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보기 PDF 박물관 바로가기

그곳에 가면

정릉동, 천천히 느리게 변해가는 곳

북한산 자락에 자리 잡은 정릉동은 과거와 현재, 미래가 혼재된 곳이다. 정릉천 변을 따라 서 있는 신·구축 건물들과 오래된 기왓장을 이고 있는 집들은 정체와 변화의 어디메쯤에서 방문객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어울리는 듯 아닌 듯한 그 모양새들은 가슴에 오랜 정취를 선물한다. 조선 1대 태조의 두 번째 왕비 신덕고황후 강씨의 능인 ‘정릉’이 지역 이름이 된 곳. 회색빛이 듬성듬성한 추운 날, 정릉동 길을 누벼 보았다.

정릉동과 정릉천
성북구에 위치한 정릉동을 이야기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다. 인접한 북한산과 정릉천 그리고 정릉동이라는 이름을 선사한 ‘정릉’이 그것이다. 서울 근교의 산 중 가장 높고 깎아지른 듯한 바위 봉우리와 아름다운 계곡들이 숨어 있는 북한산과 그곳에서 발원해 동남쪽으로 흘러 내려오는 정릉천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모여든다. 정릉동의 상징과도 같은 정릉천을 만나고 싶다면 일단 정릉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길 일이다. 어디나 사람 구경을 하고 싶을 때는 시장통을 향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니 사람과 물을 만나기에 이보다 적합한 곳이 없다. 빽빽한 상가건물들 사이에 ‘정릉시장’이라는 정겨운 간판을 달고 있는 이곳에는 없는 게 없다. 대기업의 화려한 브랜드 대신 소박한 이름의 가게들, 물건 가격을 적어놓은 비뚤비뚤한 손글씨 종이, 오토바이와 트럭은 경적을 울리며 지나가고 초록색 작은 마을버스도 솜씨 좋게 시장 골목길을 요리조리 빠져나간다. 푸짐한 고기덩어리를 썩썩 썰어내는 정육점, 없는 게 없는 금메달마트, 빨간 플라스틱 바구니에 투박하게 담긴 과일들, 발효종을 이용해 구웠다는 빵집의 고소한 냄새, 지글지글 구워지는 호떡,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옥수수 앞에 서서 살까 말까 망설이면서 억지로 발걸음을 떼어 걷다 보면 정릉천이 나타난다. 잘 정비된 정릉천을 가운데 두고 양쪽에는 천변을 따라 건물이 빼곡하게 서 있고 물길 바로 옆에 조성된 산책로에는 추운 날씨임에도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느린 걷는다. 한눈에 들어오는 정릉천과 정릉시장은 묘한 곳이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교묘히 뒤섞여 있는 느낌, 흑백부터 컬러까지 천천히 그라데이션되는 화면을 보는 느낌이다. 1층은 세련된 카페지만 2층부터는 5층까지는 세월이 흔적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오래된 건물의 모습, 빌라들 사이로 뜬금없이 존재감을 자랑하는 오래된 기와집, 아마도 청년 창업가들의 터전임에도 틀림 없어 보이는 세련된 가게들, 그리고 그 옛날 아버지들이 제사 전날 꼭 들렀음직한 이발소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오래된 동네답게 굽이굽이 사방으로 뻗어있는 골목들도 남루한 옛모습과 화사하게 그려진 벽화들의 어울림 덕분에 색다르게 다가온다.

 

기차순대국집에서 맛보는 별미 백순대
정릉천과 정릉시장을 누비다 보니 슬슬 배가 고파 온다. 정릉에서 점심식사를 할 만한 곳은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오래된 동네인 만큼 노포도 많고 맛으로 소문난 집도 많은 것. 잠봉뵈르 샌드위치를 파는 ‘도이칠란드박’, 3천 원짜리 김치찌개를 파는 ‘청년문간’, 불고기와 돼지갈비, 냉면이 맛있는 ‘서울불고기’ 등 하나하나 꼽기에는 손가락이 모자르다.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천변 바로 옆에 자리잡은 ‘기차순대국’집을 찾았다. 58년 전통을 자랑하는 이 집은 백순대를 만드는 집이다. 돼지고기에 채소와 두부를 듬뿍 넣고 돼지 소창에 넣어 만든 순대는 이집의 별미다. 돼지머리뼈를 12시간 동안 고아내 끓인 육수에 이 하얀 두부순대와 머릿고기를 듬뿍 넣고 팔팔 끓여 내오면 절로 군침이 넘어간다. 여기에 맛깔스런 김치와 아삭아삭한 깍두기, 부추무침을 곁들이면 말 그대로 기막힌 지원사격이다. 잡내 없고 부드러운 맛이 일품인 그 맛에 숟가락이 절로 움직인다. 부드러운 국물에 담백한 백순대 맛이 그만이다. 들깨가루, 다대기가 없어도 이 자체의 맛으로도 충분하다. 머릿고기들도 잡내 없이 입에 쫙쫙 붙는다. 뚝배기 국물이 줄어들 때마다 뼛속까지 파고 들었던 한기가 몸에서 쑤욱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지난 세월, 이곳에서 하루 노동의 피로를 잊고 순대국에 막걸리 한잔을 기울였을 그 시간들이 곁을 천천히 스쳐 지나간다.

