞춘다. 이곳에서는 스포츠 영웅들이 이룩한 성과가 단순한 기록 이상의 상징성을 지니며, 현대 사회에 미친 영향을 강조한다.
박물관의 2층에 위치한 ‘더 탐험해 보세요Explore More’는 역사, 커뮤니티, 문화에 관한 상설 전시의 주제를 보완하고 확장하도록 설계된 교육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는 멀티미디어 기술, 전시 및 수집 유물, 라이브 공연, 핸즈온hands-on 활동을 결합해 모든 연령대의 관람객에게 역동적이고 개인화된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직접 참여를 통한 상호작용은 관람객들이 역사적 관점을 넓히고, 호기심과 창의성을 자극하며 지식을 더욱 확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춘, 유물을 검색할 수 있는 미디어월Midea Wall은 관람객이 검색한 유물과 관련된 유물을 함께 제시한다. 파주관 민속아카이브 정보센터에서도 참여자가 등록한 사진과 유사한 아카이브의 정보를 검색해서 보여준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검색 결과를 다른 관람객과 공유하고 협업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는 국립중앙도서관의 실감서재는 이를 차세대 검색으로 제안하고 있다.
국립 아프리카계 미국인 역사 및 문화 박물관NMAAHC은 다양한 전시물을 통해 관람객이 단순한 관람 이상의 깊은 참여와 성찰을 경험하도록 설계되었다. 박물관의 전시물들은 유물 자체를 넘어서 개인적 서사, 디지털 기술, 멀티미디어와 결합해 관람객이 역사적 맥락 안에서 자신의 경험을 반추하도록 돕는다. 특히 명상의 정원Contemplative Court과 개인이나 가족의 경험을 녹음하고 보존할 수 있는 ‘가족의 구술 역사 포착Capturing Your Family’s Oral History’은 정서적 성찰과 개인적 기억의 공유를 강조하며, 관람객들이 역사와 문화를 보다 깊이 내면화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한다. 박물관의 건축과 전시 공간 역시 중요한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의 특징을 통합해 고난과 성취의 서사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며, 전시와 물리적 공간의 조화를 통해 깊은 의미를 전달한다. 이처럼 NMAAHC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삶과 문화를 기록하고 교육하는 동시에, 인종적 다양성과 평등을 위한 대화를 촉진하는 포괄적 역사 문화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내가 만난 국립 아프리카계 미국인 역사 및 문화 박물관NMAAHC은 국립민속박물관과 여러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두 박물관 모두 사람들의 이야기와 삶을 다루며, 단순한 유물 전시를 넘어 역사적 서사와 현대적 상호작용을 결합한 모델을 제시한다. 특히 일반 사람들의 이야기를 아카이브로 기록하고, 다양한 자료를 통해 심층적인 학습 기회를 제공하며 커뮤니티와의 소통과 대화의 장을 마련한다. NMAAHC의 사례는 국립민속박물관이 이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향후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데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1) 전쟁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전후 세대
글 | 구민경_섭외교육과 학예연구사
『민속소식』 2024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