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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 속 토끼 토끼의 지혜로움 닮아가기

2023년은 계묘년癸卯年 토끼의 해이다. 초식 동물인 토끼는 항상 쫓기거나 잡아먹힐 위기에 닥친 모습으로 그려지는 연약한 동물이다. 이런 힘없는 동물이기에 토끼에게는 생존의 문제가 절박하다. 토끼가 강한 동물로부터 잡아먹히지 않고 살아남는 방법은 그저 포식자의 비위를 잘 맞추고 살거나 기상천외한 지략을 동원해 포식자를 지혜로 물리치는 방법밖에는 없다.

먼저 민화 그림 하나를 보자. 토끼는 민화民畵나 설화에서 흔히 호랑이와 짝을 이뤄 등장한다. 연약한 토끼에 상대되는 동물로 최상위 포식자인 호랑이를 상징적으로 대응시켜놓은 양상이라 할 수 있다. 옛날이야기에서 흔히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이라는 말을 하는데, 그림에서는 호랑이가 장죽을 입에 물고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을 그려놓고 있다. 그런 호랑이를 곁에서 깍듯하게 시중들고 있는 동물이 토끼이다. 물론 이 그림은 수탈당하는 상하층 간의 관계 설정을 희화화한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하지만, 힘없는 동물인 토끼가 생존하기 위한 나름의 생존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약한 존재로서의 숙명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형상이다. 그런데 우리 설화에서는 토끼가 이처럼 약한 모습으로만 그려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최상위 포식자인 호랑이를 물리치는 존재로 등장한다. 힘으로 물리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오히려 호랑이를 위기에 빠뜨려 물리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구비문학대계> 중에는 토끼와 호랑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여러 설화가 채록되어 있는데, 그중에서도 충남 보령에서 채록된 ‘돌떡을 먹은 호랑이’ 설화 내용이 흥미롭다. 그 내용을 소개하면,

산중의 왕 호랑이가 사냥거리를 찾아 어슬렁거리다가 토끼를 만났다. 호랑이가 “토끼, 너를 잡아먹겠다”라고 하니. 토끼가 “저보다 훨씬 맛있고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것이 있다”라며 호랑이를 꼬였다. 토끼가 호랑이를 앞에 앉혀놓고 차돌멩이에 참기름을 발라 고소한 냄새가 진동하게 하고는 열한 개의 돌을 불에 굽기 시작했다. 돌이 빨갛게 달궈지자 토끼는 태평스럽게 “형님, 소금과 도마를 좀 얻어올 테니 그사이 열 개 중에 하나라도 드시면 안 됩니다”라고 당부하고는 그 자리를 떠났다. 토끼가 떠난 뒤 호랑이가 돌멩이를 세어보니, 아무리 세어봐도 열 개가 아니라 열하나였다. 호랑이는 한 개가 더 많다는 사실을 알고는 매우 흐뭇해하면서 빨갛게 달궈진 돌멩이 한 개를 얼른 삼켜버렸다. 그렇게 빨갛게 달궈진 돌을 먹었으니 호랑이의 내장이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호랑이는 내장이 타버렸고, 그렇게 토끼가 호랑이를 물리칠 수 있었다고 한다.

<돌떡 먹는 호랑이> 등 여러 가지 동화를 음반과 함께 만든 책 | 1975년 | 신동호 그림 |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토끼는 힘은 약하지만 지혜롭다. 꾀를 내서 호랑이를 물리치고 위기에서 벗어난다. 이처럼 토끼가 지혜롭게 대처해 호랑이에게 잡아먹힐 위험을 벗어나는 내용의 설화는 다양한 형태로 전승된다. 새를 몰아주어 한꺼번에 많이 잡아먹게 해주겠다고 속이고는 대숲을 불태워 호랑이를 물리치기도 하고, 호랑이에게 꼬리를 강물에 담그고 있으라고 하면서 물고기들이 꼬리에 붙어 물고기를 한꺼번에 잡아먹을 수 있다고 속여 겨울철 언 강물에 호랑이를 가둬두기도 하는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죽을 위기를 모면한다. 강인한 힘보다 지혜가 우위에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설화들이다. 물론 지혜라기보다는 속임수를 써서 호랑이를 함정에 빠뜨리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건국신화에서도 속임수를 활용해 지혜 대결에 승리하는 모습을 찾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동명왕신화에서 궁궐의 기둥이 오래된 것처럼 보이도록 속임수를 써서 송양왕을 물리치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석탈해신화에서는 숯과 숫돌을 숨기고는 대대로 대장장이 집안이었다고 속여 호공瓠公의 집터를 빼앗기도 한다. 이렇듯 속임수는 곧 지혜로움이며, 나라를 건국하는 시조가 되도록 하는 신성 능력의 하나라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처럼 토끼가 지혜롭기만 하면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그 지혜 또는 꾀가 도를 넘어 교만한 모습으로 그려지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곰을 범한 토끼>와 같은 설화에서는 토끼가 곰이 사는 동굴 속에 새끼들만 있는 것을 보고 능욕의 말을 하면서 도발하자 곰이 화가 나 숨어있다가 토끼를 잡으려는 찰나에 덤불로 도망쳐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다. 하지만 그것에 기고만장해하다가 오히려 독수리에게 채여 가거나 사람이 설치한 올가미에 걸린다거나 해서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하고 만다. 토끼는 이처럼 지나치게 자기 꾀만 믿고 방자하게 굴다가 스스로 곤란한 지경에 처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외에도 우리 사례는 아니지만 이솝우화의 <토끼와 거북이>에서는 거북이가 느리다고 얕보다가 오히려 패배하기도 하고, <별주부전>에서는 교만함 때문에 간을 내어주어야 할 위기에 봉착하기도 한다. 제 꾀에 넘어가 오히려 위기를 겪는 모습을 그려놓아 경계하는 모습 또한 찾아볼 수 있는 동물이 토끼이다. 지혜로운 것은 좋으나 그것이 지나치면 오히려 해가 된다는 교훈을 여느 동물보다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토끼이다. 지금은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위기 속에 다들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토끼가 지닌 지혜로움이 필요한 시기이다. 위기를 지혜롭게 극복하는 것을 토끼 설화에서 배워갈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토끼 이야기에서는 교만함을 경계하는 내용도 아울러 이야기한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지혜롭게 대처하되, 그 지혜로움만 담아내고 교만함은 경계하는 한 해가 되길 기원한다.


글 | 권태효_민속연구과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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