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민속박물관이 야심차게 마련한 특별기획전 ‘한 여름밤, 신들의 꿈’. 증강현실(AR), 프로젝션 맵핑 등 실감나는 장치와 친절한 서사구조로 우리 전통문화 속 신들의 이야기를 알기 쉽게 들려주고 있다. 관람객들로부터 연일 호평을 받으며 성공적인 전시회를 이끌어내기까지 구슬땀을 흘리며 고군분투한 전시담당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민속박물관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신들의 이야기
“신비롭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풀어보자는 취지로 특별전 소재를 ‘신’으로 삼았습니다. 여름에 맞춰 사람들이 관심을 끌기에도 안성맞춤이고, 마침 신에 대한 연구도 많이 축적해놓은 상태라 재미나고 판타스틱한 분위기를 연출해보기로 했어요. 다른 박물관에서 시도하지 못하는 주제와 방식으로 현장감을 살려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정연학 학예연구관은 이번 특별전의 총괄팀장을 맡았다. 특별전을 위해 참여한 전시담당자는 모두 7명. 각자 전문성을 살려 기획, 디자인, 영상 등 여러 파트에 참여해 전시회의 완성도를 한껏 높였다. 그중에서 오아란 학예연구사는 전체 기획을 맡았다. “전시회를 준비할 때 가장 먼저 기획팀이 전시의 큰 방향과 틀을 설정해요. 그러면 영상, 디자인, 홍보 파트에서 정해진 주제에 맞춰 시나리오에 무엇을 담고 어떻게 내용이 흘러가면 좋을지 각자 콘텐츠에 반영하는 작업을 합니다. 큰 틀에서부터 하나하나 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여러 파트가 매우 유기적이고 복잡한 프로세스를 거쳐 특별전을 준비했어요.” ‘한 여름밤, 신들의 꿈’은 한 마을이라는 공간을 설정하고 그 속에서 사는 신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눈에 보이는 유물을 전시하는 것과 달리 가상의 신을 보여주는 이번 특별전에서는 무엇보다 여러 시각적 장치들이 동원됐다. 기획을 맡은 김은혜 학예연구원은 이번 전시회를 위해 여름 내내 구슬땀을 흘렸다. “AR을 시도하면서 관람객들이 제대로 이용하실 수 있을까, 살짝 걱정했어요. 전시장입구에서 QR을 안내해드리고 사용법을 알려드리니까 많은 분이 무리 없이 AR체험을 하고 계시더라고요. 어린 아이부터 어르신들까지 다양한 세대가 특별전을 찾아주셨고, 그 분들이 스마트폰 앱을 통해 신의 대한 설명을 하나하나 챙겨 보시는 모습을 보며 관람객들의 전시 만족도를 한층 끌어올릴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획, 디자인, 영상, 홍보의 완벽한 하모니
‘신’이라는 소재는 시각적인 도구를 활용한 전시에 잘 어울린다. 유물 위주의 기존 전시와 달리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의 모습을 형상화하기에 영상매체가 더없이 훌륭한 도구가 되었던 것. 음침한 분위기의 버스정류장에서 시작한 전시회 입구는 관람객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켰고, 마을 곳곳의 신들을 찾아가는 아기자기한 구성은 재미와 더불어 교육효과까지 거두는 높은 완성도를 보였다. 정연학 학예연구관은 신들의 모습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작업이었다고 말한다. “신의 이미지는 모두 학술적 연구성과를 근간으로 창조되었습니다. 청룡의 깃발을 써서 기우제를 지내는 우리 민속문화의 고증을 통해 푸른 용을 재현했고, 수많은 도깨비 중에서도 바닷가에서 어부들에게 고기를 몰아준다는 민속신앙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만들 수 있었어요. 염라대왕 옆에 하얀 강아지가 이승과 저승을 안내하는 디테일한 부분 역시 모두 고증을 통해 이루어진 결과물입니다.” 철저한 고증을 거쳐 탄생한 신들의 이미지는 영상을 통해 관람객들의 눈에 재현된다. 여러 공간을 이동해가며 다양한 신들을 만나고 조명과 효과음이 더해져 신들의 생생한 모습을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전시회에서 관객들의 좋은 반응을 엿보며 이보라 학예연구사는 큰 보람을 느낀다. “관람객들이 주도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 전시회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이에요. 저희들은 기승전결 서사에 맞춰 이야기를 잘 전달하기 위해 공간의 배치, 동선의 길이, 관람자들이 스크린을 바라보는 각도 등 가장 최적화된 구조를 찾아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거든요. 이런 요소들이 관람객들로 하여금 스토리를 완벽하게 이해시키고 만족도를 높이는 결과로 이어진 것 같아요.”
