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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이 소장한 | 세주

‘술꾼조상들’이 설날 술을 마신 까닭

우리가 술을 마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마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오래전부터 인간의 희로애락喜怒哀樂과 함께 술을 ‘즐긴’ 것은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부여夫餘, 고구려高句麗, 예 등의 고대 제천의식에서의 음주가무飮酒歌舞를 했다는 기록이나 신라 안압지雁鴨池에서 발견된 술 놀이 도구인 주령구酒令具 등을 통해 우리는 오래전부터 술을 즐기는 문화가 발달해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현대사회 들어서는 더욱 즐기는 술 문화가 빠르게 정착되었다. 심지어 최근에는 같이 술을 마시고 즐긴다는 관념에서 벗어나 혼자서 술을 즐기는 ‘혼술’ 문화가 정착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를 근거로 우리가 술을 마시는 이유를 ‘즐거움’에만 한정시킬 수 있을까? 이 글에서는 전통사회에서 술을 마신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국립민속박물관 소장품과 함께 전통사회 우리 술 문화를 엿보고자 한다.

조선시대 꽃 피운 가양주 문화
우리나라에 술 문화특히, 가양주 문화가 꽃피게 된 것은 조선시대이다. 비록 태종太宗, 세종世宗, 영조英祖 대에는 왕권을 강화하고 사회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금주령을 내리기도 했지만, 농업과 유교儒敎가 핵심가치였던 조선 사회는 농사일과 조상숭배祖上崇拜, 손님 접대 등을 매우 중요하게 여겨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가양주家釀酒가 발달하게 되었다. 특히, 집집마다 조상을 위한 기제사나 차례, 시제를 지내기 위해서는 술은 늘 필요했다. 또한, 집에 방문하는 손님을 극진히 대접하는 것도 당연한 예의였고, 술과 음식이 어우러진 주안상酒案床을 꼭 내었다. 명문가일수록 손님의 출입이 빈번했기 때문에 이런 가정일수록 술은 상시로 갖추고 있는 음식이었다. 혼례와 상례에서도 손님에게 술대접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명가명주名家銘酒라는 말도 이런 배경 속에서 생겨났다. 따라서 양반 대부분은 자신의 책무를 지키기 위해서 ‘술꾼’이 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농사일에서도 술은 일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기호식품으로서 역할뿐만 아니라 식량 대용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막걸리가 ‘농주農酒’라고 불린 것도 이런 의미가 가장 컸다. 이렇게 전통사회에서 술은 고된 노동과 배고픔을 해소해주고 가정과 이웃, 나아가서 공동체를 위하고 연결해주는 중요한 장치였다.

세시풍속과 술: 무병장수를 기원하다, 세주歲酒
전통사회 술 문화는 농사일과 의례와 같이 ‘반일상半日常’적인 사회행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비일상적 영역인 세시풍속에서도 술은 자주 발견할 수 있다. 각 가정에서는 설날에 먹는 도소주屠蘇酒, 삼짇날 즐겨 먹는 도화주桃花酒, 단오의 창포주菖蒲酒, 추석 차례상의 신도주新稻酒, 햅쌀술, 중양절의 국화주菊花酒 등 절기 때마다 직접 술을 빚어 먹었다. 이를 절기주節氣酒라고도 하는데, 이는 우리나라 술 문화의 독특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정초에 마시는 도소주는 후한後漢 때 사람인 화타華陀가 개발하였다고 알려진 술로, 사기邪氣를 물리치고 무병장수를 하기 위해 가족 혹은 이웃과 함께 마시는 술이다. 도소屠蘇의 의미는 한자 뜻대로 ‘사악한 기운을 몰아내는 술’이라고 해석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도소屠蘇, 즉 약재藥材가 들어 있는 술이라고 보고 있다. 도소주는 『본초강목本草綱目』, 『동의보감東醫寶鑑』등에서 공통적으로 대황大黃, 계심桂心, 도라지, 산초山椒 등 약초藥草를 베주머니에 넣어 섣달 그믐날 우물에 넣었다가 설날에 꺼내어 청주 등 술 속에 넣어서 끓인 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동쪽으로 향해 앉아 어린아이부터 연장자 순으로 마신다고 소개하고 있다. 도소주는 설날 세찬歲饌과 함께 마시는 술이라 세주歲酒라고도 부르며,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도 도소주가 세주의 시초라고 하였다. 약초의 찌꺼기는 우물에 다시 넣어 두기도 하는데, 해마다 이 우물물을 마시면, 살아 있는 동안 무병장수한다고 믿었다. 정월 대보름에 마시는 귀밝이술[耳明酒]도 제화초복除禍招福을 기원한다는 점에서 도소주와 유사하다. 일부 지역에서는 귀밝이술을 도소주와 혼동하여 부르는 예도 있다. 정월 대보름 아침에 귀밝이술을 마시면 일 년 동안 귀가 밝아지고 즐거운 소식을 듣는다고 하여 마셨다. 귀밝이술은 청주를 사용하며 데우지 않고 차갑게 마시는데, 이는 벽사辟邪의 의미일 것이다. 도소주와 귀밝이술을 빚고 마시는 것은 새로움이 깃드는 정월에 부정한 것을 막고, 한 해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가 술에 투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절기주는 세시적 의미를 되새기는 역할을 하면서 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賓客이 빈번한 시기에 절기 재료를 이용하여 술을 빚는 조상들의 지혜도 엿볼 수 있다.

