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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전시

씨앗을 심고, 정원과 숲을 가꾸는 곳
상상이 현실이 되는 공간,
프리다 & 프레드 그라츠어린이박물관

지구 반대편 유럽에는 상상의 씨앗을 심고, 그 정원과 숲을 가꾸는 곳이 있다. 이곳을 찾는 모든 어린이들이 집 밖에서 또 하나의 집을 느끼며, 상상을 현실로 펼치는 공간. 오스트리아 프리다 & 프레드 그라츠어린이박물관(FRida & freD – The Graz Children’s Museum)으로 떠나보자.

문화와 교육의 도시, 그라츠
오스트리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그라츠는 수도인 빈에서 남서쪽으로, 기차로 약 2시간 반 정도 떨어져 있다. 인구 약 30만 명의 이 도시는 중부 유럽에서 중세의 문화를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곳 중 하나로 손꼽히며, 중세와 현대가 공존하는 오랜 전통과 교육의 도시로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그라츠시는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고, 2001년 유네스코 디자인 도시(Design of City) 및 2003년 유럽문화수도(European Capital of Culture)에 선정되었다.

프리다 & 프레드 그라츠어린이박물관 라운지 슬로프 (ⓒ FRida & freD)

모두를 위한 또 하나의 집, 그라츠어린이박물관
그라츠어린이박물관은 21년 전, 그라츠시가 유럽문화수도로 지정되며 진행된 여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설립되었다. 박물관은 도시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무어(Mur) 강 동편의 아우가르텐(Augarten) 공원 북쪽 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이는 도시 전체로 보았을 때 배꼽 위치에 해당하며 매우 높은 접근성을 가짐과 동시에, 도심 공원 속 박물관으로서 일상에서 벗어난 휴식처이자 다양한 야외활동이 가능한 장소로써 큰 이점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최적의 입지에서 ‘모든 어린이를 위한 공간’이 되기 위한 박물관의 노력은 그 특별한 이름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프리다와 프레드는 무슨 뜻이고, 또 어떻게 이름 지어졌을까? 개관 전 동화 작가 및 시의원 등과 함께한 워크숍에서 선정된 이 이름은 박물관이 위치한 도로명 프리드리히가세(Friedrichgasse)의 알파벳 ‘에프(F)’와 고전적인 여아 이름인 ‘프리다(FRida)’, 남아 이름인 ‘프레드(freD)’가 합쳐져 만들어진 이름이다. 이때 박물관은 앞으로 어린이들이 자라날 세상이 차별 없이 남녀가 평등한 사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통상적으로 남자 이름을 앞에 붙이는 것과는 달리 여자 이름을 앞에 붙였다고 한다. 이처럼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모든 어린이를 포함하며, 모든 어린이를 위한 집. 그렇게 탄생한 공간이 바로 오늘날의 프리다 & 프레드 그라츠어린이박물관이다.

공원과 어우러진 짙은 색의 박물관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훨씬 다채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안내데스크에서 티켓 발권을 마치고 신발을 벗어 보관함에 맡기면 본격적인 모험이 시작된다. 박물관은 크게 지상층과 지하층으로 나뉘며, 1년을 주기로 동시 개편하는 상설전시실 두 곳과 극장, 실험실, 정원 등으로 구성된다. 여기서 아이들의 눈을 가장 먼저 사로잡는 것은 박물관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공간 중 하나인 길이 약 6m, 높이 약 3m의 슬로프이다. 박물관 지상층과 지하층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라운지에 자리 잡은 이 공간은 휴관일인 화요일을 제외하고 항상 뛰고, 구르고, 달리고, 오르고, 미끄럼틀을 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차 있다. 때에 따라 이곳은 어린이들의 실내 놀이터이자 보호자의 휴식처로, 공연장으로, 교육 공간 등으로 다양하게 변신하며 모두를 위한 집의 거실이자 심장 역할을 하고 있다.

