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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면

인천 차이나타운 , 한국에서 만나는 특별한 중국

코로나19로 인해 여행길이 뚝 끊긴 지난 시간 동안 여행의 아쉬움을 달래주던 공간이 있다. 바로 인천에 위치한 차이나타운이다. 중국을 만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거리, 통칭 화교라고 불리는 중국인들의 삶을 130년간 품어온 이곳, 짜장면의 발상지로 명성을 얻은 ‘붉은’ 인천 차이나타운을 찾아가 보았다.

한국 근현대사 속, 화교의 터전으로
인천 차이나타운에 가기 위해서는 먼저 인천역으로 가야 한다. 전철을 타고 꽤 오래 달려 인천역에 도착하니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역사가 눈에 들어온다. 첨단시설을 갖춘 역사들이 넘쳐나는 요즘, 1900년에 처음 지어지고 6.25전쟁으로 소실됐다가 1960년 다시 만들어진 이곳이 자아내고 있는 우리 근현대사의 향기가 더없이 이채롭다. 일단 인천역에서 나오면 차이나타운을 찾아 헤맬 일은 없다. 바로 앞에 패루가 우뚝 솟아 있기 때문이다. 인천 차이나타운을 상징하는 탑 모양의 패루는 화교들이 상가의 번영을 기원하면서 세운 중국 전통의 문루다. 여러 개의 기둥에 지붕을 얹고 붉은색과 금색이 칠해져 화려하기 짝이 없는 패루를 지나가는 순간 한국에서 벗어나 중국에 온 듯한 착각이 드니 진정한 ‘관문’인 셈이다.

중국 문화를 만끽하다
차이나타운의 거리는 온통 붉은색 천지다. 붉은 기둥과 붉은 등, 붉은 문, 붉은 글씨 등 거리 곳곳을 채우고 있는 붉은색에는 이 색깔이 부귀와 행운을 가져온다고 믿는 중국인들의 염원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이국적인 거리를 감상하며 300m 정도 경사진 길을 오르다 보면 오른편에 중국식으로 지어진 주민센터가 나오고 이어서 커다란 삼거리가 나타난다. 대형 중국집들이 자리 잡고 있는 이곳은 차이나타운을 검색하면 가장 많이 보이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이 거리를 중심으로 좌우로 한 번씩 오고 가다보면 꼭 들러보라는 관광지들이 나온다. 인천 차이나타운은 언덕길이 꽤나 많다. 이 같은 지형은 인천 차이나타운의 탄생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처음부터 평지를 두고 산으로 올라간 것이 아니라, 1884년 최초로 청국 조계지1)가 설정될 당시 현재의 1패루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왔기 때문에 무역업을 하기 가장 좋은 조건인 곳에 자리를 잡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다. 삼국지벽화 골목 또한 꽤 높은 산등성이에 자리 잡고 있다. 학교 담벼락을 따라 그려진 벽화에는 삼국지의 주요 사건들과 요약된 해설이 꼼꼼히 적혀 있다. 타국에 살고 있지만 자국의 문화와 역사를 잊지 않으려는 이들의 노력이 담긴 현장이다. 초한지 벽화거리도 비슷한 풍경이다. 다양한 역사를 품고 있는 차이나타운에서 청일 초계지 계단은 꼭 한번 들러봐야 할 곳이다. 청과 일의 패권 싸움에 희생양이된 구한말 민초들의 삶이 절로 떠오르는 초계지계단은 1884년에 만들어졌으며 가운데 계단을 중심으로 왼쪽은 청나라 사람들이, 오른쪽은 일본인들이 모여 살았다. 계단을 중심에 두고 양쪽의 건물 양식이 다른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리고 계단 꼭대기 끝에는 중국에서 기증한 대형 공자상이 우뚝 서 있다. 공자와 시선을 맞춰 함께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을 인천 앞바다를 바라본다.

 

짜장면의 역사와 현재를 만나다
인천 차이나타운은 소소한 박물관들이 많은 지역이다. 그중에서 짜장면박물관은 이 지역의 상징이자 정체성인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짜장면 배달원 조각상이 서 있는 이곳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호기심과 궁금증이 점심시간 입맛처럼 모락모락 북돋워진다. 짜장면박물관은 1912년에 문을 연 중국집 공화춘을 리모델링한 공간이다. 내부에 들어가면 1층, 2층에 짜장면과 관련된 모든 것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지금 우리가 즐겨 먹는 짜장면은 ‘쿨리’라고 불리는 화교 노동자들의 음식에서 비롯됐다. 1890년대 전후, 최하층 노동자였던 이들은 항만에서 고된 노동이 끝나면 춘장에 수타면을 비벼 먹었는데 이들을 상대로 한 손수레 노점상이 하나둘씩 생기면서 짜장면이 시작됐다고 한다. 그러다가 공화춘의 전신인 산동회관에서 1905년 짜장면을 처음으로 정식메뉴로 올리고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이 음식은 국민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 메뉴로 거듭났다. 박물관은 크지는 않지만 알찬 이야기와 볼거리로 가득하다. 화교와 짜장면의 탄생, 1930년대 공화춘 접객실, 짜장면의 전성기, 짜장면의 역사, 1960년대 공화춘의 주방 등이 사진과 조형물로 생생하게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을 다 볼 때쯤 되면 필연적으로 짜장면이 먹고 싶어진다. 아까 삼거리에 봤던 중국집 공화춘으로 돌아간다. 평소 긴 줄을 자랑하는 것으로 유명한 이곳에 운 좋게 바로 들어가 착석했다. 다양한 메뉴 중 일반 짜장면보다 가격대가 조금 높은 시그니처 짜장면을 시키자 남다른 비주얼을 자랑하는 소스가 나온다. 빠르게 비벼야 면에 소스가 잘 묻는다는 종업원의 말에 서둘러 면과 소스를 섞는다. 청양고추가 듬뿍 얹혀 있고 새우 등 해산물이 푸짐해 맛은 물론, 식감까지 남다른 짜장면이다. 매콤하고 감칠맛 나는 짜장면을 먹고 소스에 밥까지 비벼먹고 나오니 거리 가판대에는 중국식 간식들이 또 유혹의 손길을 뻗는다. 남송 때부터 전해 내려오는 팥소와 말린 과일을 넣어 구운 월병, 가운데가 텅 비어 있는 바삭한 공갈빵, 달달한 탕후루, 화덕 벽에 붙여서 구워내는 화덕만두까지 거리에 가득한 것. 의자 다리만 빼고 다 먹는다는 중국의 식도락을 즐기고 싶다면 단연 인천 차이나타운에 와 볼 일이다.

다른 문화, 다른 언어를 가진 채 한국의 근대현대사에 뒤섞여 인천에서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마련한 화교들, 번성과 쇠락을 반복하다가 인천의 관광지로 다시금 급부상한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여전히 살아내고 있는 그들의 삶. 본격적인 나들이에 앞서 일상과 확연히 ‘차이나’는 풍경 속으로 먼저 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 欢迎!!(환영합니다!)

1) 주로 개항장에 외국인이 자유로이 통상 거주하며 치외법권을 누릴 수 있도록 설정한 구역


글 | 이경희_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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