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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온 길·걸어갈 길

민속학은 나를 설명하는 체계,
뿌리가 깊어야 흔들리지 않는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소속의 김일권 교수는 역사민속학, 종교민속학, 동양천문사상사, 한국문화사 등 일일이 손에 꼽기도 힘들 만큼 폭넓은 연구와 저술, 교육 활동을 하는 인물이다. 그에게 민속학이란 ‘ㄱ’을 알면 ‘ㄴ’이 궁금하고 이것이 다시 ‘ㄷ’으로 연결되면서 끊임없이 탐닉하게 만드는 깊은 우물 같은 대상이다. 오늘도, 내일도 결코 멈출 수 없는 민속학 연구로 국내 민속학 연구에 크나큰 족적을 남기고 있는 그를 찾아가 보았다.

연구의 꼬리물기, 민속학에 다다르다
작년 12월 한국민속학회 회장직 임기를 끝낸 김일권 교수는 요즘 『삼국사기』를 연구하고 있다고 했다. 천문 별자리, 기상기록, 시간기록, 고구려·백제·신라의 신화, 제사 등이 총망라된 이번 연구는 집필한 원고매수만 무려 1만 5천 매. 현재 최종교열 작업을 하느라 매일 새벽에 잠드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김일권 교수는 한계 없는 연구영역으로도 유명한 인물이다. 학사 때는 생물학을 전공했고 석·박사 때는 종교학을 공부했다. 민속학자로서 역사학, 천문학 분야에서도 권위를 자랑한다. 민속학과 관련, 일일이 꼽기 힘들 만큼 무수한 논문과 책을 써낸 그가 처음 민속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민속학은 매우 크고 복잡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시간, 천문을 많이 다뤘는데 세시풍속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면서 더 많은 양을 담아내게 됐어요. 현대 달력도 있지만 근대식 달력도 있고 더 먼 역사 시대의 달력도 있잖아요. 그걸 공부하려면 또 한문을 알아야 하고 결국은 그 시대 시스템을 알아야 연구를 할 수 있으니 점점 더 큰 영역으로 들어가게 된 거죠.”

김일권 교수는 학문적인 문제를 하나 풀려면 옆을 봐야 하고 그걸 풀다 보면 또 연결되어 있는 모든 문제를 계속 따라가게 된다며 이를 두고 “어쩔 수 없다”, “이렇게 된 거다”라고 파안대소를 했다.그가 몸 담은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낯선 이름이지만 한국국학진흥원,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과 함께 한국학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3대 연구교육기관으로 꼽힌다. 이곳이 처음 생긴 시기는 1978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됐고 이후 참여정부 시절인 2005년 지금의 ‘한국학중앙연구원’이란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일반대학과는 좀 다르게 이공학의 카이스트와 동일한 목적으로 인문학의 연구와 교육을 동시에 구현해 보자는 의도로 만들어진 곳이라고 김일권 교수가 덧붙인다.

국립민속박물관 새해 토끼 왔네 전시장 모습

우리 민속의 중심, 국립민속박물관
김일권 교수는 민속학에 대해 극진한 애정과 자부심을 갖고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문화예술학부 인류학·민속학 전공 교수라는 직함을 갖고 있지만 사실 이 학부 이름에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연구원 초기에는 민속학과 안에 인류학이 속해 있었는데 분리가 되면서 인류학과가 만들어졌고 이후 학문적으로 인류학과가 더 크다면서 민속학을 없애고 편입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던 것이다.

“학문에 크기가 어디 있습니까? 미국, 영국 등 이런 나라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주장한 거죠. 그때 제가 들어온 지 2년이 채 못 된 때여서 신분이 불안한 상황이었지만 저는 강하게 맞섰습니다. 민속학이라는 이름은 반드시 지켜야 했으니까요. 학문에는 상호존중이 필요하고 민속학은 더더군다나 한국학 연구에서 절대로 빠져서는 안 되는 본질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의 목소리가 그때로 돌아간 듯 높아진다.민속학에 대한 김일권 교수의 진심은 국립민속박물관에 대한 관심과도 직결된다.