펼쳐진 동화책 모습의 《리치 라치 RITSCH RATSCH》 전시실 입구. 책 속에서 나온 돼지들이 페이지를 잡아당기고 있다. (ⓒ FRida & freD)
종이 옷을 직접 디자인하고 입어 보며 다양한 역할을 체험하는 변신 코너. 동화책과 자연스레 연결된 공간 구성이 돋보인다. (ⓒ FRida & freD)

볼이 빨간 돼지와 함께 떠나는 신나는 종이 모험, 《리치 라치 RITSCH RATSCH1)
슬로프를 따라 내려간 전시실 입구에는 커다란 동화책이 펼쳐져 있고, 그 속에는 볼이 빨간 돼지들이 수줍게 나와 어린이들을 반긴다. 만 3세부터 7세를 대상으로 하는 이 전시는 종이라는 재료의 예술적 측면을 강조하며, 종이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실현할 수 있게 한다. 돼지와 함께 떠난 여정에서 아이들은 따로 또 같이 종이를 직접 자르고, 접고, 엮고, 뭉치고, 붙이고, 조립하고, 띄우고, 날리고, 던지고, 미끄러뜨리고, 종이로 옷을 만들어 입고, 건물을 짓고, 역할 놀이를 하는 등 저마다의 모험을 떠난다.

온통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득 찬 이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는데, 동화 일러스트레이터와의 협업으로 이루어진 이 전시에는 텍스트가 없다. 텍스트 없이 그림책 형식으로 구성된 전시에서는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인 이미지로 소통한다. 다양한 돼지 캐릭터들은 전시에 생동감을 불어넣고 유머와 매력을 겸비하고서 어린이들의 몰입을 돕는다. 이야기는 모험의 바탕이 되고, 일러스트는 전시를 구성함과 동시에 어린이가 상호작용하는 배경이 된다. 어린이들이 만든 종이 작품은 전시 디자인의 일부가 되며, 이러한 상호작용은 전시 내용을 확장시키고, 전시를 살아있게 하며 매 순간 탈바꿈시킨다.

상자로 만든 도시와 정원 코너. 열심히 정원을 가꾸는 돼지와 함께 상상의 식물을 만들 수 있다. (ⓒ FRida & freD)
다양한 놀이 체험을 할 수 있는 공원 코너. 두 마리의 돼지와 함께 파쇄 종이 풀장에서 신나게 뒹굴 수 있다. (ⓒ FRida & freD)

무궁한 상상력을 가진 아이들은 책 속으로 들어가 자신이 꿈꾸던 세상을 만들고, 동시에 이야기는 책 밖의 세상으로 나온다. 전시실 곳곳에 놓인 빨간 상자에는 해당 코너의 일러스트와 이야기가 오디오 해설로 제공되어 시각 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관람객의 전시 경험을 더 풍부하게 만든다. 정해진 시간과 동선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모험의 끝에는 전시연계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아늑한 교육 공간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지금까지 함께한 종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종이의 한살이에 대해 이해하고, 직접 종이를 만들어 가며 오늘의 모험을 기념한다.

전시실 내 교육 공간. 요일별로 전시연계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 FRida & freD)
《리치 라치 RITSCH RATSCH》 전시연계 프로그램: 종이 만들기 (ⓒ FRida & freD / Hannes Loske)

보다 많은 씨앗을 위한 노력
지난 20여 년간 그라츠어린이박물관은 핸즈 온-마인즈 온(Hands on-Minds on)을 모토로 박물관의 전시와 프로그램을 통해 오늘의 씨앗인 어린이들이 세계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이해하고, 자신감과 책임감 있는 시민으로 성장하여 숲을 이룰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때로 순회 전시 등의 형태로 그라츠시를 넘어 유럽과 아프리카를 포함한 전 세계로 뻗어간다. 또한 핸즈온(Hands On! International Association of Children in Museums, 유럽 국제어린이박물관협회) 회원관으로 활동하며, 협회 산하의 21세기 교육 커뮤니티(Home of 21st Century Education)에 참여해 변화와 기회의 환경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처럼 특별한 집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친 어린이는 어떤 눈으로 세상을 마주하게 될까? 지금까지 그라츠어린이박물관에서 자라난 모든 씨앗과 그것이 이룬 숲이 미래에 어떤 모습으로 꽃피워 갈지 기대된다.

1) 종이를 찢거나(쭉, 찍), 긁는(벅벅, 박박) 소리를 나타내는 독일어 표현.


글 | 조은지_어린이박물관과 학예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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