소장품 속 술 문화 들여다보기: 주병, 소줏고리, 술독
전통사회 가정에서는 절기마다 술을 빚기 위해서 다양한 도구가 필요했다. 발효효소제인 누룩을 성형하기 위한 누룩틀, 술을 거르기 위한 용수와 체, 술밥을 찌는데 쓰는 솥과 시루, 술을 빚어 담는 저장 그릇인 술독항아리과 주병酒甁, 술을 따라 마시는 술잔 등은 전통사회 어느 집이나 갖추고 있었을 생활 용구였다. 이 중에서 아마 가장 흔하고 모든 가정에 있었던 것은 주병일 것이다. 설사 술을 직접 빚지 않는 가정이라 할지라도 제사나 손님 접대 등을 위해선 주병은 반드시 있어야만 했다. 주병은 술과 관련된 가장 원초적인 도구로 가벼우면서 저장에 용이하고 따르기 편리한 형태로 발전해왔다. 주병은 도자기 재질이 대부분인데 도자 용기에 담으면 오랫동안 보관이 가능하고 숙성을 통해 맛과 향이 더 좋아지는 효과가 있었다. 술을 저장하거나 운반할 때 쓰는 술춘을 도자 용기로 만든 것도 이 때문이다. 주병의 재질은 술의 종류에 따라 달리 선택하기도 하였다. 약주나 소주는 청자나 백자주병, 막걸리탁주는 옹기로 된 주병에 담아 먹는 것이 어울렸다. 주병 몸체에는 다양한 무늬가 그려진 장식이 있기도 한데, 이를 통해 술을 마시는 의미를 다시금 엿볼 수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품을 살펴보면, 청화백자주병민속063237 몸체에는 모란과 나비가, 백자청화십장생문주병민속94481에는 십장생이 청화로 새겨져 있다. 모란과 나비는 부귀를, 십장생은 장수를 상징하는 것으로 설날 세주를 마시는 마음처럼 부귀와 장수를 술과 함께 기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술 도구 가운데 가장 과학적이면서 외형적으로 눈길이 가는 것은 단연 소줏고리이다. 소줏고리는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증류식)소주를 만드는 증류기를 말하며, 제주 지역에서 ‘고조리’, ‘고소리’라고도 부른다. 소주는 고려시대 몽골이 한반도를 침략했을 때 전래 되어 서울 이북 지방은 일 년 내내 즐겨 먹었을 정도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술이었다. 그러나 소주를 내리는 것은 탁주나 청주보다 더 전문적인 기술과 노동력이 필요하여 모든 가정에서 소주를 내리지는 않았다. 그래서 소줏고리는 소수의 가정에서만 가진 경우가 많았고, 필요에 따라 임대하여 사용하기도 했다. 고소리주로 유명한 제주 지역은 벼가 귀하고 밭곡식이 많아 청주를 빚기가 어려워 잡곡으로 빚은 탁주를 증류시켜 얻은 소주를 즐겨 먹었다. 그래서인지 제주 지역 소주와 소줏고리는 근래까지도 비교적 잘 전승되어 오고 있다. 소장품 고소리민속35166 역시 1940년대 제주 지역에서 제작된 전형적인 토고리로 위짝과 아래짝의 균형미가 뛰어난 ‘작품’이다.

주세법1909과 주세령1916의 등장과 함께 가양주 문화가 급격히 쇠퇴하면서 가장 위상이 달라진 주조용 도구는 술독항아리일 것이다. 일제는 집에서 술을 빚으려면 주조 면허를 받게 했고주세법, 일정량 이상 생산하지 않으면 면허를 내주지 않거나 판매용 술보다 높은 세율을 매겨주세령 집에서 술을 빚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하였다. 발효가 잘되는 별도의 공간에 자리 잡고 부녀자들이 항상 정성을 들여 관리하는 대상이었던 술독은 이 시기 이후부터 집집마다 사라지거나 외부에서는 보이지 않는 은밀한 곳에 숨겨지게 되었다. 양조장에서 사용하던 술독도 관리와 침탈의 대상이 된 것은 마찬가지였다. 소장품 항아리민속47225는 전남 곡성군 삼기면 일대 양조장에서 1924년경부터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술독이다. 항아리 표면에는 ‘第 號’, ‘酒造用 大正十三年 ○月 ○日檢定’, ‘容量 參斗五升’이 차례로 새겨져 있다. 이는 세무서 혹은 관할 군청에서 양조장이 생산되는 술의 용량을 파악하기 위해 술독을 검정하고 관리한 표식이다. 세무서는 술독의 용량과 개수를 파악하면 양조장에서 생산되는 전체 술의 용량을 알 수 있었기 때문에 세수稅收 파악을 위해서 술독 표면에 이런 내용을 새기고 별도의 용기검정부를 작성하게끔 하였다. 술독 우측에 보이는 일정한 간격의 선 역시 술의 양을 파악하기 위해 그었다. 슬픈 이야기이지만, 우리는 양조장 항아리 표면에까지 일제 침탈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코로나 19로 모두가 힘든 상황 속에서 벌써 세 번째 설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번 설에는 단순히 ‘즐기는’ 술이 아닌 ‘술꾼조상들’처럼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세주’를 온 가족이 함께 나눠 마셔보면 어떨까?

(앞서 소개한 소장품은 모두 국립민속박물관 파주 열린 수장고6수장고에 가면 가까이에서 직접 볼 수 있다. )


글 | 김승유_유물과학과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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