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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면

공존의 도시, 속초

속초는 인구 10만이 안 되는 작은 도시이다. 의외로 이 작은 도시에 우리나라 8도 사람들이 공존을 도모하며 살고 있다. 휴전선 이남뿐만 아니라 이북 사람들 각자 8도 도민회가 결성되어 활발히 활동 중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속초에 정착하였지만, 자신들의 생활과 입맛만을 고집하지 않으며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형성된 속초의 음식 맛은 전국에 알려져 있다. 다양한 맛과 멋을 지닌 속초의 매력이라 할 것이다.

 

아바이마을
어디든 사람 사는 곳은 모두 각자 사연을 지니고 있다. 속초 아바이마을도 특별하다. 6·25전쟁의 와중에서 고향을 떠난 이들이 잠시 기거하고자 했던 곳이 정착지가 되어 버렸다. 우리가 어렸을 때 청호동 아바이마을은 ‘속초 하와이’라고도 하였다. 기존 정착민과는 다른 생활모습으로 인해 아바이마을을 그렇게 불렀다. 섬은 아니지만 시내를 나오기 위해서는 청초호를 멀리 도는 자동차보다 갯배를 이용하는 편이 더 빨랐다. 갯배에 그들의 삶을 맡긴 것처럼 보였다. 이북의 거센 말투는 무언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이런 다름이 그들이 사는 곳을 별천지로 여기게끔 하였다. 실향민이 모여 사는 마을을 아바이마을이라 부른 사람은 현지 사람이 아니다. ‘아바이마을’이라는 지명은 함경도 원산 출신의 소설가 이호철1932~2016이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이호철은 자신의 수필 「속초 아바이마을」1)에서 청호동을 이렇게 묘사하였다. 고속버스터미널 근처에서 곧장 북쪽으로 긴 곶이 뻗어나가, 그 안쪽으로 호수 비슷이도 보이는 내해內海를 에워싸듯이 동남쪽에서부터 속초시는 시작된다. 그 내해도 안쪽으로 들어올수록 넓어져, 속초시의 중심가에서 곶 끝 부근은 아주 지척거리여서 널찍한 판대기배 두 대가 운행을 하고 있다. 바로 그 곶을 이루는 전역이 청호동이다. 예전 서울 변두리의 목동보다는 길이 넓고 시원하지만, 꼬불꼬불한 골목길은 비슷하였다. 해변 마을이라곤 하지만 여느 해변 마을에서 보는 운치라곤 두 눈 씻고 보자 해도 없었다. 한가운데 길만 시멘트 포장이 되고 넓을 뿐, 주택들은 거의가 ‘피란민’ 태를 그대로 내보이고, 서울의 목동과 흡사하다고 알면 된다. 첫눈에도 황막하기 그지없다. 지금 서울의 목동은 천지개벽하여 과거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속초 아바이마을은 천천히 변모 중이다. 전쟁통에 고향을 잃고 내려온 이들에게 기꺼이 임시 거처로 내준 곳이 청호동 해변이다. 그들은 과거 원산-양양 간 2등도로를 중심으로 임시 거처를 마련하였다. 임시라 생각했던 곳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정착지로 변하였다.

갯배
원산-양양 간 2등도로의 끝자락에 갯배가 놓여 있다. 원래 모래톱 위로 나무다리가 있어 자연스럽게 통행이 되었지만, 태풍 등으로 나무다리가 끊기면 갯배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1930년대 속초항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선박의 피난처로 청초호가 이용되게 된다. 이러면서 물길이 자연스럽게 나고 기존 도로는 돌아가야 했지만, 갯배를 이용하여 통행하게 된다. 당시 갯배는 지금보다 규모가 컸다. 자동차나 우마차를 실어나르기도 하였는데, 갯배 바닥이 썩어 자동차가 침몰했다는 기사도 있다. 갯배 인근은 다양한 이야기가 있는 곳이다. 수많은 글과 영상물에 등장한다. 김수용 감독의 영화 ‘만추’에는 1980년대 초반 갯배와 아바이마을의 풍경이 생생하게 나온다. 임권택 감독의 ‘티켓’, 김태윤 감독의 ‘또 하나의 약속’ 등에 여러 모습으로 비쳤다. 시인 이상국은 그의 시 ‘갯배 1’에서 갯배를 이렇게 표현한다.

