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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서는 #2

일상, 아카이브가 되다
이창호 기증 아카이브 자료집 발간

일상을 기억하고 기록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기억하고 싶은 순간이 오더라도 일상의 익숙함을 낯설고 특별하게 바라보기는 쉽지 않아 그 순간을 포착하기가 어렵다. 얼마 전까지 우리 모두를 힘들게 했던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처럼 삶이 크게 변화하는 계기가 왔을 때에 비로소 익숙했던 일상이 또렷이 보인다. 우리가 일상의 공기처럼 느끼지 못했던 기억을 기록하는 작업은 그래서 특별하다.

사진, 일상을 기록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
일상의 순간을 포착하고 기록하기 가장 좋은 방법의 하나가 사진이다. 기억으로만 담기 힘든 일상의 추억은 사진으로 기록할 때 긴 생명력이 더해진다. 사진은 그 자체만으로도 현장성과 사실성이 뛰어나 기록자료로서 가치가 높다. 민속아카이브 자료 중 90% 이상이 사진인 것도, 사진가가 기증한 사진이 28만 점이 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사진가 이창호 선생 역시, 평생 촬영하고 소중히 간직한 사진 24,501점을 20017년, 2018년 두 차례에 걸쳐 기증하였다. 그는 사진작가로서 민속문화에 꾸준한 관심을 두고 활동을 이어가면서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우리 주변에 소소하지만 사라져가는 일상을 포착한 사진을 주로 촬영하였다. 국립민속박물관은 2023년 6월, 그가 기증한 일상 사진을 통해 민속아카이브 자료의 가치를 조명하고자 24,501점의 기증 사진 중 157점을 선별하여 아카이브 자료집 『일상, 아카이브가 되다』를 발간하였다.

기증자료집 본문

이전 개관 준비로 만난 인연, 기증으로 이어지다
기증자 이창호 선생은 오랫동안 출판사진가로 활동하면서 일상에 대한 기록에 천착하였고, 민속문화에도 지대한 관심을 갖고 활동을 이어간 사진작가이다. 1970년대 후반부터 사진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1980년부터는 광고사진스튜디오를 거쳐 출판사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며 왕성히 활동하였다. 그는 작가로서의 개인적인 활동이나 출판사진가로서 작업의 소재를 대개 일상에서 찾았다. 특히, 그는 ‘원형’이 훼손되거나 사라져 가는 우리 전통문화의 안타까움을 느끼며, 우리의 지나간 일상을 포착하고 민속문화를 기록하고자 노력하였다. 그 결과, 2003년에는 장승, 당산나무, 서낭당과 같은 마을신앙 대상물을 주제로 ‘마을지킴이’ 전시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이창호 선생과 국립민속박물관과의 인연은 생각보다 매우 오래되었다. 우리 관이 이전 개관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던 1993년, 박물관 측에서 상설 제2전시관에 사용하고자 가을 들녘을 표현한 사진을 수소문하던 중 평소 모내기, 추수 들판 등 농사 관련 사진을 꾸준히 찍어왔던 그와 연결이 되었고, 그가 사진을 흔쾌히 제공해 주면서 박물관과 처음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는 이를 통해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도 박물관에서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때가 그의 나이 30대 초중반이었는데, 이를 계기로 더 많은 자료가 박물관에서 활용됐으면 하는 마음에 언젠가는 자신의 사진 컬렉션을 우리 관에 기증하고자 마음먹었다고 한다.

24,501점의 일상 기록, 아카이브가 되다
아카이브 기증 자료집 『일상, 아카이브가 되다』는 이창호 선생의 주요 사진을 중심으로 사진 챕터 2개와 짧은 글 6개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챕터 「사진가의 관심과 사명」은 이창호 선생이 사진가로 성장하고 정체성이 확립되어 가던 시기의 주요 자료를 소개하고 있다. 전반부에는 청년 사진가인 그가 촬영 대상이 일상적 모습으로 확장하는 과정을 1970년대 한적한 마을의 풍경이나 장날의 모습, 천진난만한 아이들 등을 예시로 보여주고 있다. 후반부에는 출판사 사진팀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1987년 이후, 두 가지 방향의 사진을 소개하고 있다. 하나는 사라져가는 일상에 대한 기록에 천착하면서 사진작가로서 기술적·미학적 완성도가 높은 사진을 촬영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직업 사진가로서 도서 출판에 적합한 정보가 담긴 레퍼런스reference 사진을 촬영한 것이다. 작가로서의 사진이 빛과 피사체와의 정서적 교감이 느껴지는 것이 많다면, 레퍼런스 사진은 사진에 도움이 되는 요소를 최대한 갖추고 해로운 요소는 최대한 제거한 구성이 돋보인다. 두 번째 챕터 「어제의 일상, 오늘의 기록」은 기증자료의 아카이브적 가치에 주목하여 자료를 소개하고 있다. 시간과 공간으로 주제를 나눠 지나간 우리의 일상의 단면을 통해 삶의 기록을 확인해 보고자 하였다. 사진 한 장 한 장을 꼼꼼히 보고 있으면, 일상의 추억과 기억의 현장을 시나브로 꺼내어 줄 수 있을 것이다.

민속아카이브 시스템에 등록된 이창호 기증 자료

각 챕터 사이에는 그의 사진과 아카이브 자료의 가치를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실었다. 「다시보기」에서는 사진가가 어떤 생각과 관점으로 사진을 기록했고, 촬영에 임했는지를 사진 자료와 인터뷰 내용을 재구성하여 수록하였다. 「살펴보기」에서는 사진 자료가 어떤 과정을 통해 아카이브 자료로 정리되는지 다양한 예시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는 사진의 기술적·미학적 완성도와 더불어 각 자료의 정보를 충실히 기록해 두었는데, 이를 바탕으로 아키비스트가 어떻게 객관화된 정보로 메타데이터를 정리하는지는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깊이보기」에서는 사진가 이창호 및 기증 과정을 소개한 글과 이창호 기증 사진의 양적·질적 특징을 각각 설명한 논고가 수록되어 있다. 이번 자료집이 기존의 기증 자료집과의 차별점이 있다고 한다면, 아카이브 자료의 정리와 등록 과정을 모두 마친 후 자료집을 발간했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수증 이후, 일부 자료를 선별하여 자료집을 발간했다면, 이번에는 아날로그 필름을 디지털화하고, 모든 자료의 메타데이터를 정리한 후, 최종적으로 등록자료로 국가 귀속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런 과정을 통해 그의 사진을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었고, 우리 관 민속아카이브 정리 기준을 통해 재정리된 아카이브 자료의 가치를 데이터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자료를 정리하면서 왜곡 없는 정확한 정보를 작성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하지만 박물관 사업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기 위해서는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있는 그대로 정보를 보여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 점에 있어 이창호 기증자료는 다른 기증자료에 비해 다양한 방법을 통해 많은 정보가 충실히 정리되었다. 자료집 발간에 맞춰, 앞으로 이창호 기증자료가 세상에 널리 소개되고 많이 활용될 수 있기를 더욱 기대한다.

이제는 보기 힘든 우리의 일상

공중전화 부스에 길게 늘어선 줄
빨래터
수인선 협궤열차
아파트 이사
투모

글 | 김승유_유물과학과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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