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LA, 거액의 의뢰를 받은 무당 ‘화림’과 ‘봉길’은 기이한 병이 대물림되는 집안의 장손을 만난다. 조상의 묫자리가 화근임을 알아챈 ‘화림’은 이장을 권하고, 돈 냄새를 맡은 최고의 풍수사 ‘상덕’과 장의사 ‘영근’이 합류한다. “전부 잘 알 거야… 묘 하나 잘못 건들면 어떻게 되는지” 절대 사람이 묻힐 수 없는 악지에 자리한 기이한 묘. ‘상덕’은 불길한 기운을 느끼고 제안을 거절하지만, ‘화림’의 설득으로 결국 파묘가 시작되고… 나와서는 안 될 것이 나왔다. – 영화 <파묘> 소개 中 –
지난 2월 22일, 한국의 민속 신앙을 바탕으로 한 오컬트 영화 <파묘>가 개봉했다. 장재현 감독은 <검은 사제들>, <사바하>에 이어 <파묘>로 오컬트 3부작을 만들었고, 그의 뚝심에 보답하듯 <파묘>는 개봉 한 달 만에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마니아 요소가 확실해 대중적 인기를 끌기 어렵다는 오컬트 장르. 하지만 <파묘>가 천만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감독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으며, 관객은 무엇을 보고 싶었을까. ‘험한 것’이 아닌 ‘환한 것’으로 극장을 밝게 빛낸 <파묘>의 모든 것을 파헤쳐 보자.
파묘를 파헤치다
<파묘>의 시작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MZ 무당’이라는 키워드를 발견할 수 있다. 보통의 선입견 속 무당은 나이가 어느 정도 있으며 주로 한복을 입고 있는 여성 이미지일 것이다. 현대와 동떨어져 있는 것 같은 ‘예스러움’으로 왠지 접근하기 어려운 분위기를 풍기기도 한다. 하지만 <파묘>는 달랐다. 김고은 배우와 이도현 배우를 통해 이 스테레오 타입을 깨고 젊고 ‘힙한’ 무당을 보여주었다. ‘화림’은 벨벳 톤의 트렌치코트, 셔츠 등 도시적인 비주얼을 선보였으며, 특히 컨버스를 신고 ‘대살굿’을 하는 장면이 크게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렇듯 우리의 민속 문화와 현대의 만남을 색다르게, 그러나 이질적이지 않게 담아낸 것은 <파묘>의 흥행 요인 중 중요한 부분이다. 흔히 ‘MZ 세대’라고 불리는 청년층을 겨냥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공감대를 자극해야 한다는 점을 정확하게 간파했다고도 할 수 있다.
이것이 전부일까? 그렇지 않다. 무당 등 민속 신앙의 스테레오타입을 깬 새로운 이미지를 제시하며 관객들의 관심을 끌고 난 후에는, 원로 최민식 배우와 유해진 배우를 통해 조금은 무거울 수도 있는 영화의 깊은 주제이자 메시지를 흡입력 있게 전달하며 출구를 원천봉쇄했다. 옛날과 오늘날의 경계, 민속 문화와 현대 문화의 조화, 젊음과 관록의 시너지 등 <파묘>는 자칫 대립할 수 있는 요소들의 경계를 과하지 않은 선에서 부드럽게 풀어주며, 영화 속 다양한 오브젝트와 볼거리들을 효과적으로, 그리고 친절하게 제시한다. <파묘>를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겠다.
‘힙하고, 친절하며, 오싹한,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영화’다.
민속학의 관점에서 바라본 <파묘>
무당과 굿 등 무속 신앙뿐만 아니라, 음양오행, 풍수지리 등과 같은 우리나라의 풍속과 지관, 법사, 보살 등 민속 문화와 깊은 관련이 있는 직업, 그리고 찹쌀, 말의 피, 도깨비, 절 등 영화의 전반에 걸쳐 민속학과 관련된 요소가 가득하다. 현대에는 무당을 중심으로 한 무속 신앙에 대해 미신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다. 영화에서도 이 같은 시선들을 반영해 그 실체를 보기 전까지 의심하는 인물들을 그려내기도 했다. 그러나 무속 신앙은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민족의 전통문화이다. 오래전부터 뿌리내린 민족의 한과 얼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또한, 본인의 딸과 미래 후손들이 안전한 땅 위에서 살 수 있도록 끝까지 설득했던 ‘상덕’과 그 설득에 응해 함께 힘을 합쳤던 ‘화림’, ‘영근’의 모습을 통해 공동체의 안녕을 비는 기복 신앙으로서도 계승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풍수지리와 음양오행 역시 영화 속에서 큰 역할을 한다. ‘상덕’이 가지고 있는 양의 기운으로 일본 무사의 음기를 극복하는 것은, 음양의 조화와 변화로 새로운 균형을 끊임없이 찾아가는 우주의 법칙을 반영한다. 영화 곳곳에서 다양하게 등장하는 음양오행설 또한 등장인물 간의 대립과 조화를 통해 음양의 상반된 특성을 보여주며, 각 등장인물이 처한 위험과 환경으로 오행목, 화, 토, 금, 수의 원리에 따른 상생과 상극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극의 긴장감과 몰입감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인 시각적 요소에서도 음양오행의 조화를 보여주며 균형의 중요성을 시사한다.
글 | 강태연_제12기 국립민속박물관 기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