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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서는 #1

바람祈願이 만드는 생명력, 동제洞祭

민속에서 말하는 민간신앙에는 마을신앙, 가정신앙, 무속신앙 등이 있다. 신앙의 분류 및 용어에 대해서는 학자별로 의견들이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이들은 민간신앙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동제洞祭는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에게 마을 사람들의 건강과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드리는 마을공동의 제사이다.

충청도에서 권역별 마을신앙 조사사업의 포문을 열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2021년부터 전국을 6개의 권역1)으로 나누고 권역별 마을신앙 조사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2022년에는 충청권을 대상으로 마을신앙을 조사하면서 권역별 마을신앙 조사사업의 포문을 열게 되었다. 전국적으로 동제는 지역에 따라 명칭도 다르고 내용도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동제는 지역에 따라, 신체에 따라 혹은 제의의 특성에 따라 당산제, 서낭제, 산신제, 장승제, 거리제, 용왕제, 당제, 본향당제 등 다르게 부르고 있다. 마을을 지켜준다고 여기는 동신의 형태도 당산나무, 장승, 솟대, 돌탑 등 마을마다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동제를 모시는 시기 또한 마을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농사일이 시작되기 전인 정월대보름에 지내는 경우가 많고 정초, 이월초하루, 시월초하루 등 지역에 따라서 지내는 시기가 다르다. 일 년 중 동제가 가장 많이 이루어지는 시기가 정월이다. 그 가운데서도 정월대보름정월 열나흗날 포함에 지내는 경우가 많다 보니 충청권역에 해당하는 대전광역시, 세종특별자치시, 충청남도14개 시군, 충청북도11개 시군를 동시에 조사하기 위해 대규모 인원이 투입되기도 하였다. 충청권은 정월에 동제를 지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월초하루, 단오, 칠석, 시월초하루 등에도 지내는 마을들이 있다.

백정자마을 사람들의 샘제 이야기: 마을사람들의 간절한 기원을 담은 샘제
충남 공주시 이인면 복룡리 백정자마을에서는 매년 이월초하루가 되면 마을 여성들이 주체가 되어 마을 가운데에 있는 샘우물에서 마을 사람들의 건강과 풍년을 기원하며 제사를 지내고 있다. 백정자마을은 충남 공주시 이인면 복룡리에 있는 자연마을이다. 고려 시대부터 마을 입구에 잣나무가 있었다고 해서 백정자柏亭子 마을이라고 부른다. 전해져오는 이야기에 따르면2) 마을 사람의 꿈에 잣나무로 정자를 지어 길가는 나그네를 천 명 이상 쉴 수 있도록 해주면 마을이 풍요로워지고 재난이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잣나무로 정자를 짓고 길을 오가는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했더니 마을에 재난이 없었다고 한다. 백정자마을이라는 이정표를 지나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마을 가운데쯤에서 철제 지붕으로 덮인 샘우물을 볼 수 있다. 본래는 지붕이 없었으나 공주시의 지원을 받아 지붕을 설치하게 되었다고 한다. 백정자마을의 샘제는 물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용왕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서 용왕제라고도 부른다. 백정자마을의 샘제는 매년 음력 이월초하루에 지내는데 언제부터 지내왔는지에 대해서는 아주 오래전부터라고 마을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다. 다만, 마을에서 전해져오고 있는 『동계집』에 보면 1956년부터 샘제와 관련된 지출 현황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1956년부터 지낸 것을 알수 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비록 이전의 기록이 없기는 하나, 지금으로부터 78년 전인 1944년부터 지내온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여성제관 선정
언제나처럼 2022년에도 음력 이월초하루양력 3월3일에 백정자마을에서는 샘제를 지냈다. 본래는 이월초하루 밤 자시11시에 지냈으나, 2022년에는 시간을 바꿔서 오전 10시에 지내게 되었다. 백정자마을의 샘제를 주관하는 유사는 여성이다. 동짓달이면 다음 샘제를 지낼 유사를 동계에서 선출한다. 예전에는 생기복덕生氣福德을 고려해서 제관유사을 선정했지만, 70여 호였던 마을이 10여 호로 줄면서 현재는 남아있는 여성들이4명 매년 돌아가면서 지내고 있다. 다른 동제처럼 제를 지내기 전까지 유사들이 지켜야 할 금기 사항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초상집을 다녀오는 것 등 부정하다고 여기는 몇 가지만을 조심하고 있다고 한다.

