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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이 소장한

엄마 손처럼 따뜻한
배밀이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제주도가 고향인 필자는 어릴 적 한여름에 찬 빙과류를 먹고 갑자기 배가 아파서 움켜쥐고 뒹굴면, 어머니가 세게 손뼉을 치거나 손을 마구 비빈 후 배를 문질러 주었던 기억이 있다.

“들럭퀴지 말앙 안절부절 날뛰지 말고 내려가불라 내려가라
쑤악 쑤악 내려가불라,
어멍 엄마 손이 약손…”

이렇게 주문을 외우듯 하며 배를 문지르고 있으면 신기하게 배앓이가 멈췄다.

『동의보감 외형편 권3東醫寶鑑 外形篇卷之三』, 복통을 두루 치료하는 법腹痛通治 편에 ‘배가 아플 때 반드시 따뜻하게 흩어야 하는 것은 기가 울결되어 잘 돌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가 막혀서 잘 돌지 못하기 때문에 아픈 것이다. 凡腹痛, 必用溫散, 此是鬱結不行. 阻氣不運, 故痛也.’와 같은 내용이 있다. 배가 차가워지면 혈관의 상대적 수축으로 허혈성 통증이 일어나는 것이니 배를 따뜻하게 하여 한곳에 몰려 막혔던 기를 흩어지게 하여 돌게 했다. 찬 음식이나 꼭 차갑지는 않더라도 차가운 성질의 음식이 배를 아프게 해서 통증이 있을 때는 따뜻한 것을 배 위에 올려두고 문지르면 낫는다고 하여 민간에서 해왔던 의료행위이다.

‘배밀이’는 이처럼 배앓이할 때 따뜻하게 데워서 배 위에 올려놓고 문지르기 위해 만든 도구이다. 바닥이 평평한 손잡이가 달린 냄비뚜껑 모양으로 가정에서 응급 처치했던 민간 의료기구인 셈이다. 보통은 화로에 담긴 불이 사그라져서 재가되지 않도록 눌러놓는 일명 ‘불돌’을 사용했다. ‘불돌’은 대체로 모양이 동글납작한 ‘먹돌검은 조약돌’이나 기왓장, 깨진 오지항아리의 굽 부분 등을 다듬어서 활용했다. 평상시에는 화롯불을 눌러놓다가 갑자기 배가 아플 때 이것을 헝겊에 싸서 배 위에 올려놓고 찜질하여 통증을 가라앉혔다. 신석기 유적에서도 이 불돌과 비슷한 모양의 돌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아주 오래전부터 사용되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나중에는 불돌을 잡기 편하도록 흙으로 손잡이를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다. 돌로 먼저 사용했기 때문인지 돌이 아닌 재료로 같은 용도·기능의 것을 제작해도 여전히 불돌이라 불렀다.사진1

사진 1| 와당모양의 흙으로 만든 불돌 | 지름 11 × 높이 4cm

국립민속박물관 소장품 배밀이의 재질은 대부분 돌과 흙이며 오지나 도자기 등으로 구운 것은 손으로 잡기 쉽도록 손잡이를 만들고 모양도 사용하기 편리하게 제작하였다. 솥뚜껑 모양에 크기는 평평한 바닥 지름이 11.5cm에 손잡이 포함하여 높이가 6cm인 것,사진2 갓 모양에 크기는 바닥 지름이 9.5cm 높이는 앞과 같은 것 등이 있다.사진3 바닥이 원형이 아닌 형태는 오지로 제작되었고 높이가 13cm로 손잡이가 다른 것보다 조금 긴 것이 특징이다.사진4

사진 2 | 배밀이 | 지름 11.5 × 높이 6cm
사진 3 | 배밀이 | 지름 9.5 × 높이 6cm
사진 4 | 배밀이 | 너비 10.5 × 높이 13cm

바닥엔 불에 달구어 사용했던 흔적이 있다. 돌이든, 도자기든 집마다 형편에 맞게 활용하고 제작했을 것이며 한방에서도 사용하다가 배밀이보다 진화한 놋쇠 찜질기가 한방 의료기로 만들어졌다. 오늘날 물주머니처럼 뜨거운 물을 넣고 닫을 수 있는 놋쇠 찜질기로.옛날에는 흔히들 약손이라고 어머니나 할머니가 배앓이할 때 주문과 함께 배를 문질러 주면 씻은 듯이 낫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지역마다 외웠던 주문은 조금씩 다르지만 말이다.
“쑥쑥 내려가라, 엄마[할머니]손은 약손 아기 배는 똥배[가시 배] 배야 배야 똥배야, 꾸룩 꾸룩 내려가거라 ……”

과연 약손은 근거가 있는 것인가? 과학적으로는 손의 열이 배를 따뜻하게 해줘서라고 한다. 또한 엄마가 배를 문질러주면서 만져주면 우선 안심이 되고 따뜻한 손길은 마사지 효과도 있어서 심리적이든 기능적이든 효과가 있다. 영국 과학잡지 『Nature네이처1)』에 따르면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이 자녀의 신경 조직을 자극해 정서적 안정과 신체 발육까지 촉진 한다고 한다. 이것은 단순한 믿음이나 긍정적인 생각만으로도 치료 효과를 거두는 위약僞藥: 가짜 약 현상, 즉 플라시보placebo: ‘기쁘게 해드리겠습니다’ 라는 라틴어 효과이다. 요즘 겨울철에 많이 사용하는 핫팩이나 물주머니 등 찜질용 기구들이 엄마 손처럼 따뜻한 배밀이와 비슷한 기능을 지녔다. 맨손에서 가까운 도구까지 의료기구로 활용하는 선인들의 삶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1) CT as a system for limbic touch that may underlie emotional, hormonal and affiliative responses to caress-like, skin-to-skin contact between individuals. “촉각은 개인간의 애무와 같은 피부 대 피부 접촉에 대한 정서적, 호르몬 및 연계 반응의 기초가 될 수 있는 변연계 접촉 시스템이다.” (Published: 29 July 2002 Nature Neuroscience Volume: 5, p:900-904)


글 | 이경효_유물과학과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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