과거를 씨줄로, 현재를 날줄로 미래를 직조하다
자, 다시 힘을 내어 또 길을 나서보자. 이번에는 정릉이라는 이름의 유래가 된 근원지를 찾아 나선다. 정릉은 태조의 둘째 부인 신덕왕후 강씨의 능인 ‘정릉貞陵’에서 이름이 붙여졌다. 정릉 일대는 본래 살한이, 사을한이, 사아리 등으로 불리다가 조선시대 들어와서는 한자명으로 사한리沙閑里, 사하리沙河里, 사아리沙阿里 등으로 다양하게 표기되었다. 신덕왕후의 능은 역사 속에서 여러 차례 고난을 겪었다. 태종 이방원은 신덕왕후를 후궁으로 강등시켰고 능은 묘로 격하되어 제대로 대우받지 못했다. 신덕왕후가 왕비로 복위되고 무덤도 왕후의 능으로 복원된 것은 1669년현종10년 송시열의 상소에 의해서였다. 능침을 새로 봉하고 막 제를 올리려 할 때 소나기가 갑자기 내려 정릉 일대의 시냇물들이 넘쳐흘렀는데 정릉이 그간의 원통함을 씻었다는 의미에서 백성들은 그 비를 두고 ‘세원우洗冤雨’라고 불렀다고 한다. 정릉아리랑시장을 통과해 꽤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자 정릉 입구가 모습을 드러낸다. 입장권을 사고 안쪽으로 좀 더 발걸음을 옮기자 홍살문이 보이고 정자각과 수라청, 수목방, 비각 뒤로 웅장한 정릉의 모습이 보인다. 유네스코 세계 유산이자 사적 제208호로 지정되어 있는 정릉에는 겨울나무의 앙상함과 쓸쓸함이 깃들어 있지만 방문객들의 발걸음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도심 속에서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소나무와 참나무 밑의 여유, 아름다운 숲속 산책로가 있는 덕분이다. 겨울의 쨍한 공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마시고 또 발걸음을 재촉했다. 마을버스 6번을 타고 정릉시장 안 꼬불꼬불한 길을 한참 지나 내린 곳은 정릉4동 주민센터 앞. 바로 앞 정릉천으로 내려가 천변 길을 따라 올라가니 정릉동 삼각산 동쪽 기슭에 있는 경국사가 나오고 그 옆에 까마득히 높은 계단길이 보인다. 바로 재개발을 앞두고 있는, 서울에 얼마 남지 않은 정릉의 달동네이다. 이만한 높이의 산등성이에 어떻게 자재들을 날라 집을 짓고 연탄을 때우며 겨울을 났을까. 많은 이들이 떠난 듯 고요한 사방에서는 이따끔 새들만 푸드덕 날아 오른다. 얼마 남지 않은 자취를 담으려 찾아온 아마추어 사진가가 누르는 셔터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린다.

겨울 해가 짧다. 뉘엿뉘엿 지는 해를 뒤로하고 조심조심 자칫 고꾸라질 것 같은 계단을 내려와 버스정류장으로 향한다. 죽어서 설움을 당했던 왕비의 능이 꼿꼿하게 있는 곳, 북한산 자락에 펼쳐진 채 그 아름다움의 일부를 나눠 가진 동네, 우리네 고단했던 삶의 일부를 대수롭지 않게 품고 있는 공간… 우리네 정릉동의 아름다움이 뒤로 뒤로 물러간다.


글 | 이경희_여행작가

더 알아보기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 등록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