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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담아듣는

옛사람들의 기복, 그리고 현대인들의 행복 찾기

피로한 동시대인들을 위한 힐링의 메시지
기나긴 코로나19 펜데믹과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정리해야 할 시간. “이번 겨울엔 기쁜 일만 생기면 좋을 텐데”라는 사람들의 마음을 반영하듯 국립민속박물관은 특별한 전시회를 마련했다. 어려웠던 시간에서 생긴 피로감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고 작은 응원을 보태기 위해 준비한 길상吉祥 특별전 《그 겨울의 행복》. 현대인들에게 조금은 생소한 ‘길상’은 ‘큰 재앙을 막고 복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번 특별전은 오늘날 행복을 비는 현대인들의 마음과 맞닿아 있는 선조들의 길상을 더듬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최은수 학예연구관의 총괄로 구성된 전시팀은 이주홍 학예연구사와 노윤경, 최유리 학예연구원이 기획을 맡고, 유민지 학예연구사와 한지혜, 이승은, 이은정 학예연구원이 디자인을 담당해 구슬땀을 흘렸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지친 사람들을 위해 희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우리의 전통적인 길상을 기반으로 행복에 대한 염원과 시대에 따른 관점의 변화를 조명함으로써 행복에 대한 공감대를 느껴보자는 의미를 담았죠.”
기획을 책임진 이주홍 학예연구사는 선조들이 염원했던 복과 현대인들이 추구하는 행복이 조금은 다른 의미가 곁들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소재와 이름만 달랐을 뿐 시간을 넘어 행복을 부여하는 과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며 좋은 일을 기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닮은 점이 많다고 설명한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 행복을 전시하다
전시회는 행복의 개념과 기복祈福에 관한 두 가지 시선으로부터 시작된다. 큰 운을 바라는 야망도 있겠지만 행복이란 예나 지금이나 소소한 순간에 찾아오는 것.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숲길을 걸을 때 느끼는 작은 행복의 순간을 1부에서 경험할 수 있다. 이주홍 학예연구사는 “그동안 전통과 현대를 연관 지은 전시를 많이 해왔기 때문에 이번 역시 길상의 현대적 의미를 전달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현대인들에게 길상의 의미가 생소한 데다 이를 현시점의 눈높이에 맞추어 해석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전문가들 역시 길상에 대한 관점이 분분해 어떤 주제를 정하고 이를 실현할지 전시 기획 단계에서부터 많은 고민을 거듭해야 했죠.” 라고 말하며 전시 기획단계의 고민을 얘기했다. 또한 노윤경 학예연구원은 “길상의 의미에 더해 겨울이라는 계절을 통해 메시지를 더 잘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의미를 두었다. 2부에서는 행복을 기원하는 옛사람들의 소품을 찾아볼 수 있다. 오래 살고, 입신양명하며, 부귀를 누리고, 다산을 기원하는 선조들의 바람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문갑, 그릇, 그림, 장신구 등의 문양에서 길상의 의미가 새겨져 있으며, 자개함에는 풍성한 포도 문양을 만들어 다산을 염원하기도 했다.
“과거 사람들은 오복 같은 가치 중심적인 것을 기원했어요. 장수를 가장 으뜸으로 여겼던 사실만 봐도 알 수 있죠. 평균 수명이 늘어난 현대에 이르러선 장수를 바라는 사람들의 의외로 많지 않아요. 마음의 건강이나 힐링 혹은 쉼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난 것을 보면 현대인들은 가치와 더불어 현재의 삶에 조금 더 충실하고 싶어 하는 것이죠.”
최유리 학예연구원은 과거의 가치와 현대의 정서를 함께 아우르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포근하고 따뜻한 전시 공간
전체적인 전시의 공간연출 방향을 잡아나간 유민지 학예연구사는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잠시나마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을 접하고, 잠깐의 쉼, 여유를 누릴 때라는 것을 착안해 전시공간디자인의 콘셉트를 정했다. “옛사람들이 길상을 새겨놓은 유물의 대부분은 생활용품이었기에 이를 담는 공간을 한옥의 채나 칸과 같은 일상공간의 방으로 한정시켰어요. 반대로 요즘 사람들이 길상을 얻는 공간은 비일상적인 공간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자연을 마주하고 잠시 쉴 수 있는 마당이나 정원과 같은 공간을 비중있게 연출했어요. 여기에 패브릭을 통과해서 나오는 보드랍고 은은한 조명, 낮은 높이의 벽체, 장모의 카펫 등 편안한 공간감을 더하고자 세심하게 조율했습니다. 마치 한옥의 소담한 중정에 들어오면 느끼는 포근하고 따뜻한 기운이 공간 전체에 감돌 수 있도록 말이죠. 전시를 보는 이 순간만큼은 모두에게 작은 행복이었으면 좋겠어요”
행복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정서를 반영한 쉼의 공간은 중앙 공간에 연출되어 있다. “가장 많은 고민이 녹아든 곳이 바로 이곳”이라며 공간을 연출한 한지혜 학예연구원이 말한다.
“관람객들에게 여유를 즐길 수 있게 해주고 싶었어요. 전시장 한가운데 설치된 행복의 정원은 전시실의 대략 4분의 1 정도를 차지하는데 그만큼 저희가 중요하게 생각했고 그 안에서 여러 체험을 할 수 있도록 꾸몄어요. 정원을 중심으로 유물이 있는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동선을 만들고, 사이사이 틈과 창문을 내어 유물을 관람하면서 동시에 정원을 감상할 수 있게 했습니다. 다양한 크기의 창문이 담아내는 흥미로운 풍경들은 전시를 관람하는 또 다른 재미요소예요.”
이러한 세심한 공간디자인은 좋은 메시지· 좋은 유물과 조화를 이루며 역시 민속박물관다운 훌륭한 전시라는 평을 받는 등 벌써부터 많은 사람에게 입소문을 타고 있다.

