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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서는 #1

『정미소: 낟알에서 흰쌀까지』
조사보고서 발간

곡물은 열량이 높아 적은 양으로도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어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주식으로 섭취하는 기본 식재료이다. 그러나 곡물은 껍질에 싸여 있어 낟알째로 섭취할 수 없었기에 적절한 가공을 거쳐야만 했다.

이렇듯 곡식 가공은 선사시대부터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식생활의 일부이자 일상생활에서 빠질 수 없는 일이다. 곡식을 도정하는 방법은 시간에 따라 점차 발전해왔다. 갈돌과 갈판, 절구와 같이 단순한 형태에서부터 가축이나 물의 힘을 빌리는 연자매, 물레방아를 거쳐 기계 동력으로 움직이는 도정기까지 도정도구는 적은 노동력으로 대량의 곡식을 찧을 수 있는 방향으로 변해왔고, 도정도구와 도정방식의 변화는 우리의 문화와 생활에도 영향을 미쳤다.

곡식을 쥔 정미소 주인의 손
정미소에 쌓인 쌀 포대

국립민속박물관은 곡물을 도정하는 공간인 정미소를 통해 한국인의 생활문화를 살펴보는 『정미소: 낟알에서 흰쌀까지』 조사보고서를 발간했다. 우리나라 도정 방법의 변천, 근대 이후 등장한 정미소의 정착과 발전 그리고 도시화와 산업화 이후 쇠락하게 된 현재의 모습까지, 정미소를 중심으로 풀어낸 한국의 도정 문화와 전국 곳곳에 남아있는 정미소와 이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서에 담아냈다.

정미소는 19세기 말, 미곡반출을 위한 근대 산업으로서 미곡항을 중심으로 설치되기 시작했고 우리나라 도입 이후 100여 년이라는 시간 동안 흥망성쇠를 겪어왔다. 정미소는 전통적 방식의 도정도구와 비교하여 도정 품질이 우수하고, 노동력과 소요 시간이 적게 든다는 장점에 힘입어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농촌 지역까지 급속도로 확산했으며 빠른 속도로 전통적 도정 도구를 대체했다. 광복 이후 근대의 산물인 정미소가 우리 삶에 정착하는 과정은 식량 증산이라는 정책과 궤를 같이 해왔으며 그 외에도 쌀 생산량 증가, 기계의 개량 등의 요인과 맞물려 1970년대 후반에 이르면 정미소의 숫자는 약 2만 5천 개에 이른다. 그러나 오늘날은 사정이 다르다. 도시화와 산업화로 인한 농지 면적 축소, 상품작물로의 전환 등으로 쌀 생산량이 감소하고 식생활의 변화로 인해 쌀 소비량까지 줄어들면서 많은 정미소는 수익 저하를 버티지 못하고 경영난에 시달리게 되었다. 더욱이 건조부터 포장까지 도정 전 과정의 자동화가 실현되면서 노동력 감축과 편의성이 증대된 신식 도정시설이 등장함으로써 농촌에서조차 정미소는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이렇듯 정미소는 전통적 방식으로 방아를 찧던 때와 자동화 양곡 가공공장이 주류가 된 때 사이에 존재하던 것으로, 근현대 한국의 생활상을 반영하는 매개체이다. 이번 보고서는 정미소에서의 도정 과정과 방법, 도정 기계와 도구의 사용과 발달, 운영방식 등 정미소가 점차 사라지면서 함께 소멸해가는 생활문화를 촘촘히 기록하였다.

 

정미소라고 하면 흔히 농촌 마을주민이 수확한 벼를 도정하는 곳을 떠올린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다양한 형태의 정미소가 존재했다. 쌀 생산량이 지금 같지 않았던 1970년대만 해도 보리를 도정하는 정맥기가 정미기와 나란히 자리 잡고 있었고, 밀을 재배하던 지역에서는 제분기를 갖추어 밀가루를 가공했다. 수수, 메밀, 옥수수 등 잡곡을 많이 섭취하는 산간지역 정미소에서는 쌀뿐만 아니라 잡곡 방아도 취급했다. 정미소에서 떡방아 기계를 찾아보는 일은 어렵지 않았으며, 떡을 만드는 ‘방앗간’과 곡식을 도정하는 ‘정미소’가 엄격히 구분된 것은 오히려 근래의 일이다. 농업 다각화로 쌀 생산량이 감소하고 식생활의 변화로 쌀 소비량까지 줄어들면서 많은 정미소가 수익 저하를 버티지 못하고 사라지게 되었다. 정미소가 벼만을 도정하는 공간으로 변모한 것도 정미소가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한 후이다.

이번 조사보고서에는 일반적인 농촌 정미소에 더하여 역사 속으로 사라지거나 지금은 보기 어려운 형태의 정미소에 대한 현장조사 내용을 수록했다. 아울러 정미소가 사라진 후 그 역할을 대체한 미곡종합처리장의 운영과 가정용 도정기의 사용 사례를 조사하여 현재의 모습을 살피고, 도시의 즉석도정 쌀가게, 폐정미소 활용 사례를 통해 정미소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을지 미래상을 그림으로써, 정미소를 둘러싼 한국인의 생활상을 풍부하게 드러내고자 했다.

보령 삼거리방앗간


먹을거리가 부족하던 시절, 흰쌀이 도정기에서 쏟아져 나오던 정미소는 풍요의 상징이었다. 도정의 부산물인 왕겨와 쌀겨조차 땔감 대신 불을 때는 연료로 사용할 수 있어 그대로 버려지는 법이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풍요의 공간 정미소에 삼삼오오 모여 소통했으며, 기계를 본 적이 없는 농촌 아이들은 굉음을 내뿜으며 돌아가던 정미소의 발동기와 도정설비를 통해 기계화를 경험했다. 그러나 산업화와 식생활의 변화로 인해 근현대 농촌의 경관을 구성했던 정미소는 사라지게 되었고 그 속에 담긴 우리 삶은 추억이 되었다.

『정미소: 낟알에서 흰쌀까지』 보고서는 정미소가 점차 사라지고 있는 상황에서 소멸해가는 생활상의 단면을 기록하고
근현대 생활문화유산으로서 정미소의 역할과 문화사적 가치를 조망하고자 했다. 이번 보고서가 그 시절의 기억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추억을 불러일으키고, 정미소를 접한 적 없는 세대에게는 과거를 경험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정미소: 낟알에서 흰쌀까지』 조사보고서

『정미소: 낟알에서 흰쌀까지』 조사보고서는 국립민속박물관 누리집www.nfm.go.kr을 통해 원문자료 내려받기가 가능하다.


글 | 김옥천_유물과학과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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