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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서는 #3

더 많은, 더 다양한 우영우를 위한 박물관

최근 종영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주인공 영우가 로펌의 신입 변호사로 취직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시청자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전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필자도 매주 새로운 회차를 기다리며 시청하였는데, 머릿속에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바로 1화 속 주인공 영우가 첫 출근 날 마주하게 되는 ‘회전문’ 장면이다. 회전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영우에게 직장 동료인 준호는 거리낌 없이 도움의 손길을 건네며 이렇게 말한다. “아, 문이 너무 힘들게 돼 있죠?” 이 가벼운 한 문장의 질문에는 묵직한 의미를 내포한다. 이 말은 곧 영우가 조금 부족한 모습을 보인다고 해서 영우에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처럼 사회의 소수 구성원으로서 어쩔 수 없이 가져야만 하는 우영우의 ‘어려움’을 상징하는 장치였던 회전문, 이를 보며 우리 박물관 속 ‘회전문’과 같은 어려운 제약들은 없는지, 사회적 약자들을 맞이하기 위해 어때야 하는지 다시금 생각해봤다.

시각장애인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상설전시관2 《한국인의 일 년》, 상설전시관3 《한국인의 일생》
전시展示 관람은 시각이 중시되기 마련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관람 방식에서 가장 소외되는 관람객은 단연 시각장애를 가진 관람객일 것이다. 그렇다면 시각장애인은 기존의 박물관 전시 관람에서 무엇을 경험 할 수 있었을까? 장애인과 비장애인 관람객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전시 관람하는 경험은 가능했을까? 쉽사리 대답할 수 없다. 이에 필자는 2021년 상설전시관2 《한국인의 일 년》 재개관을 준비하면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패널, 촉지도, 촉각 전시물, 대활자 책자 등 새로운 전시기법을 도입했다. 이는 주로 시각장애인을 위해 특별히 기획된 전시나 일부 자투리 코너에서나 적용되었었다. 그러나 상설전시관에 고정 적용한 사례는 국내 처음으로, 개관 이후 큰 주목을 받았다. 전시관 입구에서부터 점자 패널과 촉지도를 배치하여 전시의 전반적인 내용과 공간 구성, 배치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여 시각장애인의 능동적이고 편안한 관람을 도모하였다. 그리고 각 계절이 변화하는 지점1)에서 연속적으로 등장하여 시간의 흐름에 따른 체험뿐만 아니라 공간의 흐름을 따라가는 신체의 이동도 경험적 측면에서 체험하도록 하였다. 아울러 ‘고써레’, ‘키’ 등 쉽게 만질 수 없는 전시품들을 3D 프린팅 기법으로 제작한 촉각 전시물과 점자 설명을 배치해 누구든 직접 손으로 만지고 느끼는 전시 관람이 가능케 하였다. 이 밖에도 저시력자를 위한 대활자 책자를 제작하여 비치했다. 주요 전시품의 설명과 사진을 크게 인쇄한 대활자 책자는 촉각 전시물과 함께 일반 관람객에게도 큰 도움을 주고 있어 모두를 위한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특히 ‘함께’ 즐기는 전시 관람을 위해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 관람객이 동등한 경험을 해야 하는 점을 강조하고자 했다. 그에 따라 《한국인의 일 년》에서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모든 전시 설치물이 비장애인 관람객의 동선과 동일한 곳에 설치되었다. 4개 국어 문자 패널 바로 아래에 점자 패널과 촉지도를 두었고, 촉각 전시물도 그에 해당하는 전시품 바로 앞에 두었다. 이는 시각장애인과 동행한 비장애인 관람객이 전시품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누며 경험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의미하다. 상설전시관2를 뒤이어 새롭게 개편한 상설전시관3 《한국인의 일생》에서도 이 같은 내용이 적용된 것을 볼 수 있다.

 