사색의 즐거움을 제공하는 행복의 정원
마치 숲속 한가운데 연못을 발견한 듯 눈 내리는 연못에 물고기가 헤엄쳐다니는 모습은 관람객들에게 잠시간의 사색을 돕는 아늑한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관람객들은 툇마루와 벤치에 앉아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행복의 정서를 느낄 수 있다. 영상을 담당한 이은정 학예연구원은 이곳이 관람객들의 소원이 성취되는 장소가 되기를 희망한다.
“행복의 정원 주변에는 길상을 체험하는 다양한 요소들이 배치되어 있어요. 새가 점괘를 뽑아 주는 새점을 보는 체험을 통해 관람객들이 자신의 길상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할 수 있도록 했죠. 출구를 나가기 직전 보름달을 바라보며 관람객들이 소원을 빌어보는 인터랙티브 영상 체험은 관람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어요.”
뿐만 아니라 행복의 정원에는 관람객들이 길상의 염원을 담아 직접 쌓아 볼 수 있는 작은 돌탑이 마련되어 있다. 돌탑은 길상 특별전의 상징이자 포스터의 오브제로 활용됐는데, 그래픽디자인을 맡은 이승은 학예연구원 역시 수많은 고민을 거듭하며 포스터 제작에 매진했다. “포스터는 전시팀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도구로써 역할을 해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번 전시는 제목에 ‘그/겨울/행복/길상’ 이라는 네 개의 키워드가 있어 모두를 충족시킬 수 있는 이미지를 찾는 것이 어려웠어요. 결과적으로는 행복을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길상을 ‘쌓는다’라는 콘셉트로 작업했죠. 쌓여진 이미지는 돌탑일 수도, 크리스마스 트리일 수도 있어요. 혹은 사람들이 염원하는 그 어떤 것들로 보여질 수 있길 바라요.”

‘별전’ 촉각전시물과 점자설명문

장애인도 공감하는 소소한 행복의 의미
이번 특별전이 더욱 의미를 갖는 것은 누구에게나 행복을 누려야 한다는 국립민속박물관의 의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과 장애인 등 문화취약계층 모두가 정성 들여 준비한 전시를 둘러보고 전시회의 공감과 감동을 느낄 수 있게끔 한 섬세한 배려가 눈에 띈다.
“전시장 입구에 일반 리플릿과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리플릿을 함께 제작해 나란히 배치했어요. 많은 내용을 담을 수는 없었지만 간단한 전시소개와 전시장의 공간구성을 촉지도로 포함시켰지요. 이는 예전에 비해 크게 개선된 점이자 민속박물관의 첫 시도로 충분히 의미가 있어요. 이밖에도 별전에 새겨진 길상무늬를 확대하여 제작한 촉각전시물과 점자설명문,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영상 등 보다 많은 사람이 전시를 즐길 수 있도록 했지요. 약시자들을 위해 만들어 비치한 대활자책자는 반응이 정말 좋았습니다.”
유민지 학예연구사는 특별전의 소재가 ‘행복’인 만큼 모든 관람객이 소외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우연히 특별전 개막일에 박물관으로 시각, 청각, 지체 장애인협회에서 오셔서 박물관을 둘러보고 자문을 구하는데 점자 리플릿을 보고 박물관의 이런 작은 노력마저 너무나 고맙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행복의 정원 옆에는 포스터의 소재가 된 돌탑이 전시되어 있다. 관람객들은 이 돌탑을 바라보며 행복의 사색에 젖을 수도 있고, 돌을 올려놓으며 소원을 빌 수도 있다. 내년 3월 2일까지 열리는 길상 특별전 《그 겨울의 행복》에는 이곳을 찾는 모든 이들의 소박한 소원들이 내년 봄에 피어날 새싹을 예고하며 움트고 있다.


글 |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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