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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서는 #1

고려인 사진 기증 특별전 《까레이치, 고려사람》

국립민속박물관은 대한민국과 우즈베키스탄 및 카자흐스탄 간의 수교 30주년을 맞이하여, 사진작가 빅토르 안Виктор Ан이 기증한 중앙아시아 고려인의 일상 사진 352점을 바탕으로 지난 9월 7일부터 특별전 《까레이치, 고려사람》을 열었다. 11월 7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에서는 지난 세기, 거대한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중앙아시아의 낯선 땅에 흩뿌려진 한민족 동포들이 정착과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해 온 일상의 흔적을 그리고 있다. 전시된 60여 점의 사진에 표현된 고려인의 일상에서는 이국적인 현지의 주류 문화와 고려인 공동체가 유지해 온 오랜 전통, 그리고 멀리 떨어진 조국의 영향들 사이에서 중첩된 정체성을 형성해 온 고려인의 자화상을 발견할 수 있다.

고려인의 삶을 포착한 사진작가, 빅토르 안
빅토르 안은 우즈베키스탄 국적의 고려인 사진작가이다. 그는 소련 시절이던 1978년부터 고려인을 위한 민족어 신문 《레닌기치Ленин киӌи》에서 사진기자로 일하며 작가로서 활동을 시작, 마찬가지로 민족어 신문인 《고려일보Корё ильбо》를 거치며 중앙아시아를 비롯한 구소련 지역 고려인의 역사와 생활상을 주제로 사진 작업을 해 오고 있다.

사진작가는 자신만의 언어, 스타일, 테마를 찾아야 합니다. 저는 80년대 중반쯤, 고려인 주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내가 아니면 누가 이 일을 할 것인가 생각이 들었고, 그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 빅토르 안

고려인의 시점으로, 고려인의 삶과 역사를 포착한 그의 작품들은 한민족 디아스포라 연구에 유용한 자료라는 점은 물론, 지금껏 국내 어디에도 기증·소장된 바 없는 희소한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이를 높이 평가하여 <재외한인동포 생활문화조사: 중앙아시아> 사업의 일환으로 지난 2022년 5월 빅토르 안으로부터 352점의 사진을 기증받게 되었다.

 

1937년, 정든 땅을 떠나 저 멀리로
“1937년 원동(연해주)에서 들어 올 적에 화물 기차로 한 달 동안 왔어요. 옥수수는 다 말랐었고, 감자는 수확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닭도 잡았지, 돼지도 잡았지. 찰떡을 쳐서 큰 그릇에, 닭이랑 돼지고기랑 삶아서 기차를 탔어요. 한 칸에 다섯 가족이 타고 있었어요.” -김 베라(1930년생)

1931년 일본이 만주를 침략하면서 소련과 일본 사이에 군사적 긴장감이 고조됐다. 당시 소련 당국은 일본인과 외모상 구별이 되지 않는 연해주의 조선인들 사이에 일본의 첩자가 숨어 있을 것이라는 의심을 하고 있었다. 1937년에 이르러 소련 당국은 전격적으로 연해주에 정착한 조선인 전체를 일시에 멀리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이주시키는 정책을 단행했다. 이에 연해주의 조선인들은 화물칸에 짐작처럼 실려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따라 저 멀리 중앙아시아의 평원 지역에 흩뿌려졌다. 이것이 오늘날 고려인이라고 불리는 공동체의 역사적 기원이다.

 

익숙한 듯 낯선 고려인 문화
전시는 ‘일생의례’, ‘세시’, ‘음식’, ‘주거’ 등 민속 분야에서 익숙하게 사용되어 온 키워드로, 9개의 섹션으로 나누어 고려인의 생활문화를 보여준다. 이 사진들이 전달하는 공통적인 인상은 익숙함과 낯섦이라는 모순적인 감상이 공존한다는 점이다. 이는 고려인의 생활상이 여러 문화에 기원을 둔 다양한 삶의 양식들을 자원으로, 상황과 환경에 맞춰 재구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기원한 함경도를 비롯한 한반도 동북지역의 전통과, 과거 소련 시절의 민족 정책으로 크게 영향을 받은 러시아 문화, 그리고 우즈베크 족이나 카자흐 족 등 주변 민족들, 그리고 현지의 자연환경 등 다양한 문화적 자원과 요인들의 상호작용이 오늘의 고려인 문화를 만든 것이다. 우리가 고려인의 생활상에서 익숙한 듯 낯선 인상을 받는 것은 우리와 같은 전통문화를 바탕으로 어떤 공통점을 찾아낼 수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는 대단히 다른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고려사람’이라는 정체성
소련 시절 이래로 중앙아시아에서 널리 통용되는 러시아어에서는 한국인도, 조선인도, 고려인도 모두 ‘까레이치Корейцы’이다.1) 영어의 ‘코리안Korean’처럼 러시아어에서 이들의 구분은 모호하다. 그에 반해 고려인들은 스스로를 ‘고려사람Корё сарам’이라고 말한다. ‘고려사람’이라는 표현을 쓴다는 것은 고려인들이 그들 조상처럼 연해주의 조선인도 아니고, 멀리 떨어진 조국의 한국인과는 구별되는 어떤 다른 범주의 공동체라고 인식한다는 의미이다. 이 고려인 공동체를 떠받치는 것은 분명 이역만리 중앙아시아의 낯선 땅에 끌려와 생존과 정착을 위해 세대를 거듭하며 고군분투해 온 기억이다. 그것은 과거의 조선인도, 오늘날의 한국인도 갖지 않은 고려인만의 경험인 것이다.

옛날에 고려인들은 자신들의 민족적 정체성을 부끄러워했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 우리는 친구들과 하늘 아래 우리들의 자리와 권리를 주먹으로 쟁취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빅토르 안

전시에 공개된 사진에서 발견되는, 한민족의 전통과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여러 민족의 문화가 융합된 생활상은 고단한 이주와 정착의 서사가 만들어 낸 다채로운 증거이다.

1) 잘 알려진 러시아어 ‘까레이스키(Коре́йский)’는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한국의’와 같은 것으로 사람을 지칭하는 데 쓰이지는 않는다.


글 | 최효찬_전시운영과 학예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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