정성스런 샘푸기와 물달기
이월초하루 아침 10시쯤 징소리와 함께 마을의 남성들이 샘으로 모여서 샘을 품고 샘 주변을 청소하면서 샘제는 시작된다. 깨끗하게 샘을 품고 나면 샘 안쪽에 공양미를 바치고 왼새끼로 꼰 금줄을 샘 주변에 두르고 황토를 깐다. 그 다음에 ‘물달기’라는 것을 한다. 물달기는 다른 마을의 샘에서 물을 가지고 오는 것을 말하는데, 병에 물을 담아 솔가지로 입구를 막은 다음, 거꾸로 들고 물을 계속 흘리면서 백정자마을의 샘까지 가지고 오는 것이다. 예전에는 이웃 마을의 샘에 가서 물을 빼앗아 왔는데 이웃 마을에서는 물을 빼앗기게 되면 그 마을의 샘이 마른다고 여겨서 뺏기지 않기 위해 노력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백정자마을에서는 물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물을 빌려오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지금은 이웃 마을에서 물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농업용수로 쓰고 있는 관정에서 물을 달아온다. 관정에 도착해서는 미리 준비한 병3)에 물을 담는다. 이렇게 담아온 물은 백정자마을의 샘에 거꾸로 매달아 물이 샘 안으로 똑똑 떨어지도록 만들어 놓는다. 이렇게 하면 물달기가 끝난다. 예전에는 물달기를 하고 나면 온 동네가 시끄럽도록 풍물을 치고 놀았지만, 지금은 풍물을 칠 사람이 없다 보니 물달기만 하고 유사 집으로 모여서 제사를 준비한다.

이월초하루, 여성들이 주인공이 되다
오전 11시가 되자 유사의 집에서 전날 미리 구입해 놓은 제물과 아침에 준비한 제물을 들고 샘에 모이게 된다. 제물로는 시루떡과 쌀, 돼지머리와 밥, 미역국, 무나물, 대추, 배, 단감, 사과, 참외, 약과, 술을 진설한다. 이 밖에 북어와 김을 진설한다. 먼저 유사가 술을 올리고 두 번 절을 하는 초헌헌작을 진행한다. 그런 다음 소지를 하는데 소지를 하기 위해 미리 마을의 가구 수만큼 종이를 준비한다. 마을 사람 한 사람씩 생각하며 건강과 안녕을 기원한다. 특히 아픈 사람이 있는 경우에는 특별히 그 사람이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빈다. 소지가 끝나면 참석한 사람들이 모여서 음복을 한다. 비교적 간단하게 지내지만, 제를 지낼 때만큼은 정성을 들여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간절하게 바라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백정자마을은 70여 호가 모여 살던 꽤 큰 마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10여 호가 남아있는데, 그나마 외지에서 들어온 가구 수를 포함해서이다. 70여 호 이상 살던 때부터 10여 호가 살고 있는 현재까지 백정자마을의 샘제는 지내지 않은 적이 없이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사람들이 모이지 못하게 되자 몇몇 사람만이 모여서 지냈을지라도 멈추지 않고 지내고 있다. 백정자마을 주민들은 샘제가 지속적으로 이어져 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지금까지는 샘제가 잘 이어져 오고 있지만, 언제까지 지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모두 걱정이 가득하다. 젊은 사람들이 없기도 하고 샘제에 대한 관심이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을의 전통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마을 사람들의 간절함이 있는 한 샘제의 생명력은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권역별 마을신앙 조사로 마을신앙의 지속가능성에 견인차 역할
2005년 한국의 마을신앙 조사라는 이름으로 정월대보름에 진행하는 전국 동제를 동시에 실시한 적이 있었다. 전국의 139개 마을을 조사했던 대규모 사업이었는데, 그 후 동제 조사는 부분적으로만 시행하였다. 이번에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진행하고 있는 권역별 마을신앙 조사는 2022년 충청권을 시작으로 전라권, 경상권, 서울·경기권, 강원권, 제주권까지 권역별로 3년 동안 진행될 예정이다. 그 첫 번째로 시작한 충청권 마을신앙을 조사한 자료는 연말에 조사보고서로 발간될 예정이다. 전국적인 규모로 진행되는 권역별 마을신앙 조사사업은 2005년 이후 17년 만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도시화, 코로나19 등으로 너무도 많은 변화를 겪고 있는 마을신앙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도록 자료를 축적해 나갈 것이다. 특히 이번 조사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중에도 지내지 않은 적이 없었던 동제를 2019년부터 발생한 코로나로 인하여 지내지 못하게 되는 경우들을 알 수 있도록 현황조사까지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자료들은 현시점에서의 동제 모습과 동제의 현황 파악을 통해 민속 연구자들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전국 규모의 조사를 통해 마을신앙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상기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023년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일시 멈춤’ 했던 마을의 동제들이 부활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방역지침을 준수하여 동제 조사를 실시하였습니다.

1) 충청권, 전라권, 경상권, 서울·경기권, 강원권, 제주권
2) 유승광, 2006, “이인면 복룡리: 금을 찾던 복룡리 사람들”, 공주문화원부설 향토문화연구소 편. 공주문화원, “공주의 마을전통 5: 공주문화원 문화총서 35”, 39~56쪽,
3) 예전에는 도자기였으나 지금은 플라스틱병 활용


글 | 최명림_민속연구과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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