“보통 사람들이 어느 특정 나라에 가면 그 나라의 민속전시를 궁금해해요. 그 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토속적인 문화, 그 사람들이 지켜내고 전승하는 걸 모아놓은 민속에 대한 호기심이 큰 거죠. 그래서 저는 경복궁 안에 국립민속박물관이 있다는 걸 굉장히 바람직하게 여깁니다. 전국의 민속도 중요하지만, 우리나라의 수도인 서울의 민속도 중요하거든요. 모든 변화의 선두에 있으니까요. 여타 국공립박물관들이 서울에 있는 이유가 있어요. 해외 관광객들도 서울에 가장 많이 오는데 거기서 국립민속박물관을 한 번이라도 들릴 수 있다면 굉장한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해요. 궁궐만 있으면 박제화가 돼버려요. 그 나라의 민속을 체험도 하고 만질 수도 있고 다양한 전시기법들로 대중들이 보다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의 박물관’이 함께 있어야 하는 겁니다. 궁궐과 민속의 공존은 부조화 같지만 그건 옛시대 사고방식인 것이고 글로벌 K-컬처 시대에 더욱 앞서가는 컨셉인 거죠. 세계 누구도 안 한 걸 구현해 왔다는 게 대단한 겁니다.”

그래서 김일권 교수는 국립민속박물관의 세종시 이전이 탐탁지는 않다. 이전이 아니라 서울민속박물관을 남겨두는 전제로 접근해야지, 본체를 뿌리 뽑아 지방으로 옮기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민속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의 숫자가 줄어들고 민속학이라는 타이틀이 자꾸 다른 이름으로 덮이는 상황에서 그의 주장 안에 안타까움과 간절함이 교집합을 이룬다.

띠 전시 포스터

민속학의 뿌리가 견고해야 하는 이유
김일권 교수는 국립민속박물관에 대한 최초의 기억으로 1994년 국립민속박물관 상설전시실에 고구려벽화 전시를 꼽았다. 이후 꾸준히 민속박물관의 전시회를 찾았고 민속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뒤에는 학자로서의 교류나 학회 참석 등으로 그 인연을 이어 나갔다고.

“저는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리는 다양한 전시를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십이지 전시회를 비롯해, 민속공예 전시 등 우리 민속의 의미와 아름다움을 담아내는 전시회를 꾸준히 여는 건 정말 큰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관람객들의 주목을 끌기도 하지만 우리 민족의 삶을 끊임없이 설명해 주는 자리이기 때문이지요.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마케팅적인 측면이에요. 방문객 숫자 1위든 2위든 3위든 국민들에게 상위권에 랭크되는 박물관이라는 걸 늘 각인을 시켜줘야 해요. 다양한 수치를 객관적인 데이터로 만들어서 사회와 정부가 국립민속박물관을 평가할 수 있는 지표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겁니다. 홍보가 아니라 마케팅을 해야 하는 거지요.”

김일권 교수는 20년 전의 민속학과 지금의 민속학을 비교해 본다면 민속학의 필요성은 커지는 데 정작 현실에서는 힘을 잃어가고 있다고 했다. 특히 대학교에서 민속학을 내세운 과들이 폐지되거나 이름을 바꾸고 있다는 건 민속학을 연구할 학문적 인력이 없다는 소리라는 것이다.

“조사하고 보존하고 모으는 역할을 박물관이 한다면, 민속 현상을 들여다보고 연구하는 건 학문이 해야 하는 거거든요. 소재도 너무 많은데 이대로라면 근간이 되는 연구가 너무 부족해지고 나중에는 설명할 주체가 없어지는 위험한 상황이 될 거예요.”

김일권 교수는 따져보니 인간이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100년이라며 6.25전쟁도 벌써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지금, 학문적 연구와 시대의 흐름을 잡아주는 연구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그에게 원론적인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우리 시대에 민속학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라고 말이다.

“저도 늘 고민하는 지점입니다. 민속학은 개인의 존재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존재하는 이상 내가 누군지 궁금할 수밖에 없잖아요. 나를 설명하는 체계가 필요하고 그 답변을 수많은 곳에서 구하겠지만 가장 가까이 있는 게 바로 민속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속학은 왜 내가 부모와 살아야 하는지 부모 형제란 뭔지 설명하는, 나를 설명할 수 있는 학문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속은 존재할 수밖에 없는데 얼마나 제대로, 좋은 설명을 해서 학문으로 남냐, 안 남냐 하는 차이라고 봐요. 사람들, 가족, 공동체, 마을… 이런 맥락과 시대의 변화를 끊임없이 연구함으로써 학문의 지평을 더 넓혀주는 거죠.”

뿌리가 약하면 외형이 아무리 그럴듯해지고 커져도 결국은 뽑혀 나갈 수밖에 없다는 그의 말이 왠지 선연하게 남는다.우리의 삶, 나의 삶, 전통과 현재, 변화를 이야기하는 우리 민속과 학문으로서의 민속학이 치우치거나 모자람 없이 균형을 잡길 소망하는 그의 바람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건 바로 우리 국립민속박물관의 미래가 견고하길 소망하는 마음과 잇닿는 것이 아닐까.


글 | 김일권_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인터뷰·정리 | 이경희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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