청호동과 중앙동 사이를 오간 게 아니고
마흔 몇 해 동안 정말은
이북과 이남 사이를 드나든 것이다.

미디어의 시대를 넘어오면서 갯배 주변은 더욱 분주해진다. 드라마 ‘가을동화’의 흥행은 아바이마을을 본격적인 관광지로 발돋음하게 했다. 이후 다양한 드라마와 연예 프로그램에 선을 보이며 갯배와 더불어 주변 음식점이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갯배 주변의 음식을 추천하라고 한다면 순대국, 물회, 생선구이, 홍게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음식점을 찾아가도 속초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이러기에 주말에는 마을 주민보다 수백 배나 많은 관광객이 이곳을 찾아 교통이 마비되기도 한다.

축제
작은 마을 아바이마을에는 큰 축제가 열린다. 해마다 6월이면 이북 고향을 떠나 피난 온 실향민의 애환을 위로하는 것을 넘어 실향민 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기 위하여 실향민문화축제가 열린다. 올해는 ‘한반도 평화통일의 꿈을 품은 도시, 속초’를 주제로 많은 볼거리, 먹을거리, 즐길거리를 가지고 행사를 치렀다. 지역문화예술단체에서는 갯배 인근에서 민족예술제, 예술축전, 갯배예술제 등을 개최하여 갯배와 아바이마을을 다양한 시각으로 접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속초시립박물관
속초시립박물관은 속초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산과 바다를 가까이에 끼고 있는 속초의 특징을 잘 드러낸 산촌문화와 어촌문화를 보여주는 전시와 속초항 개발과 실향민의 유입으로 형성된 근대문화를 보여주는 전시가 주를 이루고 있다. 이외에도 발해문화를 살필 수 있는 발해역사관과 이북5도가옥, 실향민가옥 등으로 이뤄진 실향민문화촌이 별도로 구획되어 있다. 속초시립박물관은 국립민속박물관과 협업으로 2017년 K-museums 공동기획전을 개최하였다. ‘실향을 딛고 세운 도시, 속초’라는 주제 아래 실향민의 이입과 수산업의 발전으로 작은 마을에서 도시로 성장한 속초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속초시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근현대 유물만으로 전시를 구성한 것이 특징인 공동기획전은 상설전시로 전환하여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실향민문화촌의 이북5도가옥은 전시물인 동시에 체험장이다. 이곳은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전통가옥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전시물의 보호를 위해서 가옥에서는 숙박만 가능하고, 취사는 별도로 마련된 공간에서 해야 한다. 날씨 좋은 날에는 가옥과 담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을 보거나, 비가 오는 날에는 툇마루에 앉아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 것이 아주 매력적인 곳이다. 천연의 자연 속에 건립된 속초시립박물관의 1경은 뭐니해도 오전에 전시실 입구에서 보는 울산바위의 광경일 것이다. 자연에 압도되는 모습은 속초시립박물관을 다시 찾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만들어 준다. 박물관을 둘러싼 노리숲길은 주변의 자연조건을 충분히 이용하여 시립박물관을 찾는 이에게 편안한 안식처로 활용되고 있다. 평소에는 소풍 오듯이 도시락을 싸가지고 오는 시민들을 만날 수 있으며, 매달 펼쳐지는 숲속마켓에서는 문화체험을 하면서 속초가 가진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속초는 공존과 포용의 도시이다. 누가 언제 어디서 오더라도 마치 내 집을 거니는 것처럼 도시를 즐길 수 있다.

1) 이호철 산문집 『명사십리 해당화야』, 한길사, 1986


글 | 김만중_속초시청 문화체육과 주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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