스크린으로 비춰지는 웅장하고 근엄한 신들의 모습은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영상 외에도 관람객들을 즐겁게 해주는 다양한 디테일이 존재하고 있으니, 영상을 담당한 이은정, 김민현 학예연구원이 특별전을 더욱 재미있게 즐기는 레시피를 알려준다. “큰 화면에 압도되는 즐거움을 느끼고 나면 앱을 통해 주인공 캐릭터를 만날 수 있어요. 캐릭터를 신에 대한 역할과 기능을 자세하게 들을 수 있죠. 이외에도 다양한 이야기가 숨어 있는데요. 마을을 지키는 장승 옆으로 오리가 앉아 솟대가 만들어지는 장면, 산신 파트로 들어가기 전, 각 산신들의 발자국 등 공간 사이사이마다 생생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도록 했어요.” 특별전이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었던 데는 홍보작업도 큰 몫을 차지한다. 여러 첨단 영상 기술들이 사용된 이번 특별전의 의미와 내용을 잘 알리고 사람들에게 관심과 흥미를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각별한 작업이 진행됐다. 시각디자인을 맡은 이승은 학예연구원은 특별전의 특징을 알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홍보물을 만들 때마다 열심히 기획해주신 분들의 의도를 반영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요. 실감형 콘텐츠가 사용된 이번 특별전에서는 빛의 움직임을 구현하고자 도트 무늬를 이용했는데요. 포스터의 색상, 재질, 무늬 등을 하나하나 따져가며 홍보물에 특별전의 의미와 내용을 표현하는 작업이 어렵기도 했지만 저에겐 무척 재미있고 뿌듯한 경험이었다고 생각해요.”
가장 큰 성과는 우리의 신을 알리는 것
‘한 여름밤, 신들의 꿈’은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관람객이 끊이지 않는다. 특별전을 준비하기 위해 그동안 많은 전시담당자들이 각자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결실을 맺는 지금, 오아란 학예연구사가 특별전의 중요한 의미를 정리한다. “여러 장치를 이용해 마치 마을을 탐험하는 듯한 체험방식이 이번 특별전의 가장 큰 흥미 요소일 거예요.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우리 전통의 신들을 제대로 알렸다는 점이예요. 요즘 ‘도깨비’하면 탤런트 공유를 떠올리거나, 신화 역시 그리스 로마 혹은 인도 신화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저희는 이번 특별전에서 사람들이 몰랐던 우리의 신화, 우리의 민속문화를 알리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데에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정연학 학예연구관도 동료들을 자랑스러워한다. 선배이자 특별전을 이끌어온 팀장으로서 그동안 고생한 후배들을 위해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짧은 시간 동안 전시회 준비를 하면서 모든 것을 완벽하게 구현해내느라 정말 힘들었습니다. 이번 특별전으로 국립민속박물관의 위상과, 후배들의 전시 역량 모두 크게 높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고생해온 후배들이 너무나 고맙고 저희들이 공들여 준비한 ‘한 여름밤, 신들의 꿈’ 많이 보러오셨으면 좋겠습니다.”
편집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