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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음의 즐거움 | 윷놀이

사소한 것들의 비범한 통찰 윷놀이

설날의 정겨운 풍모
내가 어릴 적에 자란 마을은 지리산을 바라보고 있는 남원이다. 남원에서 이룩한 민속의 체험이 살아 있는 지식이 되었고, 그곳에서 경험한 것이 민속과 문화를 공부하는 것의 거의 모든 백과사전적 정보를 조달하고 있었음을 숨길 수 없다. 모름지기 고전이나 민속을 공부하고자 하면 시골에서 자라는 것이 밑천을 제공함을 인정한다. 도회지에서 자란 추억은 쓸모가 있으나 아무래도 세련된 체험을 제공하는 것이므로 현대적인 세련미를 가진 것을 공부하고 전공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 같다. 시골내기와 도시내기를 가르자는 것은 아니고, 저마다의 체험과 연륜이 결국 사태를 온당하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말이다. 실제로 둘을 겸하는 것도 가능하므로 절대적인 차별을 두자는 뜻은 전혀 아니다. 남원에서 설날부터 정월대보름까지 이어지는 시골의 정경은 경이로움 자체였다. 그 빛나고 아름다운 시절로 돌아가고픈 마음이 늘 있고,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게 되면, 어느덧 발꿈치를 들고 멀리 목을 빼고 기다리는 발사심이 난다. 그때 세배 올리면서 떡국을 얻어먹던 포만감과 따뜻함, 여러 곳을 돌면서 놀이를 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아이들의 놀이와 어른들의 놀이는 확연하게 구분되지만, 마을 사람들이 벌이던 윷놀이는 진실로 각별하게 아직도 떠오른다.

마을마다 한 사람의 재간동이가 있다. 약삭빠르고 일처리를 잘하는 사람이 있어서 다른 사람의 귀감이 되는 인물을 말한다. 우리 동네에서도 마을 단위의 윷놀이가 걸판지게 놀아졌는데, 마당에 멍석을 펴고 숯과 같은 것으로 이상한 말판을 그리고 종지에 싸리나무를 반으로 잘라 만든 종지윷을 담아서 던지는 기발한 윷놀이를 하게 된다. 어린 눈으로 보아서인지는 몰라도 그 아재가 윷을 놀리는 것이 거룩하게까지 보이기도 하였다. 종지는 멍석 위에 떨어지고 네 토막의 윷이 나뒹구는 절묘한 솜씨에 놀라움을 저버릴 수 없었다. 말판을 쓰는 방식도 독특하여 이를 놀리는 방식에 감탄이 절로 나게 했던 것을 잊을 수 없다. 종지에 윷을 넣고서 흔들다가 멍석에 놓으면서 자신의 허벅지를 손바닥으로 치는 것은 날랜 모습이고 윷이 떨어지기 전에 한 푼도 덜어낼 것이 없었으니 그것은 깎아놓은 밤톨모양으로 예쁘면서도 맵자하던 것 자체였다. 정월 대보름까지는 이러한 윷판이 거듭되고 윷을 놀리면서 놀이를 하고 개평으로 뜯은 것을 아이들이나 안식구들을 위해서 쓰는 넉넉한 인심은 참으로 보기 좋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넓은 마당에 다소곳이 모여서 일과 놀이를 예측하고 사람들이 모여서 따뜻한 떡국을 끓이던 정경은 다시 구할 길이 없다. 세상은 다정한 것이 전부였는데, 이렇게 잃어가는 것이 많은 것을 어찌할 것인가? 살아가는 일이 버리는 것이고, 비워내는 것인 줄 번연히 알면서도 속절없이 잊혀가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을 찾는 것은 나만의 아쉬움이련가?

