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 전형필이 세운 대한민국 최초의 사립미술관, 간송미술관은 일제강점기에 지켜낸 소중한 보물을 상설 전시로 더 많은 사람과 만나기 위해 지난 9월 3일 대구에 분관을 개관했다. 자연 친화적인 미술관, 대구간송미술관의 첫 전시 《여세동보與世同寶-세상 함께 보배 삼아》 속 우리 문화유산을 만나러 가자.
간송미술관과 나의 추억
서울 성북구의 간송미술관을 처음 갔던 날은 한여름이었다. 한국 최초의 사립 미술관이라는 점과 일제강점기에 우리 문화유산 찬탈을 막기 위해 사비로 유물을 모은 간송 전형필의 이야기가 매력적이어서 꼭 한번 가고 싶었다. 하지만 상설 전시 없이 매년 특별전이 간헐적으로 열렸기에 경남 창원에 살던 나로서는 쉽게 가기 힘들어 늘 아쉬움이 많았다. 이후 서울에서 지내며 간송미술관을 방문할 기회가 생겼고, 처음 방문했던 성북구의 간송미술관은 한여름의 전시였음에도 매일 매진이었다. 더운 날씨였지만 미술관 정문부터 전시장 입구까지 관람객들은 긴 줄을 기다려 전시를 관람했다. 나는 훌륭한 우리 문화유산을 눈앞에서 볼 수 있는 기회에 온 정신이 매료되었고, 그날의 경험을 계기로 박물관·미술관에서 꼭 일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국립민속박물관 청년인턴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가 간송미술관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듯 수많은 한국인에게 자긍심을 준 간송미술관은 <훈민정음 해례본>과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 신사임당의 <포도>를 비롯해 추사 김정희, 단원 김홍도, 겸재 정선 등 수많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을 소장하고 있지만 상설 전시를 할 만한 시설이 없어 수장고 밖을 나오는 일이 적었다. 그렇기에 ‘숨겨진 보물’ 같던 작품이 특별전으로 잠시 나오는 날은 수많은 인파가 간송미술관을 방문했다. 내가 갔던 한여름의 미술관에도 더운 날 오르막길을 오르는 사람들의 표정은 환하기만 했다.
문화로 나라를 지킨 간송 전형필 선생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간송 전형필은 대부호의 집안이었지만 일찍이 양아버지와 친아버지, 형이 모두 숨을 거두어 23세라는 어린 나이에 홀로 남게 되었고, 동시에 집안의 수많은 재산을 물려받게 되었다. 그 이후 간송 전형필은 선조들이 물려준 우리 문화유산이 해외로 유출되자 이대로 두면 민족정신이 말살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사비를 들여 수많은 보물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문화로 나라를 지키는 ‘문화 보국’이라는 대사를 사적으로 시작한 것이었다.
간송 전형필이 우리 문화유산을 소중히 여겼던 유명한 일화가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을 수소문 끝에 안동에서 찾아 1천 원에 얻을 수 있었지만 “훈민정음 해례본은 그보다 더 값어치가 높은 보물이다”라며 처음 제시한 값의 10배인 1만 원에 값을 치렀다. 당시 1천 원이면 좋은 기와집 한 채를 살 수 있는 값이었다. 이렇게 소중하게 얻은 훈민정음 해례본을 일제에 뺏기지 않으려고 비밀리에 보관했고, 광복 후에야 국문학계에 그 존재를 공개해 한글 창제의 이유와 원리를 정확히 연구할 수 있게 했다. 또,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는 훈민정음 해례본을 오동나무 상자에 고이 넣어 피란길 내내 함께했고, 밤에는 그 상자를 베개 삼아 베고 자기도 하는 등 우리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이러한 정신이 담겨있는 간송미술관은 국보 42건을 포함한 수많은 문화유산이 해외로 반출되는 것을 막아 후대에 우리 민족의 정신을 계승하는 발판이 되었다. 하지만 앞서 얘기했듯 상설전시관이 없어 훌륭한 소장품을 대중에게 늘 보여주기 힘들었기에 간송미술관은 분관을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고, 지역 균형과 더불어 대구의 문화적 가치를 높게 보고 대구간송미술관을 세웠다.
자연 친화적인 미술관, 대구간송미술관
대구간송미술관은 자연 친화적 건축물로 미술관 바로 뒤에 있는 대덕산과 어우러지도록 위로 쌓는 건축이 아니라 산의 고도에 따라 아래로 내려가는 방식의 건축을 했다. 또한 높은 나무 기둥을 여러 개 두어 주위의 자연과 어울리는 동시에 자연과 하나 되길 원하던 선조들의 정신이 잘 담긴 가장 한국적인 미술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미술관 입구인 2층을 지나 1층으로 내려가면 탁 트인 중앙홀과 큰 통유리 창 너머로 보이는 바깥 풍경으로 “차경”이 무엇인지 오감으로 깨닫게 한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창문으로 들어오는 채광이 좋아 미술관 전체가 환하고, 층고가 높아 답답함이 없어 여유로운 기분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중앙홀 옆에 있는 ‘보이는 수리복원실’에서는 정해진 시간에 손상된 작품의 조사·분석을 위해 보존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으며, 관람객은 외부 마이크를 통해 수리를 진행하는 담당자와 소통하며 수리 복원의 중요성을 느끼게 된다. ‘간송의 방’에서는 간송 전형필의 생애를 사진과 작품으로 만날 수 있다. 1907년에 돌사진을 찍고 휘문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야구부까지 했던 사진을 보면 그 당시 얼마나 대부호의 집안이었는지 알 수 있다.
