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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면

잊지 못할 시작과 끝나지 않을 미래의 공존 울산

울산. 전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힐 만큼 대단위 공업시설이 들어서 있는 도시. 제철부터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까지 중후장대산업이라 불리는 모든 것이 모여 있기에, 자칫 울산을 회색빛 도시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 안으로 조금만 더 들어서게 되면, 아주 오랫동안 이어져 온 한반도의 역사와 영원히 지속될 미래가 함께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공업입국의 모태와도 같은 곳
한국전쟁 이후 변변한 공장 하나 흔치 않던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발표되었다. 공업입국工業立國의 기치를 내걸고 농업국가에서 공업국가로의 혁신이 시작되던 그해, 「공업지구 조성을 위한 토지수용 특례법」이 제정되고 울산공업지구가 첫 대상지로 선정되었다. 동시에 울산지구 종합공업지대 조성 추진위원회 규정이 공포되었으며 울산특별건설국이 설치되었다. 통일신라 당시, 서라벌경주과 가까워 최대 무역항으로 손꼽혔던 역사가 되살아나는 순간이자 대한민국 중공업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시점이기도 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이렇게 급변하는 지역의 민속문화를 조사한 바 있다. 지난 2009년 남구 달동마을과 북구 제전마을에 대해 촬영, 인터뷰, 생활가옥 도면 제작 등을 진행해 모두 디지털 자료로 보관 중이다. 특히 주민들로부터 채록한 예전 생활상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들은 삶의 공간으로서 울산의 모습을 생생히 증언하고 있어 그 가치가 높다.

물론 개인 혹은 몇몇의 여행자들이 그런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는 없는 일. 만약 여행자 입장에서 좀 더 깊이 있는 울산을 느끼고 싶다면 울산박물관을 첫 번째 목적지로 삼는 게 좋다. 울산박물관은 기획전시실과 어린이박물관으로 구성된 1층, 산업전시실과 체험관으로 꾸며진 2층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특히 지역 문화재를 발굴하고 전시하는 데에 집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울산역사관의 경우 선사시대 때부터 1962년 공업지구 선정까지의 울산 역사를 한눈에 확인하게끔 설계돼 있어 이곳이 지역 박물관으로서의 역할에 얼마나 충실한지 어렵지 않게 가늠할 수 있다. 무엇보다 울산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반구대 암각화를 정교하게 본뜬 모형이, 이곳을 찾는 보람을 느끼게 해주고 있으니 울산에서의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꼭 들르는 게 좋겠다.

울산박물관

여전히 고래가 살아 있는 바다
울산은 고래와의 인연이 깊다. 앞서 언급한 반구대 암각화를 통해 석기시대 무렵부터 울산에서 고래잡이가 성행했음을 알 수 있을 정도. 그리고 1899년에는 러시아의 태평양 포경기지로 울산의 장생포를 지정한 후 고래잡이가 포경이라는 이름의 산업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러시아가 장생포에서 계획했던 고래 해체 작업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러시아의 자산인 태평양어업주식회사 장생포 기지도 자신의 것으로 삼았다. 러시아보다 더 많은 고래를 잡고 있던 일본의 포경 회사들은 장생포에 앞다투어 진출했고 사람들도 몰리기 시작했다. 해방 이후에도 포경은 장생포뿐만 아니라 울산의 대표적인 산업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1982년 7월 국제포경위원회의 제34차 총회에서 상업포경을 전면 금지하면서 “좋았던 시절”은 막을 내린다.

