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에서는 #3

각자의 색으로, 함께 채워가는 시간

지난 9월 28일, 조금은 희뿌연 하늘에도 오전부터 잠실 종합운동장의 체육공원 일대는 많은 사람으로 채워졌다. 이들은 ‘2022 서울시 발달장애인사생대회’를 준비하는 주최 측과 참여기관 측 인사들로 각각 맡은 이벤트 부스 운영을 준비하기 위해 모인 것이었다. 코로나19로 제한적이었던 지난 2년 동안 사생대회도 비대면 형식으로 진행되었으나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작품 현장접수 및 대면 행사 운영 방식으로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도 오랜만에 돌아온, 반가운 소란 피우기에 동참하여 ‘나만의 브로치 만들기’, ‘민화 액자 꾸미기’, ‘신나는 우리 민속놀이 체험’ 3개의 체험 부스를 운영하였다. 사생대회가 본격적으로 활기를 띠는 점심 이후부터 다행히 날이 개면서 현장에 밝은 분위기가 배가되었다. 일찍 작품을 접수한 참여자들은 부스를 적극적으로 방문하면서 체험활동을 즐겨주었다. ‘나만의 브로치 만들기’는 얇고 긴 한지를 돌돌 말아 원형으로 완성하고, 이를 조합해 브로치를 만들어 볼 수 있는 체험활동이었다. 꽤나 집중력이 필요한 활동이었는데 부스를 방문한 참여자들은 지루해하지 않고 끝까지 마무리하는 모습을 보였다. 같은 그리기 활동이라 살짝 염려되었던 ‘민화 액자 꾸미기’도 참여를 원하는 인원으로 성황이었고, ‘신나는 우리 민속놀이 체험’에서는 남녀노소 누구나 참가했던 치열한 딱지 배틀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천천히 담아가는 민속 문화 체험
사생대회 당일 운영했던 체험 부스 활동은 2022년 운영되었던 국립민속박물관 문화 나눔 교육 프로그램 중 3개를 선별하여 십여 분 동안 체험해 볼 수 있도록 간략화한 것이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중 장애인 및 문화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오감만족 박물관 나들이’, ‘찾아가는 우리 민속’, ‘내 마음속 문자도’는 참여자가 만들기나 체험활동으로 전통문화를 학습할 수 있는 단체 교육이다.‘오감만족 박물관 나들이’는 소장품과 연계한 만들기 교육, 탈춤과 같은 체험 활동, 양모·한지·옹기 공예 등 다채로운 교육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에서 소장품과 연계한 만들기 교육 프로그램은 유물에 대해 학습하고 손목쿠션을 색칠하여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 보는 활동이다. 시각자료를 통해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유물들의 모습을 본 뒤에 색칠하기를 진행하기 때문에 참여자들이 ‘무엇부터 해야 할지’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히 시작해 볼 수 있다. 더불어 색칠하기는 정교한 움직임을 요하지 않기 때문에 참여 문턱이 낮은데, 실제로 다양한 연령층이 참여하였다. ‘찾아가는 우리 민속’은 민속놀이와 봉산탈춤과 같이 활발한 신체활동을 하는 교육 프로그램과 한지·양모·닥종이 공예나 민화 그리기처럼 소근육 발달에 도움이 되는 교육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다. ‘찾아가는 우리 민속’은 각 교육 프로그램이 연속적으로 구성되었다는 특징이 있다. 교육이 진행되는 몇 주간 주기적으로 만나기 때문에 참여자는 강사님과 유대관계를 형성할 수 있고 이는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 수 있다.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수업에는 일반적으로 인솔자분들이 동반하여 질문을 대신해 주는 등 수업 진행에 도움을 준다. 그런데 ‘찾아가는 우리 민속’과 같이 반복적으로 만나는 수업의 경우 참여자가 강사님에게 직접 의사 표현을 하기도 하여 수월한 소통을 할 수도 있었다.‘내 마음속 문자도’는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교육으로 문자도를 학습하고 자신만의 문자도 병풍을 만들어 보는 교육이다. 문자도에서 활용되는 한자와 고사의 내용에 대해 학습한 뒤 탁상 달력 높이만한 미니 문자도 병풍을 만드는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 참여자는 수업을 들은 뒤, 실생활에서 쓰지 않고 생소할 수 있는 한자를 직접 그려보고, 관련 고사에 등장한 과일이나 식물·동물 이미지를 담은 스티커를 함께 붙여 각 폭의 병풍을 꾸민다. 비장애인에게도 어려운 한자와 내용, 유물에 대해 강의식 설명 이외에도 만들기를 통해서 체득할 수 있어 신청기관의 만족도가 높은 교육이다.

