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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이 소장한

화로, 그 따스함에 대하여

단풍꽃이 만개한 가을 사이로 찬바람이 섞여 온다. 저 잎 다 지고 나면 진짜 겨울이 올테지. ‘겨울’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니 아직은 조금의 거리가 느껴지는 추위에도 몸은 저절로 움추려드는 반응을 보인다. 그리고 자연스레 그리워지는 따스한 온기. 현재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은 이 따스함의 이미지를 무엇으로 떠올릴까?

요즘의 겨울은 예전에 비하면 덜 추운 거 같다. 물론 첨단의 기술로 난방시설은 물론 집을 짓는 노하우까지 엄청난 발전이 이루어져왔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한강은 항상 꽁꽁 얼었고, 학교는 또 왜 그리도 추웠던지. 중고등학교 시절 얇은 실내화 속으로 스며들던 그 냉기는 아직도 발끝에 느껴지는 듯하다. ‘조개탄’이라고 하는 석탄 덩어리를 때던 교실의 화로는 둘째 시간을 마치기도 전에 생을 마감해 버리니 하교 때까지 추위와 싸우는 것은 고스란히 내 몫이었다. 학교만 추웠던 것도 아니었다. 단독주택의 난방 대책도 초보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처럼 단열시공 기술이 보편화되기 전의 단독주택들은 아궁이 가열로만 따스한 온기를 방에 가득하게 채우기엔 역부족이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거실에 난로를 두거나 방에 화로를 들여 보조 역할을 하게 했다. 이렇게 겨울을 나던 우리네 집 실내공간에서 난로나 화로가 사라지게 된 것은 경제적인 풍족함도 이유가 되겠지만 가장 큰 배경은 아파트 문화의 도입과 일반화에 있다고 생각된다.

갓쟝이 | 기산 김준근

개항과 함께 빠르게 전파되었던 서양문물을 따라 우리가 살던 집들도 안팎으로 바쁜 변화의 시대를 겪어낸다. 서양식 집이라고 해서 우리 한옥에 대비되게 ‘양옥’이라 불리는 집들이 지어지고 좁은 국토에 많은 사람이 살기 위해 전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많은 아파트가 밀림처럼 도시를 빼곡히 덮어왔다. 그 사이에는 전통한옥의 맥을 시대에 맞춰 이어주는 개량한옥이나 도시형 한옥이라는 새로운 생명체들도 탄생했다. 짧은 기간 내에 나타난 현상에 비하면 그 앞서 긴 시간을 이어온 우리 전통 주거에서의 난방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우리네의 전통 난방 방식은 온돌이다. 아궁이에 불을 때면 생기는 뜨거운 연기가 연도를 따라 흘러가서 굴뚝에서 빨아내는 기류의 흐름을 타고 방 아래를 지나 방의 표면이 덥혀지는 원리다. 그리고 그 덥혀진 열기가 방 전체 공기를 따라 대류작용을 하면서 실내가 훈훈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예전 집들의 단열은 지금에 비한다면 거의 전무한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이에 대한 최소한의 대책은 기와집을 지을 때는 상부로 손실되는 열을 줄이고자 기와 아래에 흙을 두텁게 덥기도 했고, 초가는 이엉갈이를 할 때 상태가 온전한 볏짚은 그대로 두고 그 위에 새 볏단을 올려 지붕의 두께를 늘여 조금이라도 온기를 가두고자 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외기에 바로 노출되어 있는 벽체는 여러 겹으로 외장재를 발라도 시간이 지나면 기둥과 흙벽이 만나는 부분에 간격이 생기게 되고 이곳으로는 한겨울에 황소바람이 무섭게 넘나들었다. 그래서 실내 공기를 따습게 하기 위해 ‘화로’라고 하는 도구를 들이게 되었다.

 

우리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유물 중 ‘화로’라는 명칭이 붙어 있는 것은 100여 개가 조금 넘는다. 그 재료는 백동, 동, 철, 돌, 합금, 진흙, 도자기 등으로 다양하고 모양도 이에 버금가게 종류가 많다. 그러나 공통이 되는 것은 안에 숯을 넣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다. 용도는 난방이 우선이었고, 그 다음으로는 취사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실내에 두는 가재도구니 이왕이면 보기에도 좋고 그 속에 좋은 의미를 담는 문양을 넣었다. 작은 소품 하나에도 풍성한 길상의 의미를 새기는 것이 습성이 되어있던 우리 조상들의 감각과 감성은 화로에서도 똑같이 발현되었던 것이다. 화로의 바깥면은 물론이고 손잡이 다리까지도 우리 삶에 평안함과 건강이 함께 하기를 바라는 내용들을 새겨 넣었다. 그것은 그림이나 문자 등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되었으며, 화로에서 나오는 따뜻함과 함께 좋은 기운도 집안 곳곳에 퍼져나가기를 소망하였다. 그렇게 한다고 화로가 더 높은 열기를 내뿜지는 않았겠지만 밋밋한 것보다는 보는 이로 하여금 가족과 함께 더 나은 일상을 이어가고 싶은 꿈을 담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린 전통가옥에서의 겨울 생활을 화로와 함께 해왔다. 집의 뼈대를 이루는 구조체는 아니지만 사계절이 또렷한 자연을 가진 환경에서 화로는 우리의 겨울을 지키는 필수품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광경은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온 세월을 되돌아보았을 때 그리 멀지 않은 시간까지 함께 해왔었다. 정말 오래되지 않은 우리네 일상의 모습이었다. ‘귀를 에는 듯한 겨울 저녁, 직장에서 돌아오는 아버지를 맞이하는 것은 가족과 따스함을 전하는 방 가운데의 화로였다. 어머니는 시장한 남편을 위해 저녁상을 차려 들고 방으로 들어선다. 상을 내리고는 화로 위에 격자 모양으로 짜인 쇠판을 얹는다. 그러고는 찌개가 들어있는 뚝배기를 데우기 위해 화로에 올린다. 찌개가 보글보글 끓어오르면 방 아랫목 이불 속에 넣어두었던 밥그릇을 꺼낸다. 그리고 화로 덕에 따뜻해진 찌개를 나란히 옆에 올린다. 화로가 품어내는 은은한 따스함, 그리고 그 위에서 온기가 입혀진 국물이 아버지의 춥고 허기졌던 속내에 부드럽게 파고든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흔히 볼 수 있었던 장면이 아닌가?

물론 세상은 변한다. 그리고 그 속도는 시간이 지나면서 곱하기가 아닌 2제곱, 3제곱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 시간의 궤도 속에서 어떤 것은 사라지고 또 어떤 것들은 변하거나 새롭게 생겨난다. 사람에게서 멀어지는 것들은 언제인지 인식할 틈도 없이 생을 마감한다. 그래도 우리의 기억 한켠에 남겨두어야 할 것들은 있다고 생각된다. 따스했던 기억과 함께 화로도 그중의 하나가 되었으면 싶다. 겨울밤 화로를 가운데 두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그 열기에 가족의 정을 돈독하게 쌓던 모습은 이제 지나간 시절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모습이 되었다. 가스나 기름으로 집 전체를 덥히니 실내에서의 생활에서 ‘화로’라는 도구는 제 역할이 이미 퇴색해버린 장식품으로 존재할 뿐이다. 그러나 잠시라도 화로와 함께 했던 기억이 있는 이들에게는 마음 한켠에 따스함과 동시에 그 향내가 아련히 남아 있을 것이다. 잊지 않기 위해서 가슴에라도 품어야겠다.


글 | 박선주_어린이박물관과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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