나중에 공부하면서 경험을 쌓는 과정에서 윷놀이가 내가 아는 것의 전부가 아닌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민속지식은 귀납만으로 도저히 다가설 수 없는 천태만상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러한 것의 환상이 시골인 남원에서 서울로 전학을 하게 되면서 송두리째 뽑혀 나가게 되었다. 서울에 오니 여기에서 노는 윷놀이는 모양새부터 달랐다. 손가락만한 크기로 된 것은 이를 손가락 사이에 끼고 던지고 노니 왜 이러한 윷을 가지고 놀아야 하는지 의아한 생각이 떠나지를 않았다. 게다가 말판을 그리지도 않고 종이에 그려진 것을 가지고 그 위에서 말밥을 먹이고 말판에서 동을 내는 것은 다소 기이한 체험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종지윷과 채윷의 차이가 있었다. 나머지 밤윷과 콩윷이 있는 것도 알았다. 나중에 여러 곳에 돌아다니면서 윷놀이의 방식과 내용이 전혀 이질적인 것을 더욱 많이 경험하게 되었다. 장작윷을 더욱 크게 만들어서 이를 가지고 노는 형태는 다소 이채로운 것을 볼 수 있었다. 경기도 북부 지역을 답사하다가 장작만한 윷을 노는 것이 경이로워서 이것을 가지고 와서 집에 보관까지 하는 어리석음을 저질렀다. 윷놀이에 대한 경이로운 추억을 추가하면서 여러 곳의 경험을 하는 것이 민속학의 본령인 것처럼 놀라곤 하였다. 그러한 경험을 얼마나 많이 해야만 이러한 놀이에 대한 새로운 의식을 각성할 것인지 더욱 아리송하고 어리둥절한 느낌을 지금도 지울 수 없게 되었다.

 

제주도의 넉동배기
제주도 답사를 많이 하게 되면서 갯가나 마을 한복판에서 윷을 노는 사람들을 다수 만났다. 제주도에서는 잔치집이나 상갓집에서 이와 같은 윷놀이를 즐펀하게 하고 다구리재도전를 하면서 노는 양이 제법 강고하고 확실한 점을 만날 수가 있었다. 전라남도 진도 조사를 하러갔을 때에 상가집에서 거의 전문가 수준의 윷놀이를 하던 것과 쉽사리 유사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놀이에 그치지 않고 노름 수준으로 발전하던 것도 잊히지 않는다. 제주도에서는 이 윷놀이를 이른바 넉동배기, 넉둑배기, 넉동뱅이, 넉동내기 등으로 다양하게 부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도, 개, 걸, 윷, 모’ 등을 이르는 말이 조금 달라지지만, 그렇게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토, 캐, 걸, 숯, 모’ 등으로 일컫는 것의 음상이나 음조의 차이가 있을 따름이다. 제주도에서 노는 넉동배기는 필자가 남원에서 체험한 종지윷과 일치하여 다소 안심을 주던 것을 잊지 않는다. 말을 부리고 동을 내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말을 쓰곤 하는데 다소 기이할 정도로 독자적인 말들을 하곤 한다. 그 넉동배기의 깊이를 아는 것이 필요하지만 그렇게까지 깊게 탐험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문화의 전파와 교섭, 그리고 전이를 생각하게 되면 여기에 이른바 특정한 놀이와 언어가 고유하게 발달하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된 것은 퍽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제주도의 위대한 창조정신은 항상 언어로 앞서가는 것을 보인다. 사람의 창조가 언어의 창조와 긴밀하게 연결되고, 동시에 사고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만드는 것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윷놀이는 사행심이 적지 않으며 우연과 필연이 주는 일련의 겨루기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놀이에서 겨루기의 싸움을 거칠게 만드는 특징이 있는 놀이임을 우리는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박지원의 글을 읽어보면 놀이를 할 때에 혼자서 왼손과 오른손으로 편을 나누어 놀이를 하게 되니 그 기발한 승부욕을 말한 바 있다. 왼손과 오른손, 왼발과 오른발 사이에도 투쟁심이 휘몰아치는 것은 결단코 헛된 말은 아니다. 한 몸으로 나뉜 편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편을 나누고 넉동으로 선점하면서 놀이를 하고 갖가지 기발한 방법을 쓰면서 놀이를 하니 여기에 놀라운 승패심과 사행심이 작동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놀이의 등속을 사행심으로 가져갈 것인지 이를 통해서 인생의 시난고난한 삶을 성찰할 것인지 우리는 다시금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놀이를 승화하여 새로운 세계관의 차이와 인식으로 점철하는 것도 있었다. 가령 김시습이 쓴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와 같은 작품에서 이를 찾을 수 있다. 부처와 양생이 저포놀이를 하면서 이기는 사람이 서로의 희망을 들어주기로 하였는데 그 결과 죽은 여인과 만나면서 삶의 허망함을 깨닫고는 지리산에 들어가서 약초를 캐면서 생을 마친 내력은 놀라운 문제를 제기하게 된다. 소설에서만의 문제는 아니다. 사대부 집안에서 놀던 여러 가지 놀이 가운데 <승경도놀이陞卿圖놀이>나 <종경도놀이從卿圖놀이>를 비롯하여 <람승도놀이覽勝圖놀이>와 같은 것은 주목할 만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사행심을 벗어나서 이 놀이를 통해서 관직의 이름을 익히고, 동시에 상벌의 문제를 삼아서 승차하거나 원찬으로 유배되는 것을 익히는 놀이를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한 과정에서 아름다운 경치와 풍광을 익히는 일을 하기도 한다. 놀이에서 정신을 팔지 않고, 동시에 문리와 사리를 분별하는 놀이로 확장하는 것도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놀이에 해당하는 것의 세태도 달라지게 됨을 인정해야 한다. 화투놀이를 하거나 여러 가지 놀이를 곁들이면서 여러 사람이 어울려 노는 일을 하는 것을 보게 된다. 요즈음의 경로당이나 노인정을 가게 되면 화투놀이가 대세이다. 간혹 마작을 겸하는 일도 하게 된다. 놀이의 세태가 달라지면서 정겹던 공동체의 삶은 나날이 마모되어 간다. 이들의 놀이가 점차 바뀌는 것은 시대의 흐름이라고 할 수 있으나, 더욱 주목해야 하는 것은 다른 전자기기의 포로가 되는 점을 부인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을 옳다 그르다 말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이다. 놀이의 양태가 다르기는 하지만 아이들이나 젊은 사람들이 가지고 노는 놀이는 같은 관점에서 비교 논의해야 할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는 과거이고, 미래는 미래이다. 과거가 미래가 될 수 있을까? 우리의 삶은 지속될 수 있을까? 혹여 우리는 안정되고 고정된 지식에다 우리의 후손에게 몰아넣는 것은 아닌가? 이 엄청난 지식의 강요, 체험의 공유를 통하여 윽박지르는 일을 자행해서는 안된다. 항상 우리는 급진주의적 태도를 경계하면서 동시에 우리를 억압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여야만 할 것으로 보인다. 왜 제도가 만들어지면 굳어지는 것인가?

