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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면

남쪽 바다 한가운데로의 첫걸음이 되어주는 곳 남해

한반도의 남쪽 바다는 다도해라는 별명을 갖고 있을 정도로 많은 섬을 거느리고 있다. 그 숫자를 모두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섬 중, 유일하게 바다를 상징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은 곳이 있다. 사천과 하동으로부터 닿을 수 있는 남해가 바로 그곳. 신라 경덕왕 때부터 남해라 불리던 이곳에는, 남해안에서 만날 수 있는 모든 것이 응축돼 있다.

사라지지 않는 바다 위의 역사
제주, 거제, 강화에 이어 네 번째로 큰 섬 남해. 정확히 말하자면 남해도와 창선도 두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곳이다. 남해도는 하동, 창선도는 사천과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데 남해도의 왼편에 있는 여수와도 지척이다. 지난 2012년 여수 엑스포 기간 동안 남해도와 여수를 오가는 정기 여객선이 취항했던 것도 그 거리가 워낙 가까웠기 때문이다. 이런 지리적 환경 때문에 남해 사람들의 방언에서는 전라남도 방언의 흔적이 적잖게 발견되기도 하는데, 이는 남해가 남해안 지역의 허브로서 어느 정도의 상징성을 갖고 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런 남해에 사람이 살기 시작했던 것은 청동기 시대 때부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신라 신문왕 10년 기록에 등장한 데 이어,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경덕왕 16년에 남해로의 개칭이 이루어진 기록이 발견되었다. 그 이후 남해에 대한 특별한 기록 혹은 언급은 그리 많지 않았다. 먼 옛날 멸치가, 조선시대에 이후 마늘이, 수십 년 전부터는 시금치가 유명한 전형적인 도서 지역의 모습으로 기록돼 오고 있다. 하지만 남해가 이런 전형적인 모습과 평화로운 역사만으로 채워진 곳은 아니다. 한민족이라면 가슴이 아릴 수밖에 없는 비극적인 역사의 기록도 남해에서 만날 수 있다. 충무공忠武公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노량해전의 전장이 바로 남해와 하동 사이 좁은 바다였다. 그런 역사의 현장을 조망하기 가장 좋은 곳은 남해 충렬사. 사적 제233호이기도 한 이곳은, 이순신 장군의 유해를 최초 안치했던 곳이기도 하다. 이후 아산 현충사로 이장했지만, 당시 조성했던 가분묘는 지금도 남아 있으니, 하동 쪽에서 남해로의 진입을 계획한다면 꼭 한 번 들러볼 만하다.

새로 만들어진 마을로부터의 초대
절경이 이어지는 해안도로, 윤슬이 빛나는 푸른 바다, 티 없이 청정한 하늘 등 남해는 오랫동안 ‘보물섬’이라는 타이틀에 걸맞는 풍경을 자랑해 왔다. 덕분에 지금은 육지와 남해를 잇는 두 개의 다리가 차들로 가득 차기 일쑤이다. 그리고 그 차들의 대부분은 독일마을을 목적지 혹은 경유지로 삼고 있다. 외화 획득을 위해 독일로 떠났던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이 고국에 돌아와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마을이 조성된 것은 지난 2001년. 당시 최초 지어진 주택들은 독일식 건축방식과 독일산 수입자재를 사용했다고 한다. 이제 막 이주한 주민들은 독일에서부터 가져온 소품들을 이용해 집 내외부를 꾸몄던 덕분에 언덕배기를 따라 늘어선 집들은 하나 같이 이국적 정취가 가득했다. 독일마을이라는 이름에 더없이 잘 어울리는 풍경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독일마을은 전국 유일의 유럽풍 테마파크라 해도 크게 무리가 없을 정도. 이곳의 건물들은 대부분 카페나 식당 혹은 펜션 등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남해로 향하는 여행객들의 대다수가 반드시 이곳을 들르기 때문이다. 덕분에 흥겨운 분위기의 독일 시골 마을과 같은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것이 장점이지만, 원래의 취지가 사라진 마을이라는 비판도 공존하고 있다. 다만 언덕 정상에 마련된 파독전시관에서는, 왜 그렇게 많은 이들이 돈을 벌기 위해 독일까지 가야 했는지, 그리고 독일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자세히 알려주고 있으니 꼼꼼히 둘러볼 가치가 있다.