하지만 장생포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 장생포고래박물관, 고래생태체험관, 고래문화마을 등을 통해 고래 그리고 그 고래와 함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체험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이중 가장 눈길을 끄는 곳은 지난 2015년 준공된 고래문화마을이다. 고래문화마을은 약 5,000명에 달하는 인구로 북적거리던 60~70년대 장생포의 모습을 재현해놓은 공간. 당시의 거리 풍경뿐만 아니라 다양한 소품과 의상, 가전과 가구 등의 생생한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물론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들만 준비돼 있는 것은 아니다. 고래 해체 작업을 하던 광경도 재현해놓은 덕분에 과거 장생포만의 풍경을 떠올리는 데에 상당한 도움을 준다.고래문화마을의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실제 모델이었던 탐험가 로이 채프먼 앤드루스의 집을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 1912년, 그가 이곳 장생포에서 한국계 귀신고래의 존재를 발견하고 학계에 발표한 공로를 기리기 위함이란다. 그가 한국계 귀신고래를 연구하며 남긴 다양한 자료들은 지금도 미국 자연사박물관에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다고 하니, 장생포가 생태학적으로 갖는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바다 그리고 강, 울산의 모든 것
울산의 바다를 좀 더 극적으로 느껴 보고 싶다면 대왕암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울산에서도 동해로 한발 더 나아간 반도 형태의 동구에 위치한 대왕암은, 문무대왕비 자의왕후가 묻힌 곳이라는 전설이 내려온다. 문무대왕이 ‘죽어서도 용이 되어 왜구를 막겠다’라는 일념으로 동해바다에 수장되었다고 했던 것처럼, 그의 아내 자의왕후 역시 남편의 뜻을 따라 왜구를 막기 위해 울산 바다에 수장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 다만 문무대왕의 경우 수장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는 반면 이곳에는 그저 구전만 이어질 뿐이다. 하지만 짙푸른 동해바다에 솟아 있는 바위섬이라는 공통점, 그리고 바위섬 밑에서만 유독 해조가 자라지 않는다는 신비로움 때문에 입에서 입으로 오랫동안 전해진 이야기는 상당한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 그런 대왕암까지 다리가 놓여 있어 일부러 이곳을 찾는 이들의 감회를 새롭게 하고 있다. 2023년부터는 유료로 전환되는 흔들다리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명소. 이런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태화강은, 울산 시민들에게 있어 더없이 특별한 존재. 물론 도시가 있는 곳에 큰물이 흐르는 것이야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지만, 태화강이 한때 “죽음의 강”으로 손꼽히던 곳이라는 사실을 아는 젊은 세대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앞서 설명했던 것처럼 울산은 대한민국 공업화의 선두기지였다. 그런 이유로 그 부작용 역시 어느 곳보다 빠르게 그리고 심각하게 겪을 수밖에 없었다. 공장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각종 오폐수가 모두 태화강으로 모여들었고, 당연히 강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생명체는 거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태화강에서 물고기를, 새를, 너구리 같은 야생동물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울산 시민은 거의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하지만 빗물과 폐수를 분리처리하는 하수관거사업을 대대적으로 진행하자 사정이 달라졌다. 수질측정의 지표인 생화학적산소요구량BOD의 경우, 1996년 11.3ppm으로 6급수 수준이었지만 20년 후인 2016년에는 0.7ppm으로 1급수 수준까지 향상되었다. 덕분에 지금은 연어와 은어가 헤엄치고 고니와 수달이 발견되는 생명의 강으로 변모했다. 그리고 지난 2019년에는 순천만에 이어 두 번째 국가정원으로 지정되는 “태화강의 기적”이 완성되었다.

 

이렇게 다양한 변화가 있던 울산이지만, 오랫동안 변치 않는 것들도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음식인데, 특히 울산의 외곽 언양에서 만나는 소고기 요리들이 그러하다. 전국 3대 불고기로 서울식, 광양식 그리고 언양식을 꼽을 정도로 언양의 소고기 요리는 정평이 나 있다. 그리고 요즘처럼 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할 무렵에는 소머리를 푹 고아낸 소머리국밥만큼 좋은 메뉴도 없다. 영남 알프스의 시작점이라는 의미가 담긴 언양알프스시장에서는 이러한 소머리국밥을 특히 더 다채롭게 경험할 수 있다. 모두 오랫동안 그 자리에서 영업을 해온 곳들. 잡내 없이 녹진하게 고아낸 국물에, 아낌없이 썰어 넣은 소머리고기는 울산의 이곳저곳을 돌아보느라 피곤해진 여행자의 몸에 새로운 힘을 불어넣는다. 새롭고 힘차게 모든 것을 바꾸어 온 울산의 에너지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글 | 정환정_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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