모두를 위한 디자인, 유니버설디자인과 박물관
시각장애인에서 나아가 더욱 폭넓은 관람객을 위한 박물관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유니버설디자인Universal Design에 대해 논할 필요가 있다. ‘모든 사람을 위한 디자인Design for All’을 말하는 유니버설디자인2)은 성별, 연령, 국적, 문화적 배경, 장애 유무 등에 관계없이 누구나 사용하기 편리한 제품, 시설, 환경, 서비스 등을 디자인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다양성과 포용성을 추구하는 디자인이다. 다양한 관람객을 포용하기 위한 박물관의 노력은 일찍이 있어 왔고, 실제 우리 주변의 박물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박물관 시설 접근성Accessibility을 높이기 위해 전시관 내 관람환경 조성에 있어 장애요소가 없도록 한 점을 들 수 있다. 휠체어나 유모차 사용자, 노년층을 포함한 보행 약자의 편한 이동을 위해 통로 폭과 구조의 밀도를 조절하고, 불필요한 단차는 없애거나 최소화하였다. 진열장과 전시대의 형태와 높이, 설명패널의 문자 글꼴과 크기, 설치 높이 등 모두에게 편안한 관람 경험이 되도록 매 전시마다 고려하였으며, 노약자나 임산부 등 관람객들이 쉬어갈 수 있는 의자나 휴식 공간을 곳곳에 조성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처럼 유니버설디자인은 사람관람객이라는 가치를 중심에 두고 생활에서 느끼는 작은 불편들을 조금씩 해결하고 배려해가는 과정 일체를 의미한다. 다른 사례를 하나 더 소개한다면 바로 상설전시관2 《한국인의 일 년》의 진열장 안에 적용된 알록달록한 색 번호이다. 많은 수와 다양한 종류의 전시품이 전시되는 박물관에서는 전시품과 레이블설명문의 직관적인 연결이 중요하다. 그리고 동시에 전시디자인을 해치지 말아야 하는데 이 절충안을 찾기란 쉽지 않다. 《한국인의 일 년》은 전시품 옆에 각기 다른 색의 번호표를 놓고, 동일한 색의 번호를 레이블에 기재함으로써 빠른 인지가 어려운 저시력자와 노년층, 비장애인 관람객까지도 전시품의 이름과 정보를 한눈에 찾아볼 수 있도록 고려하여 디자인했다. 2021년 7월에 개관한 국립민속박물관 파주도 유니버설디자인이 적용된 곳이다. 특히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BF, Barrier Free 우수건물 인증3)을 받았다. 박물관 출입구가 인도에서 평지로 연결돼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며, 안내데스크는 휠체어 이용자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높이를 낮추고 무릎 부위가 데스크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디자인됐다. 모든 실명 사인에는 점자를 병기했으며, 직관적인 이해를 위한 픽토그램그림문자 사용을 우선시하는 등 박물관 관람 편의성과 접근성을 높이는 다양한 노력을 했다. 앞으로는 박물관의 전시시설과 편의시설, 박물관에서 사용되는 제품 등 공간과 환경, 전시콘텐츠, 교육프로그램, 홈페이지와 같은 박물관의 다양한 서비스에 유니버설디자인이 다각도로 적용되어 더욱 많은 관람객이 언제든지 찾아와 거리낌 없이 박물관을 이용하고 주도적으로 활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전 세계 박물관의 새로운 움직임
얼마 전 프라하에서 열렸던 2022 ICOM 세계박물관대회에서 ‘박물관의 새로운 정의’가 채택되었다. 시대의 변화에 맞춰 15년 만에 채택된 새로운 정의는 기존의 정의에 박물관의 접근성과 포용성, 다양성 및 지속가능성 등의 개념을 추가하였으며 공동체의 참여와 윤리적, 전문적인 소통의 중요성을 나타내었다. 다양한 관람객을 맞이하기 위한 박물관의 노력은 이젠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세계의 여러 박물관은 장애인, 어린이, 고령자 등 지금껏 소외되어 온 문화취약계층을 포용하고, 박물관의 새로운 경험을 확장해 나가기 위한 여러 시도가 점진적으로 확대될 것이라 생각한다. 박물관에는 아직 수많은 ‘회전문’이 남아있다. 영우의 장애물이었던 회전문을 없애기보다 모두 함께 이용할 수 있도록 바꾸어 나가는 건 어떨까. 더 많은 더 다양한 우영우들이 박물관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발로 걷고, 손을 놀리며, 귀로 듣고, 눈으로 보며, 냄새 맡는 그러한 소소한 박물관 경험들을 다 함께 즐기고 누릴 수 있도록, 실질적인 문턱을 없애고, 마음의 단차를 낮추는 우리의 노력과 공감이 더욱 필요한 때이다.

1) 《한국인의 일 년》은 조상들의 일 년 생활과 세시풍속을 4계절로 나누어 살펴보는 전시로, 이를 위한 전시디자인은 <정월>,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시간의 흐름을 큰 축으로 계절별 다양한 공감각적 체험을 경험하도록 하였다. 미국의 건축가이자 미국 유니버설디자인센터 소장을 역임한 로널드 메이스(Ronald L. Mace, 1942~1998)에 의해 제시된 용어이다. 영국 등 일부 유럽에서는 인클루시브 디자인(Inclusive Design)으로 불리기도 한다.
2) 《한국인의 일 년》은 조상들의 일 년 생활과 세시풍속을 4계절로 나누어 살펴보는 전시로, 이를 위한 전시디자인은 <정월>,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시간의 흐름을 큰 축으로 계절별 다양한 공감각적 체험을 경험하도록 하였다. 미국의 건축가이자 미국 유니버설디자인센터 소장을 역임한 로널드 메이스(Ronald L. Mace, 1942~1998)에 의해 제시된 용어이다. 영국 등 일부 유럽에서는 인클루시브 디자인(Inclusive Design)으로 불리기도 한다.
3) 2022년 9월 말 기준으로 BF 본 인증을 받은 국립 박물관(미술관 포함) 시설은 국립민속박물관 파주와, 국립한글박물관, 국립항공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등 7개 시설에 불과하다.


글 | 유민지_전시운영과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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