 

바람을 막고 물고기를 들이는 숲
파독전시관의 전시를 감상하고 나오면, 남동쪽으로 펼쳐진 바다의 시작점에 긴 가로수길이 내려다 보인다. 남해를 상징하는 장소 중 한 곳인 물건리 방조어부림이다. 물건리 방조어부림. 낯선 조합의 단어들. 하지만 떼어놓고 보면 이해가 어렵지는 않다. 남해군 상동면 물건리에 위치한 방조어부림이라는 뜻. 방조어부림 역시 조각을 낼 수 있다. 방조防潮는 파도를 막고 어부魚付는 물고기를 불러들인다는 뜻. 다시 말해, 바닷가의 생활을 조금이라도 안정적으로 영위하기 위한 숲이라는 말이다. 물론, 사람들이 직접 조성한 인공림이다. 기록에 따르면 약 300여 년 전, 전주 이씨 후손들이 이곳에 정착하며 나무를 심어 가꾼 것이 지금에 이른다 한다. 물건리 방조어부림을 구성하고 있는 나무들은 팽나무, 푸조나무, 참느릅나무, 말채나무,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이팝나무, 무환자나무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한 가지 공통점이라면, 한반도에서 가장 온난한 기후를 보이는 곳답게 모두 낙엽활엽수라는 사실. 물론 후박나무 같은 상록수도 있는데, 이 역시 남쪽에서만 볼 수 있는 나무이다. 도시에서 나고 자랐던 사람들에게는 이런 낯선 이름의 나무들이 재미있어 보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나무들 사이로 난 길은 더더욱 그렇다. 파도와 바람을 막고, 나무 그늘 아래 더 많은 물고기가 모이도록 만들어 놓은 숲은, 이제 그 어느 곳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찾기 힘든 탐방로를 품고 있다. 이미 1962년 천연기념물 제150호로 지정되면서 원래의 용도로 사용하기보다는 보존과 함께 그 가치를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기 위한 조치였다. 첫 탐방로는 숲 사이 오솔길이었지만, 땅에서 자라는 식물을 조금이라도 더 보호하기 위해 긴 데크를 설치해 사람의 발걸음으로부터 숲을 최대한 보호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노력은, 그곳을 걷는 즐거움을 한층 깊게 만들어준다.

진하게 기억되는 남해의 정취
남해에서의 기억을 향과 맛으로 남기고 싶다면, 멸치가 가장 좋은 선택이다. 창선도와 남해도 사이의 지족항 인근에는 특히 멸치 요리를 내놓는 음식점들이 많은데, 메뉴는 대동소이하다. 멸치쌈밥과 회무침, 그리고 멸치구이. 당연히 모두 남해에서 잡히는 멸치들로 만든다. 생멸치의 경우 보관성이 좋지 않아 다른 곳에서 나는 멸치를 옮기는 게 힘들기 때문. 멸치쌈밥은 김치찜에 멸치를 넣었다고 생각하면 큰 무리가 없다. 회무침은 꼬막이나 바지락 회무침을 떠올리면 이해가 빠를 테고. 사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구이다. 석쇠에 노릇하게 구워 고운 소금을 솔솔 뿌린 멸치의 감칠맛과 고소함은 뭐라 할 수 없을 만큼 각별하다. 그동안 밑반찬 혹은 국물 내기 등 식사와 요리의 조연으로 사용하던 멸치가 이만큼이나 화려하다는 사실을 새롭게 일깨워주는 메뉴들이니 일부러 한 번 맛보는 게 여행을 마무리하는 데에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바다 한가운데로 내딛었던 발자국을 거둬들여 다시 먼 길을 달리는 데에 큰 힘이 되어줄 테니까.


글 | 정환정_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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