세상 함께 보배 삼아, 《여세동보》
전시실은 1층부터 지하 1층까지 총 다섯 개 관이 있으며, 대구간송미술관 개관기념 국보 보물전 《여세동보與世同寶-세상 함께 보배 삼아》는 올해 12월 1일까지 진행한다. ‘여세동보’는 간송 전형필의 문화적 스승인 위창 오세창 선생이 서울 성북구의 간송미술관 보화각 건립을 기념하며 쓴 글귀의 내용으로, “세상 함께 보배 삼아”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개관전 《여세동보》를 위해 간송미술문화재단은 국보 42건 중 40건을 포함한 보물 97점과 간송 전형필의 유품 60점을 선보이며 대규모 전시를 꾸렸다. 이를 보려고 모인 관람객들로 실내는 북적였지만 넓은 공간 덕분에 혼잡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전시실 내부는 대부분 조도를 낮게 설정해 관람객이 온전히 작품에 집중할 수 있게 했다.
또한 모두의 미술관을 표방하는 대구간송미술관은 장벽을 없애 거동이 불편한 사람도 쉽게 다닐 수 있게 했고 경사로와 엘리베이터, 전시실 곳곳에 의자를 놓아 관람객이 편하게 전시실을 다닐 수 있게 한 점이 눈에 띄었다. 전시실 1에서는 혜원 신윤복의 <혜원전신첩>과 단원 김홍도의 <고사인물화>, 겸재 정선의 <경교명승첩>, <해악전신첩>, 허주 이징의 <산수화조도첩> 등 조선시대 풍속화와 풍경화를 포함한 폭넓은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신윤복과 김홍도의 그림 앞에서 관람객들은 “교과서에서만 보던 작품을 직접 보다니” 하고 감탄하며 열심히 작품을 감상했다.
전시실 2는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만 전시하는 단독 전시 공간이다. 조선 후기의 수수께끼 풍속화가 혜원 신윤복이 그린 미인도는 그 자태가 너무나도 우아해 ‘조선의 모나리자’라고도 불린다. 단독 전시실에서는 온전히 미인도에만 집중할 수 있게 동선이 이루어져 있고, 긴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고고한 자태로 관람객을 맞이하는 미인도를 만날 수 있다. 어두운 공간에서 미인도를 보다 보면 이 공간에 미인도와 나만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전시 공간을 꾸민 점이 인상 깊었다. 미인도 뒤편에 가면 혜원 신윤복의 인장과 함께 글귀를 볼 수 있어 단독 전시실이지만 다채로운 느낌을 준다.
미인도 전시실 옆 전시실 3은 <훈민정음 해례본> 단독 전시실이다. 간송 전형필 선생 덕분에 한글의 창제 이유와 원리가 밝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한글의 역사를 보여주는 훈민정음은 특별하기에 단독으로 조명하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했다. 아주 좋은 상태로 보존된 훈민정음을 전시하는 곳에서는 ‘훈민정음 합창단’이 훈민정음의 내용을 말하는 사운드 아트가 더해져 보고 듣는 감동을 함께 느낄 수 있다.
1층 전시실을 지나 지하 1층 전시실 4로 이동하면 추사 김정희의 수려한 필체로 쓴 서예 작품과 국보 <청자상감운학문매병>, <청자기린유개향로>,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 등 도자 작품과 <금동삼존불감> 등 금속 작품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작품이 너무 커서 대구에 오지 못한 ‘괴산외사리석조부도’와 ‘석조팔각승탑’은 같은 크기의 모형을 설치해 실물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주었다.
마지막 전시실 5에서는 대형 미디어 아트 ‘흐름 The Flow’가 180도 곡면 스크린을 통해 상영되고 있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이 모아온 수많은 문화유산을 한 영상에 담아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달빛 아래 수줍게 고개를 들어 보이는 미인도의 자태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영상으로 만나는 우리 문화유산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함께 만나는 벅찬 감정을 경험할 수 있다.
대구간송미술관은 열린 미술관을 지향해 전시가 없는 날에도 미술관에 쉽게 방문해 누구나 편히 쉴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2층의 도서자료실과 더불어 중앙홀과 외부 마당, 정자가 있는 수공간 등 상당 부분을 개방해 운영하니 영남권 시민에게는 언제나 편히 방문할 수 있는 훌륭한 문화 공간이 되고, 그 외 지역 시민에게는 대구를 방문해 다양한 지역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대구간송미술관은 지역 균형 발전과 더 많은 사람의 문화 향유라는 박물관·미술관의 목표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이다. 훌륭한 개관전과 더불어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자랑할 만한 미술관으로 거듭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글 | 오현탁_국립민속박물관 섭외교육과 청년인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