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보기 PDF 박물관 바로가기

그곳에 가면

솥뚜껑 언덕 아래서 만나는
평범하지만 오래된 이야기들
부산 정관박물관

삼국시대는 한반도 역사에 중요한 분기점이 되던 시기였다. 다양한 매체가 당시를 배경으로 콘텐츠를 생산하는 것은 그때의 역사적 상황이 극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시대를 살아가던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어떠했는지 가늠할 수 있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지난 2015년 개관 당시, 많은 사람들이 정관박물관에 관심을 보였는지도 모른다. 정관박물관은 국내 유일의 삼국시대 생활사 박물관이기 때문이다.

소두방이 정관으로 변한 사연은 정관박물관이 있는 기장은 부산에 속한 유일한 군 지역이다. 원래는 양산시에 속했지만 1995년 부산에 편입됐다. 이러한 변화가 일어난 건 부산 해운대와 기장 그리고 울산을 잇는 산업 벨트를 구축하기 위함이었다. 양산시를 포함한 3개 시의 의견을 조율하는 것보다는 부산과 울산 2개의 광역시가 머리를 맞대는 편이 사업을 빠르게 진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산업단지가 순조롭게 조성되고 배후 신도시 역시 새롭게 건설되기 시작했다. 동해안 일대를 잇는 해안도로도 확충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변화는 2010년부터 뚜렷해졌는데 2005년엔 8만 명을 갓 넘기던 인구가 5년 만에 10만 명을 웃돌았다. 2015년에는 15만 명을, 2023년 9월 현재는 약 18만 명을 헤아릴 정도가 됐다. 전국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급속한 인구 증가 추세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정관 신도시가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왜 기장 신도시가 아니라 정관 신도시라는 이름을 갖게 됐을까.

‘정관’이라는 이름은 기장과 동래를 잇는 고갯길로부터 유래했다. 그 고갯길의 원래 명칭은 소두방솥뚜껑의 방언재. 마치 솥뚜껑을 엎어 놓은 것처럼 생겼다 해서 지어진 이름이었다. 그런데 행정구역을 개편하던 일제가 솥을 뜻하는 ‘정’과 갓을 뜻하는 ‘관’을 합한 정관면으로 바꿔 지금에 이르게 됐다. 정관박물관의 상설전시관이 ‘소두방의 생활’과 ‘소두방의 기억’으로 명명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여전히 소두방을 잊지 않으려는 그 두 공간에는 어떤 유물들이 전시돼 있을까.

정관박물관 내부 전시관

여기, 원주민의 삶이 숨쉬고 있는 공간
정관신도시 개발이 시작되자 땅속에 묻혀 있던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기 시작했다. 그 대부분은 삼국시대의 것들이었는데 당시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그릇과 목재, 집터 등이 훼손되지 않은 모습 그대로 발견되는 경우가 많았다. 습지가 많은 구역에 매몰돼 있던 터라 보존 상태가 뛰어났다. 당연히 사학계에서는 큰 관심을 가졌다.

“정관박물관이 국내 유일의 삼국시대 생활사 박물관을 표방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동안은 주로 무기나 장신구와 같은 유물 발굴이 많았던 반면, 일상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들을 대상으로 한 발굴은 드물었으니까요.”

정관박물관 전시를 기획하고 있는 이은혜 학예사는 발굴한 유물들을 시대상에 맞게 재현한 공간에서 전시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며 웃었다. 재현에 필요한 자료가 많지 않았던 게 무엇보다 큰 이유였다. 그래서 국내는 물론 해외 자료들까지 샅샅이 뒤져가며 전시 공간을 완성했다고 한다. 재미있는 점은 신도시가 들어선 자리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이 새롭게 출토된 유물에 대해 큰 자긍심을 갖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지역민들의 방문이 잦다는 정관박물관에 얼마 전부터 더 많은 관람객이 몰리기 시작했다. 도깨비 때문이다. 지난 9월부터 시작한 정관박물관의 기획전시 《신과 함께 도깨비 모시기》는 기장 지역에서 이어져 내려오던 도깨비 고사를 주제로 하고 있다.

“어린이 위주로 진행하던 기획전시를 성인 눈높이에도 맞추려고 새로운 전시를 고민하던 중 기장에서는 오래전부터 도깨비에게 제사를 지낸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지역성과 역사성을 살리는 동시에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주제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기획전을 준비하게 됐지요.”