사소한 것들의 비범한 통찰
우리는 이제 갈림길에 서 있다. 우리 인간 자신이 스스로 너무 하찮아졌다고 하는 것이다. 넘쳐나는 정보량 속에서 사람의 무게가 점점 가벼워지고 있다. 인간이 누리는 행복, 지구상에서 누리는 행운이 언제까지 존속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인간이 더 이상 폐를 끼치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의 사소한 것들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 줄 알고, 고조곤히 그것들에게 울리는 말들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윷놀이를 통해서 우리의 체험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의 체험이 되는 것들의 사소함에 비범함이 있음을 통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실을 말하고 해명하는 순간 우리는 지식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그것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우리가 해야 하는 궁극적인 부분은 가시적인 것의 이면에 잠재된 심층을 알고 동시에 거시적인 비교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외적 비교를 하면서 거리가 먼 것일수록 더욱 가치가 있는 것임을 깨달아야만 한다. 윷놀이와 주사위놀이, 윷놀이와 카루타1) 또는 카드놀이 등을 비교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심성에 도사리고 있는 도전과 응전, 승리와 패배에 대한 인류의 오랜 연원을 알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인간이 하나로 작은 것이지만 우주의 전체와 관련된다고 하는 생각을 하게 되면 우리의 통찰은 진폭을 달리하면서 움직이는 것임을 알게 된다. 그러한 학문은 이제 이름이 없을지도 모른다. 핵융합과 블랙홀 등이 윷놀이와 관련된다고 생각하면 망상이 되는 것인가? 사소한 것이 전혀 사소하지 않고 비범한 것이 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제 우리의 생각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인간의 새로운 가능성은 이미 우리 속에 내재된 무엇일 것이다. 제도와 싸우고 굳어진 지식과 싸우게 되면 우리의 미래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새롭게 혁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생각을 전환하고 깨달음의 혁명을 일으킨다면 창조적 충격을 가하게 되고, 동시에 우리의 열정과 희망을 곱들일 수가 있을 것이다. 사소한 것들이 소중한 이유가 창조적인 충격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1) 일본의 플레잉카드 게임


글 | 김헌선_경기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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