 

소리와 손끝으로 느끼는 우리 민속
국립민속박물관 문화 나눔 교육은 장애 유형을 세분화하여 맞춤형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중에서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은 ‘사계절 감각’과 ‘읽어주는 박물관’으로, 특히 청각과 촉각으로 우리 민속과 문화를 이해해 볼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사계절 감각’은 계절에 따라 달랐던 우리 민속 문화를 익히고 체험해 볼 수 있는 교육이다. 한 계절마다 2회로 수업을 구성하여 1회차에는 계절에 맞는 민요 배우기와 같이 청각에 집중한 활동을 하고, 2회차에는 각 계절에 어울리는 공예품 만들기와 같은 촉각에 집중한 활동을 한다. ‘읽어주는 박물관’은 촉각교구재 상자를 신청기관에 대여해주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상자 안에는 촉각교구재유물자료, 음성가이드가 담긴 USB와 해설문, 점자교재, 학습지도안이 들어있어 신청기관에서 자료를 참고하여 신청 기간 동안 자율적으로 수업을 진행할 수 있다. 음성 가이드는 촉각교구재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어떤 것인지 알려주는 것에 더해 어떻게 생겼으며 어떠한 방식으로 쓰였는지에 대한 설명을 추가하였고 효과음을 더해 현장감을 높이려 했다. 두 교육 모두 교육 대상층이 넓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로 교육에 참여했던 기관에서는 시각장애인 교육이 어린이나 학생에 초점을 맞춘 경우가 많은데, 국립민속박물관 시각장애인 대상 교육은 성인과 노년층이 즐길 수 있는 교육을 받을 수 있어 좋았다는 의견을 주었다.

알아가는 박물관, 밝혀가는 나의 꿈
청각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교육은 청소년 진로체험교육 ‘꿈을 두드리다’가 있다. 박물관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그 직업에 대해 탐구해 보는 교육으로, 학예업무 중 보존처리에 집중하여 알아본다. 이 교육에는 반드시 수화통역사가 동행하여 수업 진행에 도움을 준다. 일반 동시통역과 마찬가지로 강사님이 수업을 진행하고 수화통역을 병행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꿈을 두드리다’는 또래 친구들이 함께 받는 수업이다 보니 참여자들이 서로를 비교해 보는 광경이 자주 목격된다. 같이 참여한 친구들끼리도 비교해 보고, 심지어 강사에게 물어 전체 수강생과도 비교해보며 자신을 평가 받으려 하는, 굉장히 분주한 교육 현장이 펼쳐진다. 국립민속박물관 문화 나눔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같은 도안으로 체험 활동을 해도 각자 다른 결과물을 만드는 상황, 같은 프로그램 중에서도 서로 다른 회차에서 장점을 드러내는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비슷한 면이 11월에 공개된 2022 서울시 발달장애인사생대회 입선작에서도 보인다. 수성물감, 마스킹 테이프, 고무찰흙, 마카 등 각기 다른 재료를 활용한 점이 눈에 띈다. 참가자들은 같은 공간에서도 스스로 가장 잘 표현해 낼 수 있는 대상을 선정하고,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최선의 재료를 선택하여 서로 다른 결과물을 냈다. 문화 나눔 교육도 이처럼 장애인 및 문화소외계층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민속 문화를 체득하고 향유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그리고 다양한 곳에 계신 분들에게 닿을 수 있기를 바란다.


글 | 최정희_섭외교육과 학예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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