이은혜 학예사의 설명에 따르면 기장의 도깨비는 풍어의 소원을 들어주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도깨비의 성격과 형태는 지역에 따라 다르기 마련. 그래서 전국에서 도깨비에 대한 자료를 찾다 보면 정형화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게 쉽지 않다. 다만 한 가지, 우리에게 익숙한 ‘뿔난 도깨비’의 경우 일본에서 건너온 ‘오니’의 이미지가 더해진 사실만은 명확하다. 그래서 《신과 함께 도깨비 모시기》 관람을 시작하는 이들은 “내가 알고 있는 도깨비가 우리 도깨비가 아니었어?”라는 놀라움과 함께 우리 생활 속에 함께하던 다양한 모습의 도깨비들을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 익살스럽기도 하고 으스스하기도 하지만 어딘지 정감이 가는 모습들은 오랫동안 눈길을 잡아끄는 힘이 어려있다. 12월 10일까지 이어지는 전시 동안, 꼭 한 번 정관박물관을 방문하도록 하자. 다정하면서도 새로운 도깨비의 면면을 형상화한 유물들이 일부러 발걸음 한 모든 이들을 반갑게 맞아줄 테니까.

기장의 가볼 만한 곳들

울주민속박물관
울주의 민속신앙 ‘영동할만네영등할망 이야기’를 담은 실감 영상 등을 통해 울주군 고유의 민속신앙을 공부할 수 있는 곳이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울주만의 토속적인 면을 누구나 흥미롭게 관람할 수 있도록 기획돼 있어 지역 주민뿐 아니라 관광객들에게도 인기가 좋다. 점점 사라져가는 지역 신앙의 흔적을 잘 보존한 사례로 손꼽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정관박물관에서는 약 30분 거리에 위치해 있으니 꼭 한번 들러보는 걸 추천한다.

장안사
기장군 장안읍에 위치한 장안사의 대웅전은 부산 지역 내에 현존하는 목조 건축물 가운데 운수사 대웅전 다음으로 오래된 역사를 자랑한다. 문무대왕 13년673년 원효대사가 창건한 후 조선 효종 8년1657년에 새로 지었고, 이후 영조 20년1744년에 연목 부분 수리가 이루어졌다는 뚜렷한 기록이 남아 있어 그 의미가 더 깊다. 특히 기둥과 대들보 등 주요 구조 부재가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으로 꼽힌다. 늦가을이면 주변 단풍과 어우러지는 경치가 뛰어나 기장뿐 아니라 인근 지역 주민들의 단풍놀이 명소로 손꼽히고 있다.

시랑대
기장에 동해선이 개통되며 세워진 ‘오시리아역’. 그 이름의 유래에 대해 궁금해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오시리아는 기장의 명소인 오랑대와 시랑대 그리고 장소를 뜻하는 그리스어 ‘~리아’ 세 가지 단어를 조합해 만든 이름이다. 그리고 시랑대는, 동해의 너른 바다를 뚫고 솟아오르는 일출을 감상하는 유명 포인트 중 한 곳으로 손꼽히고 있다. 동해임에도 저녁노을이 바다와 하늘을 동시에 붉게 물들이는 흔치 않은 곳으로 알려져 있으니 혹 일출을 맞이하는 게 쉽지 않다면 오후 늦게라도 꼭 들러 동해의 낙조를 감상해보자.

미니인터뷰

지역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더 큰 역할을 하겠습니다
-이은혜(정관박물관 학예연구사)

신도시 중심에 위치한 저희 정관박물관은 어린이 관람객과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관람객이 압도적으로 많은 곳입니다. 부산 원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보니 주말마다 집을 나서는 어린이 동반 가족분들로 주말이면 박물관이 꽉 찰 정도입니다. 자연스레 저희도 어린이 동반 가족 관람객을 중심으로 전시, 교육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국립민속박물관의 도움을 굉장히 많이 받았지요.
국립민속박물관의 순회 전시였던 2017년 《해와 달이 된 오누이》, 2018년 《나무를 만나다》를 정관박물관에서 소개했는데 이때를 계기로 어린이 특별기획전을 확대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공식 어린이박물관도 없고, 어린이 전시를 진행한 적도 없던 부산에서 민속박물관의 어린이 전시는 정말 중요한 롤모델이 됐거든요. 덕분에 현재는 저희가 자체적으로 기획한 프로그램이 대외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을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정관박물관은 작은 공간을 적은 인원이 운영하는 박물관입니다. 하지만 지역 주민에게 좋은 기억을 남길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 잡으려 합니다. 그리고 그 기억들이 확대되어 다양한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좋은 계기로 활용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응원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글 | 정환정_여행작가

더 알아보기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 등록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